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불순세력' 개입 엄단하겠다는 정부..불신 자초하고 '외부세력 탓'

정용인 기자 2016. 7. 2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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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성주군민들의 분노가 식을 줄 모른다. 주민과 협의도 없이 정부의 일방적 결정에 군민들이 상경투쟁까지 불사하고 있다. 그러자 정부는 ‘외부세력’과 ‘괴담에 의해 선동된 주민들’이라는 오래된 담론을 꺼내 들었다.
7월 21일 서울역 광장에서 성주군민들이 사드 배치 반대집회를 열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7월 21일 오후 2시 서울역 앞. 끝없이 늘어서 있는 경찰버스가 기자를 먼저 맞이한다. 경찰병력이 서울역 광장을 둘러싸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경찰 출동은 ‘성주 사드 배치 저지 투쟁위원회’(이하 투쟁위)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첫 상경집회다. 2000여명의 군민들이 버스 50여대에 나눠 타고 상경했다. 이들의 가슴에는 ○○면 △△△ 식으로 적힌 명찰이 걸려 있다. ‘사드배치 결사반대’라고 적힌 파란색 머리띠, 나비모양 파란색 리본, 손에 든 태극기로 경북 성주군민과 ‘그밖의 사람들’을 구분할 수 있다.

땡볕에 일부 노인들은 경찰들이 친 폴리스라인에 나와 계단 옆 그늘에 앉아 있다. 바리깡을 든 여성들이 호출돼 나왔다. 삭발식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매일 저녁, 경북 성주군청 앞에서는 촛불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7월 13일부터 시작되었다. 황교안 총리가 떠난 주말, 촛불시위 참가자들 사이에서 이런 불만이 터져나왔다. “사드 배치 후보지로 칠곡군이 검토된다고 했을 때 군수와 군의회 의장이 삭발까지 하면서 ‘결사반대’를 외쳤다. 그래서 결국 인구수도 적고 군수도 적극적으로 안 움직이는 성주군이 봉이 된 것 아니냐.”

촛불시위에 참석한 김향곤 군수는 “때가 되면 실행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날 서울역 상경집회에서 삭발식은 거행되었다.

집회는 6시까지 예정되어 있었지만 약 2시간 만에 마무리되었다. 여러 언론사 기자들이 현장에 나와 취재했지만 참가한 군민 개개인의 인터뷰에는 실패했다. 투쟁위 지휘부 측에서 “언론사의 취재 요청에 응하지 말라”는 행동지침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현장 취재기자들 입에서 짜증 섞인 한숨이 흘러나왔다. 기껏 입을 연 사람도 주위의 만류에 다시 입을 굳게 다물었다.

“성주군민들의 절대다수가 분노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한마디도 성주군민과 협의도 안 하고 배치를 결정했냐는 것이다. 일본도 발표에서 배치까지 2년 걸렸고, 그 과정에서 주민설명회와 지방의회 승인 등의 절차를 지켰다. 그 뒤 환경영향평가도 실시했다. 그런데 우리는 어땠나. 사드 배치하겠다고 한 후 성주로 결정나기까지 채 5일도 걸리지 않지 않았나.” 투쟁위 대외정책국장을 맡고 있는 석현철씨(44)의 말이다.

엄밀히 말해 석씨의 말이 정확한 것은 아니다. 배치 지역 결정과 실제 배치는 다르다. 사드 배치 결정 후, 국내 언론 르포로 잘 알려진 ‘교토 교가미사키 AN/TPY-2 레이더 기지’는 배치 지역 결정 후 주민설명회, 지역의회의 다른 기지 사찰 등의 과정을 거쳤다. 도지사와 시장이 배치 승인을 한 것은 7개월 뒤였고, 다시 3개월 후에 토지 제공과 관련한 협의가 이뤄졌다. 환경영향평가 등의 작업은 그 후 이뤄졌다. 이 프로세스가 한국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면 석 국장이 말한 ‘절차’는 군수 및 군의회 승인 이후에 진행될 일이다.

하지만 석 국장이 말한 “성주군민 대부분이 분노하고 있다”는 말은 사실에 가깝다. 집회장 옆, 2층 서울역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앞. 성주지역 주민 이수인씨(59)가 홀로 분투하고 있었다. “존경하는 서울시민 여러분,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10만명이 필요합니다. 미국 백악관 대사관 청원 사이트에 들어가 사드 배치에 대한 의견을 올려주십시오.” 그의 손에는 ‘사드배치 결사반대 10만 청원운동’이라고 적힌 전단지가 들려 있었다. 호소에도 전단지를 받아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MBC, KBS, 오마이TV 등 방송카메라의 취재경쟁만 뜨거웠다. “성주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 사드는 필요치 않습니다”라는 그의 말에 한 노인이 “옳소!”라고 호응했지만 재향군인회 배지를 단 다른 노인은 “여기까지 올라와서 빨갱이 소리를 하고 있다”며 화를 내며 지나갔다. 성주군민들은 집회장의 쓰레기를 치우고 버스를 타고 내려갔고, 새누리당 당원인 성주군수는 새누리당 원내대표 면담을 위해 여의도로 향했다. 이날 상경투쟁은 어떤 소득을 거둔 걸까.

외부세력 개입. 7월 15일 황교안 총리와 한민구 국방장관의 ‘봉변사태’ 후 언론을 통해 나온 말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처음 발언 당사자는 이재복 투쟁위 위원장이다. 백철현 성주 사드배치 저지 투쟁위원회 공동위원장은 “그 언론 보도들이 엉터리였다”고 말한다. “언론들이 그런 답변을 유도한 것이다. 황교안 총리 등 정부 쪽 일행을 가로막은 사람들 중에는 외지인도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물으니 ‘그날 집회 참가자들 중 칠곡이나 대구에서 온 사람도 일부 있었던 모양’이라고 답했는데, 그걸 침소봉대(針小棒大)해 보도가 나간 모양이다.”

하지만 이 ‘외부세력론’은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가 됐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7월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른바 ‘외부세력’의 파악 기준이 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성주 출신이고 초·중·고등학교를 성주에서 나왔더라도 (외지로) 간 사람은 현재 성주군민으로 보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경찰은 그들이 파악한 7월 15일 집회에 참여한 ‘외지인’들의 명단을 발표했다. 경찰이 이날 집회에 참여한 외지인으로 발표한 변홍철씨(시인·녹색당 대구시 공동운영위원장)는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미 나는 SNS 등을 통해 내가 당시 현장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 현장 상황을 전하는 등 집회 참가 사실을 공공연히 밝혀 왔다”며 “지난 20대 총선 출마 당시 ‘사드 배치 반대’를 공약으로 내걸고 출마했던 녹색당의 정치인으로, 정부의 일방적이고 졸속적인 사드 배치 지역 결정 및 발표에 대해 해당 지역민과 함께 분노하고 두려움과 혼란을 느끼는 주민들과 현장에서 함께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분명한 사실은 저를 비롯해 현재 경찰에 ‘외부세력’으로 지목된 사람들은 당일뿐 아니라 지금까지 성주군민들의 투쟁에 직접 개입한 바가 없다”며 “마치 ‘외부세력’의 개입과 선동으로 지금 성주군민들의 투쟁이 조직되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주민들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7월 17일, <조선일보>와 일부 극우성향 인터넷 매체들은 7월 15일 집회에 참여한 한 여성을 ‘성주에 개입한 외부인’, ‘통진당 재건 전문시위꾼’으로 지목했다. 근거는 인터넷에 올려진 이날 현장 상황을 담은 동영상이다. 동영상에서 이 여성의 발언 중 “북핵은요, 저희하고 남쪽하고 싸우기 위한 핵무기가 아닙니다”라는 대목을 지목해 “남쪽이 한국을 의미한다면 ‘저희’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고 공격했다. ‘저희’는 사실상 북한을 가리키는 말로 북한의 입장에서 발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영상을 찍은 <한국유통신문> 측은 동영상 관련 논란이 확대되자 7월 19일 비공개로 돌렸지만, 일베 등 혐오사이트는 해당 동영상 중 여성의 발언을 편집해 ‘극렬선동녀’, ‘성주튄녀’, ‘성주의 붉은 별’ 등의 딱지를 붙인 영상을 만들어 배포했다. ‘튄녀’ 등의 이름을 붙인 것은 “그녀의 발언이 집회 참석자의 반발을 사자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조선일보>의 보도를 딴 것이고, ‘붉은 별’ 운운은 이날 집회 참석 때 그녀가 쓴 모자에서 딴 별명으로 보인다. 모자에는 야광색 별 모양이 붙어 있었다. 일베 등 혐오사이트는 중국 혁명 당시 모택동이 쓴 붉은 별이 달린 모자 등을 제시하며 “이 여성의 정체가 의심스럽다”며 의혹 글을 확산시켰다. <주간경향>은 7월 19일부터 21일까지 해당 여성인 염모씨(44)를 접촉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정체가 의심되는 외부세력’으로 지목된 염씨는 성주로 시집와 아이 넷을 둔 15년차 성주주민이었다. 염씨는 “발언 중 ‘저희하고, 남쪽하고’라고 말하는 것은 반복하는 말로 ‘저희’는 당연히 한국을 가리키는 것인데, 그걸 가지고 터무니없는 말을 만들어낸 것”이라며 “그날 쓰고 나간 모자에 별이 달려 있었다는 것도 해당 동영상 캡처 사진을 보고 처음 알았다”고 덧붙였다. 7월 20일, <경향신문> 인터넷판을 통해 염씨 인터뷰가 나간 뒤에도 염씨에 대한 의혹 제기는 계속되었다.

MBC는 이날 저녁 8시 뉴스 ‘사드 집회서 북핵 옹호 검찰 수사 착수’라는 꼭지에서 “이 여성이 ‘북한’을 가리키며 쓴 ‘저희’라는 표현이 논란이 일고 있다”며 ‘성명불상의 반미를 선동하는 모자 쓴 여인’이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를 했다며 고발한 장기정 자유청년연합 대표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7월 20일 당일 <경향신문>이 이미 이 여성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제기된 의혹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날 확인하지도 않고 악의적 프레임을 그대로 받아쓴 것”이라며 이 보도를 ‘오늘의 나쁜 보도’로 선정했다.

성주군에서 촛불시위가 열린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읍내 농협중앙회 앞 인도에서 세월호 참사를 기리는 행사 등이 열렸다. 하지만 당시 참여규모는 20~30여명이었다. 성주군청 앞에서 수천 명의 군민들이 참여한 촛불시위가 매일 열린 것은 처음이다. 성주군민들의 분노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서울역 앞에서 만난 이수인씨에게 물었다. 그는 자신은 전문시위꾼도 외부세력도 아니라며 명함을 꺼내 기자에게 건냈다. ‘한개민속마을 장독은행 은행장’이라는 직함이 적혀 있었다. 주소는 성주군 월항면이다. “누가 저에 대해 물어보면 ‘600년 전통마을에서 문화농사를 짓는 사람’이라고 소개해 왔습니다. 사드가 들어오게 되면 이 전통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거리에 나선 이유는 단지 내 이익이 아니라 우리 국민, 우리 후손 누구에게도 전쟁을 물려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분노의 조직화, ‘성주군민으로서 나만 분노하고 있는 것이 아니구나’라고 느끼게 된 ‘배후’는 있었다. 바로 카톡방이었다. 친환경농산물 공동구매 및 산지 농민과 직접 연결하기 위해 개설된 이 카톡 대화방과 밴드를 통해 주민들의 ‘사드 반대투쟁’은 조직되었다. 앞서 염씨가 7월 15일 집회에 나간 것도 이 카톡대화방에서 자신이 한 발언을 책임지기 위한 것이었다. “자녀들 등교 거부를 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반대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적극 찬성했어요. 등교 거부까지는 결국 가지 않았는데, 그날 했던 발언을 책임지는 의미에서 집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간 날 공교롭게도 황교안 총리가 방문했고요.” 염씨는 ‘북핵’ 발언 논란이 벌어진 후 자신의 발언이 잘못된 것인가 문의했다. “사실 북핵에 대해서 스스로 찾아본 것도 있지만 김진향 교수님(카이스트 교수)이라고, 통일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전화를 걸어서 물어봤어요. 혹시 내가 잘못 말한 것인가. 아니라는 답을 받았습니다.”

“현재 성주지역은 지역적 봉기(uprising)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임미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의 설명이다. 그는 한국현대사의 주요 대중운동을 연구해 왔다.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한 분석, <경기동부> 등의 저서를 통해 이른바 항쟁 주도세력과 참여대중의 관계를 연구해 왔다. 성주군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은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분노에 바탕을 두고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봉기에 가까운데, 그 성격은 ‘정치적인 동시에 비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생존권, 생명과 관련된 위협 또는 두려움을 느낀다는 점에서는 ‘정치를 넘어선 비정치’적이며, 분노에 바탕한 저항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사건에서 2008년 광우병 시위를 떠올리는 점과 관련해 임 박사는 “2008년의 상황과는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도 있다”고 덧붙였다. “생명과 관련한 공포를 느낀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지만 2008년 당시는 전국적인 이슈였고, 생명 관련 공포로부터 시작되어 먹거리 주권, 대운하 건설, 민영화 반대 등 공공성 이슈로 나아갔지만 현재 사드는 배치 결정 지역을 중심으로 결정과정의 비민주성에 이슈가 집중되어 있을 뿐 한반도 평화문제와 같은 이슈로 확산되지 않고 있다. 시민사회도 북한이나 미국 문제가 개입할 경우 ‘종북’으로 역공받을 수 있는 우려 때문에 쉽게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성주군민들은 7월 13일부터 매일 밤 사드 배치 반대 촛불시위를 열고 있다. / 성주군청 제공

이창언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교수는 “보수언론은 지역주민의 이해는 사익이고 정부 정책은 공익이라는 시각을 전제로 보도하고 있는데, 절차적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주민 참여 없이 이뤄진 결정이 공익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안보를 위해 사드 배치가 필요하다면서 정작 국민의 자유로운 의견개진과 참여를 배제하는 ‘외부세력론’을 적극 유포하는 것은 자가당착이자 전체주의적 발상”이라며 “성주에 거주하지도 않고 성주 사드 배치를 결정한 정부와 국방부, 성주 사정도 모르며 외부세력 배후론을 유포하는 보수매체 등이 이 사안과 관련한 ‘진짜 외부세력’ 아니냐”고 되물었다.

다시 서울역 광장. 경찰의 폴리스라인 밖에서 한 여성이 피켓을 들고 있었다. “용산 철거민 살해, 쌍용노동자, 천안함, 세월호, 밀양, 강정, 사드 성주… 나라 팔고 국민 죽여 호의호식 딴나라당 새누리”라고 적혀 있었다. 50대 초반의 경남 마산이 고향이라는 윤미경씨다. 그는 용산이나 세월호, 밀양 등의 일을 피켓에 왜 적어 왔느냐는 질문에 “MB정부 때부터 좌경이나 용공 딱지를 붙여 국민들을 편가르기해 온 일이 되풀이되어 왔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 적어 온 것”이라며 “지금도 외부세력이니 괴담이니 하면서 사드 배치가 한반도 평화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해칠 것이라는 국민과 성주군민을 갈라놓으려는 것을 보고 화가 나 피켓을 만들어 나왔다”고 말했다. 성주군민이 아니니 윤씨는 ‘외부세력’일까.

이른바 ‘외부세력들’과 ‘그들이 유포하는 괴담에 의해 선동된 선량한 주민들’을 나누는 담론은 상당히 오래된 담론이다. 유언비어와 루머 때문에 분노한 시민들의 폭동이라는 프레임은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군부정권에 의해서도 사용된 논리다. 5·18이 광주에서 일어나게 된 것이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사람들의 씨를 말리러 왔다”, “공수부대들이 젊은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아이를 꺼냈다” 등의 유언비어에 흥분한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면서 일어났다는 것. 가까운 예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도 ‘뇌송송 구멍탁’과 같은 광우병에 대한 과장된 괴담 때문에 사람들이 거리에 나왔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실제 당시 그런 소문 내지는 루머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게 사람들이 거리에 나온 원인일까. 실제 이번 사드 논란 후 ‘공군에서 5년 동안 X밴드 레이더를 운용, 정비한 군인 출신’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의 글이 많이 공유되었다. 그는 글에서 “사드 문제를 전자파 유해성과 같은 일차원적 문제로 접근하면 종북좌꼴의 선동질이라는 소리밖에 못들을 것”이라며 “문제의 본질은 민주적 의사결정, 국민의 권리와 안전과 같은 정치·사회적 부분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주군민들은 어떻게 말할까.

서울역 집회장 한편에는 지역에서 발행하는 신문이 쌓여 있었다. 신문 1면에는 성주군청 앞에서 촛불시위를 하는 사진이 실려 있다. 그 뒤로 사드가 배치될 성산포대의 불빛이 한 사진에 담겨 있다. 석현철 대외정책국장은 사진에서 성산포대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성주읍내가 여기서 북쪽이에요. 1.5㎞도 안 떨어진 곳입니다. 일본이나 괌 기지를 말하는데, 이렇게 주민 밀집지역 위를 지나는 경우가 있었습니까.” 이수인씨는 양봉농가의 피해를 주장했다. “5도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지역주민에게 피해는 없다고 하지만 날아다닐 곤충들은 또 어떻게 할 겁니까.” 이런 ‘우려들’을 모두 근거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이슈를 두고 어떤 정보나 지식이 합리적·과학적이냐 아니면 이성적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이 적절한 접근법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가 불평등하다는 명제를 합리성이라는 잣대로 판단할 수 있는가.”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이다. 이를테면 현대과학에서 가장 과학적 지식이 집약되어 있는 원자력은 과학주의적 접근으로는 통제할 수 있어 안전하다고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후쿠시마 사건과 같이 과거의 예측을 넘어서는 사건을 통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았느냐고 그는 반문했다. “오히려 어떤 극단적인 사고나 상상적 시나리오가 어떤 조건에서 확산되느냐는 것이 짚어봐야 한다. 대표적으로 정부나 학계, 언론과 같은 기존 제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때 제도 내 기관이 제공하지 않는 다른 종류의 지식과 정보가 상상적 시나리오로 확산되는 것이다. 2008년 촛불 때도 정부나 사회제도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출처를 알지 못하는 스토리, 온갖 음모론과 사망설 등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신 교수는 리스크의 ‘사회학적 본질’은 이 역설에 있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이 교통사고를 안 당하는 것은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조심하기 때문이다. 50년 동안 살아도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고 넋 놓고 다니면 아마도 몇 달 안에 사고를 당하기 십상이다.” 다시 이 논리를 ‘사회운동은 괴담에 의해 촉발되는가’라는 문제에 적용해보자. “어디까지가 근거 없고 쓸데 없는 괴담이고, 어디까지가 합리적 우려일까. 실제 이 경계선은 넓은 회색지대를 가질 것이다. 경계해야 할 것은 극단적인 양 극단, 즉 ‘아무 문제 없다’와 ‘100% 위험하다’일 것이다. 이 방향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는 광범위한 회색지대에 대한 쟁점들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합리적인 논쟁을 할 수 있게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의 대응은 과연 그런 식이었을까. 7월 17일 국방부는 ‘THAAD 관련 괴담에 대한 입장’이라는 A4용지 7쪽짜리 문건을 배포했다. 총 17가지 항목으로 정리한 사드 관련 ‘괴담’에는 “전자파가 수분을 빨아들여 인근 주민 신체 내부에 화상이 발생할 것이다”라는 출처불명의 ‘괴담’도 있지만, “사드는 수도권 방어에 취약하다”, “사드 배치로 한국이 미·중 강대국의 군사충돌 분쟁지역이 될 것” 등의 야권과 시민사회진영의 주장까지 모두 ‘괴담’으로 치부하고 있다. “사실 사드 배치는 매우 논쟁적인 이슈인데, 지금 논란의 출발은 정부가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린 데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냐.” 신진욱 교수의 결론이다. 7월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NSC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북한은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자위적 방어조치인 우리의 사드 배치 결정을 적반하장격으로 왜곡·비난하고, 반정부 투쟁을 선동하면서 남남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며 “불순세력이 (사드 반대 시위에) 가담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웠을까. 배우려는 생각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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