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로 돈 준다니 좋긴한데.. 청년 취업난 해결에 도움 안돼"

2016. 7. 21.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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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1000명에게 '청년수당' 물어보니]
[동아일보]
“정말 힘들어요. 돈이 격차를 더 크게 만드니까요.”

19일 만난 취업준비생 김모 씨(30)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취업하지 못한 그는 초조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김 씨는 “처음 서울시의 청년활동지원사업(청년수당) 공고를 봤을 때 슬펐다”고 말했다. “대상이 만 29세까지더라고요. 몇 개월 일찍 태어나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거죠. 돈이 없어서 영어 등 각종 학원을 못 다니고 자격증을 못 따요. 여기서 스펙 격차가 발생하잖아요. 청년수당에 찬성이에요.”

또 다른 취업준비생 김모 씨(25·여) 역시 최근 만만치 않은 아픔을 겪었다. 수십 번 서류 통과에 실패한 끝에 A기업에 인턴으로 입사했지만 2주 만에 퇴출됐기 때문. 회사 측은 매출 부진을 이유로 인턴들을 모두 내보냈다. 하지만 김 씨는 “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정말 너무한다”면서도 “청년수당 같은 정책은 싫다. 내가 내는 세금에서 빠져나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 20대 4명 중 1명 “생활비 부족해 찬성”

최근 서울시의 청년수당제도 등 청년에게 현금을 지원하는 청년복지 정책이 지방자치단체로 확산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인 청년이 원하는 복지 정책은 무엇인지 고민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일보가 청년 1000명을 설문조사한 이유다. 절반을 조금 넘는 응답자가 청년수당, 청년배당 등의 정책에 찬성했지만 반대한다거나 모르겠다는 응답도 47.0%에 달했다.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아르바이트를 3개 한다는 대학 졸업반 김모 씨(26)는 “청년의 처지를 이해하려는 노력 같아 청년수당에 찬성한다”고 했다. 반면에 취업준비생 박모 씨(27)는 “수당을 받아도 그때뿐이다. 일회성 정책보다 장기 대책에 돈을 써야 한다”며 반대했다.

이번 조사에서 청년들의 고단한 삶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청년수당에 찬성한 이유로 ‘먹고사는 생활비가 부족하기 때문’(26.5%), ‘대학 등록금이나 학비가 필요하기 때문’(19.6%)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청년수당을 받는다면 어떻게 쓰겠냐’는 질문에도 ‘생활비로 쓰겠다’(38.0%)와 ‘학원비 등으로 사용하겠다’(34.5%), ‘대학 등록금에 보태겠다’(14.2%) 순으로 답했다. 지원되는 청년수당이 구직을 위한 준비에 쓰이기보다 당장 돈이 필요한 생계비로 쓰일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취업준비생 최모 씨(25)는 “식사 비용 등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지출된다”고 하소연했다.

○ 청년들 “실상 모르는 탁상 대책”

서울의 모 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한 박모 씨(27)는 2년간의 노력 끝에 토익 900점대 점수, 봉사활동, 어학연수, 자격증, 학점 등 속칭 ‘취업 스펙 5종 세트’를 모두 갖췄다. 하지만 매번 입사 서류심사에서 탈락하고 있다. 그는 “이게 정말 내 능력이 부족한 탓이냐”고 반문했다. 실제 이번 조사에서 청년수당을 반대하는 이유의 56.6%가 ‘청년실업, 기회의 불평등 등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나타났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 사회 구조 개선을 통한 일자리 확보다. 이를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가 현장에서 만난 상당수 청년은 ‘청년수당의 형평성’을 문제로 지적했다. 청년수당 지원 조건 중 하나인 ‘주당 근로시간 30시간 미만’이 요즘 청년들의 삶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취업준비생 오모 씨(26)는 “상당수 청년이 1, 2개의 아르바이트에 종사하면서 취업을 준비하기 때문에 주 30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도 많다”며 “자칫 적당히 살면서 놀고 있는 사람들만 청년수당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전모 씨(26)는 “선발 기준인 미취업 기간 등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아 정말 필요한 지원자가 받지 못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학생 장모 씨(23·여)도 “청년실업은 전국 모든 청년의 문제인데 왜 일부 지역 청년들에게만 수당을 주느냐”라고 말했다.

○ 전문가들 “돈보다 직업적 경험이 필요”

청년들의 생각은 취업에 성공하거나 취업을 준비 중인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설문 대상 1000명 중 대학생, 취업준비생 등 비경제활동 청년(656명)과 취업자, 개인사업자 등 경제활동 청년(344명)을 나눠 분석해도 질문별 응답 비율은 5∼10%포인트 차만 보였다. 대학원생 최모 씨(27)는 “일자리 확충이든, 청년 창업 지원이든 내실을 다져 달라”고 하소연했다. 창업을 준비 중인 김모 씨(30)도 “취업 준비만 4년을 하다 실패한 후 창업 쪽으로 방향을 돌렸지만 여전히 답이 없다”며 “현금 지원보다는 창업 환경에 투자해 달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역시 실질적으로 청년을 취업시켜 주는 것이 아닌 현금 지급보다는 취업이나 창업 인프라를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양질의 직업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직업적 경험”이라며 “청년들의 직무 역량을 함양하는 과정을 크게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포퓰리즘적 성향이 강하고 중소기업의 고용난을 심화시킬 수 있다”며 “청년들이 바라는 일자리에 근무하면서 수당을 지방정부로부터 보조받는 형태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종 zozo@donga.com·김호경 기자·박노명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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