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선진국은 백인, 개도국은 흑인' 묘사.. 다문화인 편견 심는 교과서

2016. 7. 2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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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초중고 국어 등 90종 분석
[동아일보]
인권 친화적 교과서 개발 연구진으로부터 다문화 청소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한다고 지적받은 초중고교 교과서에 나온 삽화들.
연구진은[1] “너는 한국 사람도 아닌데 왜 여기에 있느냐?” [2]“한국어를 잘 못해 학업 성취도가 낮거나 학습 의욕을 상실할
수 있는 다문화 가정 학생들”[3]“친구들과 달라서 놀림을 당해요”라는 표현이 다문화 청소년에게 심리적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티베트에서 시신을 새들의 먹이로 주는 장례 문화는 야만적이라고 비판받는다.”(A출판사 중학교 도덕1 교과서)

“아프리카에서는 조혼 풍습이 만연해 소녀가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당하며 가사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B출판사 고등학교 사회·문화 교과서)

국내 초중고 교과서에는 이렇게 특정 국가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서술이 곳곳에 등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 친화적 교과서 개발’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설규주 경인교대 교수 연구팀이 초중고교의 국어 도덕 기술·가정 사회과(법과 정치, 사회·문화, 생활과 윤리) 교과서 90종을 분석한 결과 교과서에 다문화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등 부정적 인식을 조장할 수 있는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연구진은 이들 교과서에 나타난 다문화 관련 서술 32곳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 교과서가 특정 국가·인종 편견 강화

연구진은 우선 특정 사실을 단편적으로 기술함으로써 해당 국가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내용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가령 A, B출판사의 티베트와 아프리카 사례뿐만 아니라 ‘이슬람권 국가에서는 가족, 부족, 공동체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한 해에 수백 명의 여성이 명예 살인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B출판사 고등학교 사회·문화)는 서술 등이 사례로 제시됐다. 이들 국가에 대한 추가 설명 없이 부정적으로 해석될 만한 내용만 교과서에 서술하면 해당 국가에 대한 편견이 생길 수 있다는 것. 또 조혼 풍습이나 명예 살인도 아프리카 전체 또는 이슬람권 국가 전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만큼 고정관념이 생기지 않도록 ‘일부’ 등의 표현을 쓰는 게 적절하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특정 인종에 대해 옳지 못한 선입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교과서도 적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2학기 사회 교과서에는 세계 여러 지역의 인사말을 소개하면서 유독 케냐의 경우만 원주민의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등장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구진은 “원주민의 생활양식을 따르는 부족을 별도로 명시하지 않아 현재 케냐 국민 모두가 이런 복장을 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초등학교 3학년 2학기 사회 교과서에 제시된 삽화에는 길을 묻는 외국인의 표정이 백인은 밝게 웃는 모습으로, 흑인은 무표정하고 어수룩한 모습으로 묘사됐다. C출판사의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의 선진국 국민은 백인으로, 개발도상국 국민은 모두 흑인으로 묘사하는 등의 내용도 특정 인종에 대한 편견을 만드는 것으로 연구진은 분석했다.

D출판사의 고등학교 생활과 윤리 교과서에는 “다문화 가족들이 2세들과의 정서적 유대감이 결여되고 한글 인지가 부족하여 완벽한 의사소통이 되지 못한 채 서로 간의 불신과 반목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러한 상태가 지속될 경우 사회 불안 요인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서술했다. 또 “한국어를 잘 못해 학업 성취도가 낮거나 학습 의욕을 상실할 수 있는 학생들을 위해” 이런 교과서가 만들어졌다고 소개한다.

이 밖에도 “너는 한국 사람도 아닌데 왜 여기에 있느냐”(E출판사 중학교 도덕) 등의 표현은 편견을 극복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해도 다문화 학생들을 비하하거나 수업을 듣는 당사자에게 심리적 상처를 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 “교과서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현실을 견인해야”

현재 다문화 가정의 만 18세 이하 자녀는 2006년 2만5000여 명에서 2015년 20만8000여 명으로 약 8배로 늘어나는 등 다문화 학생의 비중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다문화 학생이 사회적 편견과 언어 장벽 등으로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고 있다.

다문화 학생의 학업중단율(1.01%·2014년 기준)은 전체 학생(0.83%)보다 높다. 학업 중단의 이유로는 친구나 선생님과의 관계(45.1%), 한국어 미숙(15.3%), 문화 차이(13.8%) 등이 꼽혔다.

전문가들은 교과서에 나와 있는 단순한 사실도 수업을 받는 다문화 학생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교과서의 서술은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구책임자인 설 교수는 “다문화 가정이 어려움을 겪고 차별받는 부분이 실제로 있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부각하는 것보다 긍정적인 측면도 소개해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지원 기자 z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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