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간 11명 자살..카이스트에 무슨 일이

노도현 기자 입력 2016. 7. 24.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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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서남표가 만든 ‘공부 지옥’ 여전해…수재들도 일반청년과 똑같은 고민

곳곳에 붙어있는 상담센터 스티커 지난 19일 카이스트 캠퍼스 곳곳에 학생들을 위한 상담센터와 인권센터 안내가 붙어있다. 노도현 기자

‘내가 힘들 땐 상담센터 우리들이 힘들 땐 인권센터’ ‘심리고민 상담은 상담센터로 권리침해 상담은 인권윤리센터로’.

지난 19일부터 이틀간 찾은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캠퍼스 안 화장실에 갈 때마다 이런 문구들과 마주했다. 칸마다 상담·인권센터를 홍보하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하루 전인 18일 카이스트 자연과학동의 한 연구실에서 수리과학과 박사과정 학생 ㄱ씨(26)가 목을 매 숨져있었다.

학부 시절부터 ㄱ씨를 알아온 ㄴ씨는 “그를 천재로 기억한다”며 “바둑동아리에 애정을 쏟던 소영웅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ㄱ씨 동아리 후배는 페이스북에 “한 수 한 수 진행하셨던 그 치열한 수읽기를 그만두고 이제는 조금 편한 곳에서 쉬고 계시길 간절히 기도한다”고 추모글을 올렸다. ㄱ씨는 박사과정 준비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오다 지난해 말부터 신경과 치료를 받아왔다고 한다.

2011년 이후 카이스트 구성원 11명(학부생 6명·대학원생 4명·교수 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1년 1월부터 4개월간 학부생 4명이 연달아 자살하는 이른바 ‘카이스트 사태’가 발생했다. 징벌적 등록금 제도, 전면 영어수업 등 서남표 전 총장의 학사운영 방식이 주원인으로 지목됐다.

카이스트는 이후 징벌적 등록금 기준을 3.3점에서 2.7점으로 낮추는 등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줄이고 심리상담 지원을 강화했다. 그러나 2013년 2월 강성모 현 총장 취임 이후에도 5명이 자살했다.

다른 대학과 달리 카이스트 학생들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한다. 산업·시스템공학과 학부생 ㄷ씨는 “학기 중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시간표대로 수업을 듣고 저녁에는 퀴즈 공부를 하거나 보충수업을 간다”고 말했다. 화학공학과 대학원생 ㄹ씨는 “보통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9~10시에 퇴근한다”고 말했다.

잇따른 자살을 두고 일각에서는 ‘서남표 트라우마’를 거론한다. 무한경쟁을 요구하는 학사 시스템이 학생들 심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다.

전기·전자공학과 대학원생 ㅁ씨는 “서 총장 때 입학했던 학생들이 대학원에 와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며 “학부 시절부터 공부를 압박적으로 느끼면서 대학원에 올라오다보니 연구가 매우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ㄹ씨는 “과도한 경쟁을 부추겼던 서남표 총장 시절을 우리는 ‘지옥’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고 했다.

카이스트에서 만난 대다수 구성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굳이 자살과 카이스트를 연결지을 필요가 있을까”라고 말했다. 이들은 자살을 카이스트의 독특한 상황으로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타 대학 학생들처럼 학업과 취업 스트레스, 권위주의적인 일부 교수와의 갈등, 대학원생 복지와 인권 미비 등의 문제를 카이스트 학생 역시 겪고 있을 뿐이란 시각이다.

수리과학과 대학원생 ㅂ씨는 “대학원생들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연구 결과를 내야 하는데 개인 또는 연구실 분위기에 따라 압박감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며 “자살 문제가 학교 제도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ㄴ씨도 “사람들은 카이스트 졸업자들은 먹고살 고민을 안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고민이 많다”며 “카이스트 학생들이 겪는 문제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ㄷ씨는 “카이스트라는 점보다 대학원생 처우 문제가 부각돼서 이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카이스트 관계자는 “현재 실시되고 있는 24시간 상담 시스템, 잠재적 위기 학생들을 찾아내기 위한 정신건강 검사, 대학원생 대상 소진증후군 예방특강 등을 더욱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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