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타임스 기자 "'개돼지'발언 충격..'여론재판' 파면 반대"

하세린 기자 2016. 7. 1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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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보로윅 기자 인터뷰 "강남역 살인사건 기사 악플러와의 인터뷰 보도예정"

[머니투데이 하세린 기자] [스티븐 보로윅 기자 인터뷰 "강남역 살인사건 기사 악플러와의 인터뷰 보도예정"]

14일 서울 청계천에서 포즈를 잡은 스티븐 보로윅 LA타임스 기자. /사진=하세린 기자

'국민의 99%가 개·돼지로 신분제로 회귀해야 한다'라는 교육부 고위 공무원의 발언은 외국에서도 그야말로 '뉴스감'이었다.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발언을 외신으로서는 처음 보도한 LA타임스의 스티븐 보로윅(Steven Borowiec) 기자는 반향을 직감했고 기사를 타전했다.

외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국의 소식을 전한 것이지만, 그의 기사는 한국에서도 널리 공유됐다. 소셜미디어에서 "우리는 자랑스런 한국의 개돼지"라는 분노와 씁쓸함이 밴 자기비하의 소개글과 함께 곳곳에 링크가 걸렸다. 그는 국민들의 분노는 이해하겠지만 술자리에서의 발언과 언론보도, 국회에서의 질타, 파면 결정으로 이어져왔던 여론으로 재단되는 숨가쁜 일정에 대해서는 아쉬움도 드러냈다.

지난 14일 서울 청계천 주변의 한 카페에서 만난 보로윅은 재차 "양극화가 심해지고 '흙수저''금수저'론 등 사회이동 가능성 부족을 얘기하는 시점에서 이런 발언이 나왔다는 게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참고로 영어에서는 금수저에 해당하는 '은수저'(silver spoon)라는 표현은 있지만 '흙수저'에 상응하는 표현은 없다).

특히 그가 기사에서 나 전 기획관의 발언이 나온 시점이 최악이라며 사회 계층 간 이동성 부족을 비판한 점은 한국 사회에서도 공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보로윅은 나 전 기획관이 한국의 교육 정책을 담당하는 교육부의 고위 간부이고,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신분의 상승을 위한 기회가 바로 교육이기 때문에 한국인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고도 전했다.

보로윅 기자는 양극화가 전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에서는 학벌 위주의 사회로 학생 때부터 좌절을 겪게 된다는 점을 우려했다.

"양극화는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지만 한국에서는 성공할 수 있는 길이 극히 좁다는 생각을 해요. 일단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않으면 앞으로 인생에서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너무 크죠. 그것도 서울에서 상위 5~6개의 대학 정도요? 만 18세면 앞으로의 인생이 거의 결정나버리는 것처럼.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적어서 한국에서 양극화 논의가 더 치열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북미나 유럽에선 많은 사람들이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더라도) 자신의 노력이나 재능으로 어떻게든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도 강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번 사건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 고위 공무원 시험으로 '계급'을 가르는 '시험 만연 사회'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한국에서 한가지 슬픈 점은 직장을 구하려고 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직장을 구하기 위한 시험 대비를 하는 것 말고는 하는 게 없다는 점이에요. 엄청난 재능을 낭비하는 거죠.“

그러나 나 전 기획관의 발언을 최초 보도한 경향신문의 보도 윤리에 대해선 아쉬움을 표했다. 경향신문이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고위 간부의 비뚤어진 인식' 등을 이유로 보도를 결정했지만, 취재원에게 발언이 보도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리고 기사화한 것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한 것. '오프더레코드'(비보도 전제) 하에 식사 자리를 했는지 여부도 기사에 분명치 않다고 했다.

나 전 기획관의 파면에 대해서도 "기획관의 일은 정책을 만드는 것이지 국민을 좋아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며 개인적으로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그가 '사석'에서 '사견'을 말한 것이 해고의 사유가 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다만 캐나다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나서 보도되면, 시민들의 극심한 반대 여론에 파면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북미나 유럽과는 다른 한국의 폐쇄적인 언론사 채용 문화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뉴욕타임스가 기자를 채용하는데 1년에 한번 시험을 보지는 않잖아요. 그런 시스템은 없어요. 채용 비리 등을 없애고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서 시험 제도를 도입한 배경이나 취지는 이해하지만요."

그는 언론사 입사를 희망하는 한국 대학생들과 만났을 때의 경험도 소개했다.

"한국에서 외신 기자로 활동하면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인턴십을 진행해왔는데, 기자가 되고 싶다는 학생들을 만나면 실제로 저널리즘과 관계 있는 활동을 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어요. 한국 언론사에선 시험으로 기자를 뽑는데, 어떻게 취재를 하고 기사를 써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만 뽑아놓는 꼴이에요. 학업 성적은 우수할지 모르지만 막상 취재를 해야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거죠."

그러면서 기자로서의 실무적인 능력에 대한 필요성도 언급했다. "제가 처음 기자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저는 현장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내가 취재하고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 했어요. 어떤 사람이 자기가 기자직에 지원한다고 그 사람의 이름을 구글에 검색해봤는데 쓴 기사도 없고 능력을 증명할 만한 기록도 없다? 그러면 누가 그 사람을 뽑겠어요."

혹자는 그의 바이라인(신문 등에서 필자의 이름을 적는 란)을 보고 "외국 사람이 뭘 아냐"고 하지만 그는 7년간 한국에서 외신기자로 취재를 해온 베테랑이다. 시사 주간지 타임에 세월호 기사를 실었고, 지난 2월 테러방지법 통과를 저지하는 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필리버스터 등 외신에서는 좀처럼 다루지 않는 사건을 기사화했다.

한글 학교 등을 거쳐 7년간 한국에서 취재하면서 이제 한국어로 된 웬만한 기사는 읽을 수 있다. 검색도 한국어로 한다. 2012년부터 한겨레 영문판에서 '알바'로 일했다는 보로윅은 2014년부터 '정규직'으로도 일하고 있다. 해당 언론사 최초의 외국인 정규직이다.

얼마 전 '강남역 살인 사건'에 대한 기사를 쓴 뒤엔 처음으로 협박메일 10여건을 받아보기도 했다. "네가 페미니스트냐"는 이메일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이에 보로윅은 '기자 정신'을 발휘하기로 했다. 그는 자신에게 이메일을 보낸 사람들에게 모두 답변을 보내 역으로 인터뷰를 제안했다. 조만간 이들과의 얘기를 엮은 기사도 출고될 예정이다.

☞스티븐 보로윅은. 캐나다 토론토 출생. 토론토에서 토론토대학까지 나온 '토론토 토박이'다. 대학 졸업후 "낳고 자란 도시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 심심해 죽겠다"며 배낭 하나 들고 2개월간 중국과 동남아를 여행했다. '더 큰 세상'을 보고 온 그는 아시아에서 외신 기자로 활동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한국행을 선택, 2009년부터 한국의 소식을 해외에 전하고 있다. 기자 생활은 대학 재학 중 학보 편집장으로 시작했다. 이후 캐나다 현지 지역신문을 거쳐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하세린 기자 i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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