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Health care'가 헬스 카레?

송태호 송내과의원 원장·의학박사 2016. 7. 23. 03: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송태호의 의사도 사람] 현대의학 부정하는 이들 검증되지 않은 시술로 환자를 그릇된 길로 이끌어 사이비 치료법 없앨 길은 엄정한 과학적 방법뿐

자칭 의학 저널리스트였던 허모씨가 관절염 환자가 카레를 먹고 치료됐다는 미국 타임지 기사라는 내용을 SNS에 올린 적이 있다. 그는 이미 '병원에 가지 말아야 할 81가지 이유' '의사를 믿지 말아야 할 72가지 이유' 같은 책을 내서 현대 의료를 전면적으로 부정해왔기에 일반인들에게 상당한 반응을 일으켰었다. 하지만 이는 엉터리 번역이 불러온 참사였다. 타임지의 'Health care(의학적 치료)'의 'care'를 '카레'라고 오역한 것이다. Danger를 '단거'로 번역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사건은 '헬스 카레'라는 이름으로 회자되며 허씨 주장 전반에 큰 타격을 줬다. 어떤 의사가 타임지를 꼼꼼히 읽고 반론을 제기했기에 망정이지 인터넷에 카레가 관절염에 특효라는 주장이 넘쳐날 뻔했다.

그랬던 허씨가 당뇨와 폐결핵을 앓다가 최근 55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떴다. 숨지기 전까지 엑스레이는 물론 CT나 MRI 촬영도 거부하고 일절 화학적 의약품 복용을 거부한 그의 죽음은 나 같은 의사에게 허탈함을 안겨준다. 최근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운동'이나 '약을 끊은 사람들'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들 때문에 치료 시기를 놓치는 환자들도 많아 그런 자괴감은 더 크다.

사람들은 책에 나온 내용이라면 일단 어느 정도 믿는 경향이 있다. 책을 썼다는 것은 우선 그 내용과 상관없이 어떤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수시로 책을 쓰는 이유도 그와 비슷할 것이다. 활자화되었다는 그 자체가 옳고 그름을 떠나 어느 정도 명분을 획득한다. 하지만 은을 금이라 우긴다고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근거가 부족하고 자기 입맛대로 쓴 책들은 그저 자기주장이며 대중을 속일 뿐이다.

이런 혹세무민(惑世誣民)을 겪으면서도 의료계는 미흡하게 대처했다. 점잖은 체면에 진흙탕에 빠지기 싫다고 애써 외면하고 겨우 진료실에서 환자들에게만 몇 마디 할 뿐이었다. 의료인들은 전문가로서 잘못된 사실을 적극적으로 바로잡아 올바른 여론을 형성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2011년 미국에서 벌어진 일은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2004년 '그들이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은 자연치료법'이라는 제목의 베스트셀러를 쓴 트루도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로 2011년 미국 FDA와 미국연방무역위원회에 고발당해 수천만달러의 벌금을 확정 선고받고 투옥됐으며 같은 종류의 출판을 하지 못하게 됐다.

독일 신경과의사 크리스티안 구르는 저서 '나는 왜 늘 아픈가?'에서 일반인들이 자주 빠져드는 잘못된 치료법의 특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오래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일수록, 질병 특성에 대해 두루뭉술하게 표현할수록, 총체적·보완적·천연적·필연적이라고 설명하는 치료법일수록, 대규모 연구보다는 개인적 경험에 바탕을 둔 치료법일수록, 별난 도구를 사용하는 치료법일수록 잘못된 치료법일 확률이 높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저자 아툴 가완디가 캘리포니아공대 졸업연설에서 했던 말을 들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과학은 아직 충분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학적 증거가 압도적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때로는 노골적으로 부정합니다. 나쁜 과학의 패턴을 알리고 좋은 과학의 진실을 내세우는 것이 과학을 신뢰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입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