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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멋따라> 공민왕·퇴계·이육사 자취따라…안동 왕모산성길

송고시간2016-07-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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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멋따라> 공민왕·퇴계·이육사 자취따라…안동 왕모산성길 - 2

(안동=연합뉴스) 이강일 기자 =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하는 경북 안동에는 고려 공민왕과 관련한 전설과 풍속이 많이 전해진다.

홍건적이 침입하자 1361년 공민왕은 수도인 개경을 떠나 파주와 충주를 거쳐 안동으로 왔다.

공민왕은 안동이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이고, 해안과 멀리 떨어져 있어 왜구 침입도 피할 수 있는 곳이어서 몽진했다고 한다.

공민왕이 안동에 2개월만 머물렀으나 그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다.

도산면 왕모산, 가송리 딸당, 예안면 며느리당·딸당, 풍산읍 수곡리 국신당 등 공민왕이나 그 가족을 신격화해 신앙 대상으로 삼은 마을도 9곳이나 있다.

공민왕과 관련한 전설 가운데 도산면 원천리(원촌리와 천곡리를 합쳐 '원천리'라고 부른다) 왕모산은 공민왕이 산성을 쌓아 어머니 명덕태후(明德太后)를 피신시킨 곳이다고 한다.

<길따라 멋따라> 공민왕·퇴계·이육사 자취따라…안동 왕모산성길 - 3

해발 648m의 왕모산 8부 능선에 공민왕은 산성을 쌓았다.

왕모산성 가는 길은 원천리 이육사 문학관 맞은편 내살미에서 시작한다.

내살미는 원천리에서 제일 큰 자연 마을로 그 앞을 흐르는 낙동강이 수려한 데다 강가에 쌓인 모래가 깨끗해 '천사미'(川沙美)라고도 했다.

나무 데크를 설치한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면 수백 년 전 피란을 와 어머니를 위해 성을 쌓던 공민왕 심정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소나무와 떡갈나무 숲길이 찾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산성은 시간이 흐르며 대부분 없어지고 지금은 50m가량 흔적만 남아있다.

그러나 왕모산성 안에는 공민왕 어머니를 신으로 모신 왕모당(王母堂)이 아직 있다. 왕모당 안에는 남녀 한 쌍의 목상이 있어 혼자서 보면 으스스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고 등산객은 말한다.

왕모당을 지나 산을 계속 오르면 갈선대(葛仙臺)가 나온다. 최고 풍광을 자랑하는 이곳은 내살미에서 천천히 걸어도 50분이면 도착한다.

안동에서는 갈선대 절벽을 밑에서 올려다 볼 때 칼처럼 날카롭게 보인다고 해 '칼선대'라고 한다.

갈선대는 안동 출신의 민족저항시인 이육사가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절정'의 시상을 떠올린 곳이라고 한다.

일제 치하 암울한 시기에 이육사는 갈선대를 찾아 생가를 내려다보며 시상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명작이 탄생했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 /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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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선대에 서면 낭떠러지 아래로 원천리 물돌이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다.

원천리 물돌이 마을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회마을과 견줄 만한 경치를 자랑한다. 멀리 이육사 생가터와 문학관도 희미하게 보인다.

한 번이라도 왕모산을 올라본 사람은 모두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마을을 돌아나가는 강과 주변을 둘러싼 산이 한 폭의 동양화 그 자체라고 평가한다.

원천리 물돌이 마을 주변은 벼슬에서 물러난 퇴계 선생이 낙향해 있으면서 청량산을 찾을 때면 이곳에 말을 매어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말맨대'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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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밟고 산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오래된 건물이 나타난다.

'월란정사'(月瀾精舍)이다. 수많은 제자를 뒀던 퇴계 선생이 유일하게 만취당(晩翠堂) 김사원(金士元)에게 정자터를 내 줬다고 전해진다. 김사원 등이 10년여 수학한 '월란암'(月瀾庵) 터에 후손들이 월란정사를 지었다.

오랜 세월을 지내며 일부가 허물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월란정사 주변을 돌아보면 낙동강과 넓은 들판이 이루는 풍광이 펼쳐진다.

퇴계 선생이 자주 이곳을 찾아 강학을 하고 시를 지은 이유를 알 수도 있을 듯한 경치다.

왕모산을 내려와 원천교로 낙동강을 건너면 퇴계 종택과 퇴계 묘가 있는 하계마을이 있다.

퇴계 묘소 앞에는 '죽어서도 시아버지(퇴계)를 모시겠다'며 시아버지 곁에 묻어 달라고 당부한 선생의 맏며느리 금씨 부인의 묘가 있어 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갈선대 정상에서 가물가물 보이던 이육사 문학관에서는 나라 잃은 울분을 노래하던 이육사의 시혼을 느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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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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