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전쟁·재난 발생 시 단란주점·다방으로?..지방 대피시설 취약 심각

이소연 입력 2016. 7. 25.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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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이나 지진이 발생하면 어디로 대피해야 할까?”

북한의 위협과 최근 울산 지진 사태를 보며 불안해진 A씨. 그는 국민안전처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사이트 ‘국민재난안전포털’을 이용, 자신의 집 주변 대피소를 검색했다. A씨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오래전 문을 닫은 다방과 단란주점, 주유소 등이 대피시설로 지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과연 이러한 장소로 몸을 피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에 빠졌다.

단란주점, 폐업 다방, 주유소…부적합 시설이 다수

서울·수도권 등 대도시를 제외한 지방의 경우 민방위 주민대피시설이 매우 취약한 상태다. 지방자치단체(지자체)는 시·군 내 지하시설의 부족으로 대피소 지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방위기본법 15조에 따르면 중앙관서의 장,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주거용 단독주택 외 지하층을 두고 있는 건축물을 비상대피시설로 지정할 수 있다.

그러나 지방의 경우 지하시설을 갖춘 건축물이 희소하다. 이로 인해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장소들이 대피소로 지정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민재난안전포털에 따르면 경북 성주군은 단란주점과 폐업한 노래방·다방 등 5곳을 유사시 대피시설로 운영하고 있었다.

대피시설 중 한 곳인 성주군 용암면 '목마다방'은 매캐한 먼지로 가득하다. 컴컴한 내부에는 6개의 테이블과 30여개의 소파 등 다방에서 사용하던 집기가 그대로 쌓여있다.

다방 건물주 이모(72)씨는 “목마다방은 영업을 안 한 지 10년 이상 됐다”며 “물과 전기도 끊긴 상태”라고 설명했다.

성주군민들은 부적합한 시설이 대피소로 쓰인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또 다른 대피소로 지정된 단란주점 인근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강모(58)씨는 “유흥업소가 대피시설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며 “오후 6시 이전에는 문이 닫혀 있어 대피소로 부적합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군민 양모(45·여)씨도 “대피시설이라는 노래방은 3년 전에 문을 닫은 곳”이라며 “환기는 제대로 될지 걱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충남 공주시는 지난 2003년부터 위험물저장시설인 주유소를 대피시설로 지정해 운영해왔고, 경기 파주시는 29㎡라는 협소한 크기의 파평초등학교 지하시설을 대피소로 지정한 상태다.

면 단위 82% 대피소 없어…대피시설까지 거리 멀어 긴급 이동 불가

국민재난안전포털에 게재된 대피시설을 분석한 결과, 전국 1190곳의 면 지역 중 982곳에서는 주민대피시설을 찾아볼 수 없었다. 비상사태 발생 시 주민들이 몸을 피할 장소가 없다는 이야기다.

복수의 지자체 관계자는 “주민대피시설은 법적으로 읍·동 이상에만 설치하게 돼 있다”며 “대피시설이 없는 면 지역 주민들은 유사시 가까운 읍·동 대피소로 가야 한다”고 전했다.

지역 내 대피소가 있더라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주민의 이동 거리, 수용인구 등이 고려되지 않은 채 지정된 대피소가 다수다.

경기 화성시 우정읍은 읍내 아파트 2곳을 대피소로 지정하고 있다. 각각 면적은 1459㎡와 2623㎡로 총 4082㎡ 규모다. ‘대피소 면적 3.3㎡ 당 4명을 수용한다’는 국민안전처 기준에 따르면 우정읍 내 대피소는 약 4947명을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우정읍의 인구는 2016년 2월 기준 1만8010명에 달한다.

민가에서 대피소로 가는 긴 이동 거리도 문제로 지적됐다.

우정읍에 거주하는 이모(27·여)씨는 “지금 사는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대피소까지 8㎞가 넘어 차로 이동해도 10분 이상 걸린다”며 “유사시 대피소로 이동하는 동안 겪게 될 위험이 더 클 것 같다”고 우려했다.

지자체 “도시와 달라 지하시설 부족…사유시설 관리 애로”

지자체 관계자들은 “시·군 내 지하시설이 거의 없어 대피시설 지정에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성주군청 민방위 담당자는 “공공기관이나 아파트 지하시설 등에 대피소를 지정하고 싶지만 군내에는 이러한 시설이 부족한 상태”라며 “몇 안 되는 지하시설에 대피소를 설정하다 보니 노래방, 다방 등이 지정된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사유시설을 대피소로 지정할 경우 건물주의 동의를 받는 것부터 어렵다”면서 “영업을 하는 상가 건물일 경우, 지속적인 관리가 힘들다”고 설명했다.

파주시청 김황겸 주무관은 “아파트나 빌딩이 많은 도시와 달리 시골은 면적과 기준을 다 고려할 경우 대피소로 지정할 수 있는 곳이 없다”며 “기준에 약간 맞지 않더라도 지정해야 비상시 주민들이 대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취재가 시작되자 성주군청은 지난 23일 단란주점, 폐업 노래방·다방 등 부적합 대피시설 5곳에 대한 지정을 해제했다.

국민안전처 “대피시설 지원 계획 없어” vs 전문가 “면 단위도 대피시설 있어야”

국민안전처는 “대피시설의 실무는 각 지자체에서 담당하는 일”이라며 책임을 피했다.

국민안전처 민방위과 관계자는 “법적으로 대피시설관리 정기점검을 분기별 1회 실시하고 있다”며 “점검을 통해 각 지자체에서 부적합 시설을 해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하시설이 부족한 지자체에 대피시설 관련 예산을 지원할 수 없다는 뜻도 표명했다.

관계자는 “북한은 주요한 국가 산업기지·군부대 등을 공격하기에 면 단위는 표적이 될 위험이 적다”며 “북한 접경지역과 서해 5도 등 15개 시·군을 제외한 지자체에는 정부지원 대피시설을 지원할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반면 전문가는 현재 읍·동을 중심으로 운영 중인 재난대피시설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강원대학교 재난관리공학전공 백민호 교수는 “주민대피시설은 전쟁뿐 아닌 재난 등 비상시에도 사용될 수 있다”며 “인구가 적은 면 단위라고 해서 대피시설을 지정하지 않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공공대피시설은 대피한 주민들이 10일 정도 머무르며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대피소 내에 물과 식량, 모포 등 비상물자가 구비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백 교수는 현재 지정된 부적절한 대피시설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위험시설인 주유소는 물론 내부에 칸막이가 처진 노래방이나 단란주점의 경우 화재에 매우 취약해 제대로 된 대피시설이라고 할 수 없다”며 “빠른 지정 해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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