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6호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몸돌..101년만의 귀향

2016. 7. 24.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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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시 16년 노력 끝에 복원 성공해 여주박물관 신관에 전시
여주박물관 신관 로비에 전시된 여덟조각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비신.

여주시 16년 노력 끝에 복원 성공해 여주박물관 신관에 전시

(여주=연합뉴스) 김인유 기자 = 보물 제6호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元宗大師塔碑)의 비신(몸돌)이 101년 만에 여주 품으로 돌아왔다.

여주시는 지난 14일 문을 연 여주박물관 신관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부터 돌려받은 원종대사탑비 비신을 전시하고 있다.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고달사지(高達寺址·사적 제382호)에 있는 원종대사탑비는 고려 초의 국사 원종대사 찬유(元宗大師 璨幽·869~958년)의 비로, 975년(고려 광종 26)에 건립됐다.

생동감이 넘치는 입체 조각의 귀부(받침돌)와 이수(머릿돌)는 보물 제6호로 지정돼 있다.

그러나 비신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 무너져 여덟 조각이 났고. 이후 이 상태 그대로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존돼 있었다. 고달사지 현장에는 귀부 위에 이수가 얹혀진 형태만 남게 됐다.

비신이 없는 상태의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비신의 크기는 높이 291㎝, 너비 162㎝, 두께 31㎝로, 귀부와 비신, 이수가 합쳐진 원래 총 높이는 508cm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 탑비의 귀부와 이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우람한 형상을 자랑한다. 비문에는 원종대사의 탄생과 출가, 당나라 유학과정, 귀국 후 국사로 책봉되어 입적한 생애를 기술하고 있다.

고려 왕실의 비호를 받았던 고달사지는 고달사지 승탑(국보 제4호), 원종대사탑(보물 제7호), 석조대좌(보물 제8호), 석조(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7호) 등 웅장하고 화려했던 고려 불교문화재가 산재해 있는 곳이다.

원종대사탑비 비문이 고향인 여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2010년부터 복원사업을 추진한 시의 노력 덕분이다.

당시 여주시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고달사지 현장에 비신을 복제해 탑비를 복원하고, 원래 비신은 박물관 실내에 전시하는 조건으로 복원승인을 받았다.

시는 2012년 비신 복제 3D 스캔을 완료하고 복원공사 실시설계를 거쳐 같은 해 12월 비신 복제 및 탑비 복원공사를 시작했다.

비신을 복원한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문화재청의 기술지도,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쳐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석장 120호인 이재순 석장이 2014년 8월 복원공사를 완료하면서 웅장하고 화려한 고려 불교미술의 원형을 재현했다.

구본만 여주박물관장은 "여주시의 소중한 문화재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면서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협조해 준 국립중앙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hedgeho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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