['당신'과 함께라면①] '당구여제' 김가영, "센언니? 좀 세다"

입력 2016. 7. 25. 08:05 수정 2016. 7. 2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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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강필주 기자] 남자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한 당구. 최근 당구에 대한 관심이 부쩍 증가하면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성 당구인들에 대한 인기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특히 '심쿵'한 외모를 지닌 '당구 여신(당신)'들은 당구계에 활력소가 되고 있을 정도.

'당신과 함께라면'은 당구의 여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여성 당구인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궁금증을 해소하는 코너다. 이번에는 한국은 당연하고 세계적인 '당구여제'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김가영이다.

▲ 워낙 유명하지만 먼저 간단한 프로필을 말해달라

-1983년생이고 국내에서는 인천시체육회 소속으로 활약하고 있다. 아마추어인 셈이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프로 라이센스를 가진 포켓볼 선수로 뛰고 있다. 아버지 권유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큐를 잡았다. 4구로 시작해 중 1 때 500점이 됐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포켓볼로 전향하면서 그 해(1997년) 선수로도 등록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2001년부터 대만으로 건너가 2년 가까이 있었고 2003년부터는 미국에서도 활동했다. 부모님 계시고 여동생이 한 명 있다.

▲ 아버지가 당구장을 운영했던 것으로 안다

-그렇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는 계속 당구장을 운영하셨던 것 같다. 지금도 역시 당구장을 운영하고 계신다. 원래 아버지는 유도선수셨다. 나도 체격조건이 좋은 편이라 유도를 배워보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 그래서 유도를 해봤나

-못해봤다. 안시켜주시더라. 여자가 유도를 잘해도 호신용 정도고, 덩치 큰 남자를 제압하기는 쉽지 않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대신 아버지는 당구가 여자에게 맞는 스포츠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큰 근력이 필요하지 않으면서 노력하면 남자와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 딸이 유명한 선수라서 아버지가 자랑스러워 하시겠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딸로서는 자랑스러워 하신다. 하지만 부담될 일은 없다. 아버지가 협회나 연맹 임원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당구업을 계속 해오셨기 때문이다. 또 내가 포켓볼 선수지만 아버지는 일반적인 4구 당구장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아버지가 쿨한 편이라 크게 내색하지 않으신다.

▲ 쿨하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아버지와 상당히 친하다. 그렇지만 우리 집은 좀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아버지 인생, 나는 내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뭘 하든 전혀 간섭을 하지 않으신다. 물론 미성년자 때까지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자랐다. 그렇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너의 갈길 가라'는 사고방식이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 그럼 그런 사고방식이 대만행을 결정한 것과 관련이 되는 건가

-그렇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내가 아버지께 어느 정도 신뢰감을 드렸던 것 같다. 그랬기 때문에 보내주신 것 같다. 정말 자라면서 '뭐 하라', '뭐 하지 마라'라는 소리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당시 당구가 좋지 못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스포츠라고 생각해 내게 큐대를 잡게 한 것은 예외적인 부분이다.

▲ 솔직한 편인가

-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들이대는 편이다. 좋다 싫다를 좀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다. 요즘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예전에 비해 덜하지만 호불호가 있는 편이다.

▲ 대만은 스스로 가겠다고 한건가

-그렇다. 1997년 선수 등록하고 중 3이던 다음해부터 계속 국내랭킹 1위에 올랐다. 그러면서 진작에 국내 무대는 좁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는 당구가 스포츠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운동은 10대 초반에 시작해 10대 중후반 되면 두각을 나타낸다. 그렇지만 선배님들은 대부분 20살이 훌쩍 넘어 취미로 시작하신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결국 아예 선수로 목표로 했던 나와 달랐기 때문에 사실상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국내에는 적수가 없었다.

▲ 그렇다고 대만을 혼자 갈 수 있다는 용기를 낸 것이 대단하다

-우선은 쿨한 부모님의 영향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또 아버지가 워낙 엄해서 도피처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가출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떳떳하지 않게 피하는 건 싫었다. 그래서 대만 유학은 당당하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

-선수 등록 후 나가는 대회마다 이기면서 승승장구 했다. 중 2때였던 거 같은데 자넷 리 선수가 방한해 경기를 치른 적이 있었다. 당시 세트 스코어 1-1로 비겼다. 대선수지만 부분적으로 보면 내가 더 잘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만큼 기고만장했다. 그런데 고 1때로 기억하는데 내 '우상'인 류신메이(47, 柳信美, 대만) 선수를 만났다.

▲ 우상이라고 했나

-그렇다. 당시 국내에서 열린 국제 대회에 나갔는데 류신메이 선수에게 역전패했다. 9볼 경기였는데 6-1로 이기고 있다가 6-7로 순식간에 패했다. 그 전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이즈의 패배였다. 건방진 마음이 그나마 그 경기로 인해 좀 겸손해졌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이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언젠가 저 선수를 잡기 위해 대만을 가겠다는 결심을 했다.

▲ 그렇다면 선수와의 대결 때문에 대만을 간건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대만에서 열린 암웨이컵이라는 초청대회에 출전했다. 세계에서 12명의 여자선수만 초청받아 뛸 수 있는 대회에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출전했다. 그런데 당구치는 환경이 너무 좋더라. 우리나라는 90% 이상이 4구나 3쿠션 당구장인데 대만은 99%가 포켓볼이었다. 게다가 당구가 대만에서는 인기 종목이다. 그만큼 시설도 시설이지만 고수들이 너무 많더라. 당시 국내에서는 남자 선수들도 나와의 경기를 부담스러워 했다. 대결 상대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대만에 와보니 동네 아저씨 수준도 나보다 나은 것 같았다. 신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대만에서 당구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대만은 아무도 없이 간건가.

-대만당구연맹 회장님이 타이페이에 연습장소와 살 곳을 알아봐주셨다. 그리고 아버지께 항공티켓과 200만 원을 받고 갔다. 지금은 다 갚았다. 사실 당시 돈이 다 떨어지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했다.

▲ 대만에서 류신메이를 만났나

-줄곧 류신메이 선수에게 "우상"이고 "팬"이라는 말은 하며 좋아하는 티를 냈다. 그러다 6개월 후 중국어를 조금 하기 시작하면서 "당신 때문에 대만에 온 것"이라고 말했다.

▲ 대결을 했나

-첫 공식경기에서는 졌다. 그런데 다음 경기에서는 이겼다. 대만 랭킹전은 외국인에게도 오픈된다. 외국인에게 랭킹포인트가 주어지진 않지만 출전은 가능했다. 류신메이 선수의 당시 수준은 다른 모든 선수에게 핸디캡 1점을 주고 경기를 할 정도로 월등했다. 그런데 1년만에 내가 류신메이 선수와 동등해졌다.

▲ 1년만에 류신메이를 이겨 목표를 달성했다. 그런데 왜 1년 더 있었나

-기본적으로 재미가 있었다. 주변에 고수들이 흔하게 있었다. 대만에서는 남자 대회에 여자 선수가 출전할 수도 있었다. 남자 대회에서 여자 선수가 우승한 적이 없다. 그나마 내가 제일 잘한 성적을 거뒀는데 공동 5위였다. 그만큼 남자 선수들은 월등했다.

▲ 그럼 포켓볼 세계랭킹 상위권은 아시아권인가

-그렇다. 유럽도 몇몇 인정받는 당구선수가 있다. 그러나 포켓볼은 대만과 필리핀 선수들이 최정상급이다. 전 세계 당구는 크게 포켓볼, 스누커, 캐롬 3가지로 나뉜다. 포켓볼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대중화돼 있는 당구 종목이다. 가장 즐기는 인구가 많다. 3쿠션 등 캐롬은 한국에서 인기지만 사실 인구가 가장 적다.

▲ 지금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던데.

-작년 대학 레저스포츠학과를 졸업하고 올해 대학원 1학기 마쳤다. 체육학과에서 철학을 전공할 생각이다. 

▲ 왜 철학인가.

-답이 없지 않나. 답이 있는데 답이 없지 않지 않나. 생각하는 재미가 있다. 

▲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여름에는 수상스키, 겨울에는 보드를 탄다. 

▲ 요즘 말로 '센언니' 캐릭터라는 말이 있더라.

-그렇다. 알고 있다. 제가 좀 세긴 세다. 그렇게 부드러운 스타일은 아니다. 말도 직선적이다. 당구칠 때 표정이나 인상도 별로 안좋다. 주로 팬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런데 제 여동생은 제가 세상에서 제일 만만하다고 한다. 

▲ 그렇게 신경쓰는 편은 아닌 것 같은데

-안좋은 일은 빨리 까먹는 편이다. 심각한 것은 해결하고 나면 잊어버린다. 그 전까지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해결하고 바로 잊는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 계기가 있었나.

-인터넷 댓글을 옛날에 많이 봤다. 외모를 지적하거나 이쁜 후배들과 비교하더라. 그걸 보면 화가 나더라. 결국 화가 나지 않는 방법을 찾게 됐다. 일단 안보면 된다. 원래 TV, 인터넷을 잘하지 않는다. 다음으로는 그냥 그걸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된다. 

▲ 실력은 당연하고 외모까지 가꿔야 하는 여자 선수라서 힘든 점은 없나.

-실력이 월등해도 얼굴이 뛰어나지 않으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더라. 우리나라는 정말 실력보다 외모를 중요시하는 나라인 것 같다. 나는 변화를 좋아한다. 내가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들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내 자신이 변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근본적인 것은 변하지 않겠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서로 변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나같은 경우는 좋은 쪽으로 변할려고 노력한다. 굳이 내가 불필요한 것에 신경을 썼다가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있나. 내 인격이 변하지 않는 선에서 좋은 쪽으로 변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멘탈이 강한 편 아닌가.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외모 때문에 생긴 감정을 느끼면서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좀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력과 인생에서도 좀더 강해지게 될 수 있었다. 

▲ 후회할 행동이나 말이 있었나.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자라는 반성을 하긴 한다. 그 때 그 말하지 말걸이란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말을 할 당시의 나는 유치하지만 인정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인터뷰도 몇년 후 보면 유치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당시의 나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letmeout@osen.co.kr

[사진] 민경훈 기자 / rumi@osen.co.kr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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