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는 모델 앞에 두고 그려..'미인도'는 비율 안 맞아"

2016. 7. 24.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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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식 전 화랑협회장 주장.."'미인도'는 위작, 얼굴 크고 몸 왜소해"
이목화랑 서울 이전 전시회에서 찍은 사진. 사진 맨 왼쪽부터 임경식 전 이목화랑 대표, 고(故) 천경자 화백, 배우 고두심, 고 권오연 화백, 배우 신성일. 앞줄 가운데는 고 변종하 화백이다. [임경식 전 대표 제공]

임경식 전 화랑협회장 주장…"'미인도'는 위작, 얼굴 크고 몸 왜소해"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고(故) 천경자 화백은 여인상을 그릴 때 반드시 모델을 앞에 두고 그렸으나 진위 논란에 휩싸인 '미인도'는 모델을 두고 그린 그림의 비율이 아니라는 점에서 위작이라는 전문가의 주장이 제기됐다.

제12대 한국화랑협회장을 지낸 임경식(78) 전 이목화랑 대표는 화랑 개관 40주년을 기념해 펴낸 책 '나의 화랑 우리들의 화랑협회'에서 '미인도' 위작 논란을 다루며 이같이 밝혔다.

임 전 대표는 1976년 5월 변종하 화백의 소개로 천 화백과 인연을 맺은 후 천 화백이 '미인도' 사건에 휘말린 뒤 미국으로 떠날 때까지 20여년간 가깝게 지낸 미술계 인사다.

화랑에 그림을 안 내어놓기로 유명한 천 화백은 1990년 이목화랑이 대구에서 서울 강남구 청담동으로 이전해 기념전을 열자 자신의 작품을 기꺼이 출품했다. 또 1995년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마지막 회고전을 한 천 화백은 홍라희 관장 주재 뒤풀이에 네 명을 초청했는데, 그중 한 명이 임 전 대표였다.

임 전 대표는 지난 22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책은 판매용이 아니라 개관 40주년을 맞아 주변 사람들에게 주려고 만들었다"면서 "당시 화랑 대표 중 천 선생님과 제일 친한 사람은 나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 선생님의 작품을 자신 있게 본다"고 밝힌 임 전 대표는 책에서 '미인도'를 위작으로 판단하는 첫 번째 이유로 '미인도' 속 여인의 얼굴 크기와 어깨 비례가 이상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천 선생님은 데생을 잘하는 화가이며 여인상을 그릴 때는 반드시 모델을 두고 그렸다. 그러나 '미인도'는 얼굴이 너무 크고, 얼굴에 비해 몸이 너무 왜소하다. 앞에 모델을 두고 그린 그림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머릿결이 표현돼 있지 않다는 점에서 '미인도'가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여러 감정가의 의견에도 뜻을 같이했다.

임 전 대표는 "선생님은 반드시 머릿결을 표현해 입체감을 강조했다. 또한 구도로 볼 때 귀가 일부라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어깨 위에 있는 나비의 크기와 머리 위에 얹힌 식물의 형태도 위작의 근거라고 임 전 대표는 지적했다.

그는 "나비가 너무 크다. 비율로 봐서 참새보다 더 크다"며 "머리 위쪽에 있는 꽃과 또 다른 형태의 식물이 뭔지 모르겠다. 천 선생님은 이렇게 애매한 형상을 그리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이어 "비뚤어지고 마치 비웃는 듯한 느낌의 입술을 가진, 입술을 포함한 전체적인 분위기가 이렇게 험악한 여인을 그린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임 전 대표는 '미인도' 논란이 처음 불거졌을 당시 천 화백이 고령이었지만 정신이 말짱했다고 술회했다. 당시 미술계 일각에선 천 화백의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그때 천 선생님 연세가 67세였는데, 누구나 있는 약간의 건망증은 있어도 자기 그림을 보고 기억 못 할 상태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무렵 한 중년 여성이 천 화백이 그렸다는 바다 풍경 그림을 갖고 와서 감정을 부탁했는데 이를 천 화백에게 보여주자 바로 "전남여중 다닐 때 제주도 수학여행 가서 그린 것"이라며 반가워했다는 일화를 전했다.

오히려 천 화백 같은 사람이라면 자식은 못 알아봐도 작품을 못 알아보기는 어렵다고 임 전 대표는 강조했다.

그는 "자식은 낳자마자 헤어지면 수십 년 뒤에는 못 알아볼 수 있지만, 그림은 시간이 지나도 모습이 바뀌지 않는다. 그림을 자식에 비유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미인도' 진위 논란에 휘말려 괴로워하던 천 화백을 가까이서 지켜본 임 전 대표는 천 화백이 절필 선언을 하는 데 자신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권유가 영향을 미쳤다는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도 전했다.

그는 "선생님 위로차 집에 갔는데 마침 일간지 미술담당 기자가 와있었다. 선생님이 격앙된 상태여서 우선 좀 진정시켜 드려야 되겠다는 생각에 우리 둘이 '언론에 절필을 선언하고 외국 여행이라도 한번 다녀오면 많이 좋아질 것이다. 절필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영원히 붓을 꺾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설득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천 화백이 크게 공감하는 듯했으며 며칠 뒤 절필을 통고하고 큰딸이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고 임 전 대표는 덧붙였다.

임 전 대표가 1976년 고향 대구에서 개관한 이목화랑은 40년간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전시를 개최했다. 그가 이번에 펴낸 책에 국내 미술사의 주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유다.

1994년 전시에서 찍은 사진. 사진 맨 왼쪽이 임경식 전 대표, 가운데가 천경자 화백이다. [임경식 전 대표 제공]

이목화랑에서는 1996년 조영남 초대전도 열렸다.

임 전 대표는 "우연히 조영남의 LA 개인전 도록에서 화투 그림을 봤는데, 그 발상이 너무 웃기고 재미있었다. 프로 화가 같을 수는 없지만 아마추어의 맛이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최근 본 조영남의 그림은 20년 전과 상당히 달랐다고 임 전 대표는 말했다.

임 전 대표는 "최근 전시를 보니 팔고 싶은 마음에 예쁘게 치장한 그림을 내놨더라"라며 "우리 같은 화상들은 보면 안다. 박수근, 장욱진 같은 사람들의 그림 값이 자꾸 올라가는 이유는 그들이 작품 거래에 관심 없이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감정 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이우환 화백의 위작을 본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우환의 초기 그림을 참 인상적으로 봤다"고 평한 그는 "이 화백의 1978∼1979년 그림을 감정해달라는 요청이 자꾸 들어와서 보니 캔버스 뒤쪽은 새로 만든 흔적이 역력했다. 그래서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위조범이라는 사람들이 잡혔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luc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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