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강제노역 가해자 "예전엔 문제 안돼"..학대 눈치챈 이웃 '묵인'

2016. 7. 15.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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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장애 '만득이' 외진 시골 축사에 고립돼 19년 '축사 노예'

지적 장애 '만득이' 외진 시골 축사에 고립돼 19년 '축사 노예'

(청주=연합뉴스) 이승민 기자 = 19년 동안 한 푼도 못 받고 축사에서 강제 노역한 지적 장애인 고모(47)씨가 지낸 마을은 읍내에서도 10㎞나 떨어진 외진 마을이었다.

고씨가 일한 오창읍 축사 주변은 온통 옥수수밭과 고추밭이 드넓게 펼쳐졌고, 이 마을 30여 농가는 200∼300m 간격을 두고 띄엄띄엄 떨어져 있었다.

마을 주민 4명 중 3명은 70대 노인이고 혼자 사는 경우가 많아 남을 돌보고 할 겨를이 없는 처지여서 인간답지 못한 그의 삶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주민들은 고씨가 20년 전 이곳 김모(68)씨의 축사에 들어와 일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이름도 몰라 김씨 내외가 부르는 '만득이'로 통했다.

고씨는 가끔 남루한 차림으로 '담배를 달라'며 다가갔지만, 주민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지적 장애 2급이라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그에게 진지하게 말을 걸려고 다가선 사람도 없었다.

게다가 고씨를 강제 노역시킨 김씨는 마을 주민들과 왕래가 뜸했던 터라 '만득이'의 존재감 역시 시선을 끌지 못했다.

그는 지난 1997년 여름 소 중개업자가 고씨를 데려오자 얼마간의 사례금을 건네고 받아들여 젖소와 한우 44마리를 키우는 축사에서 일을 시켰다.

고씨는 몇 년은 주인집 바로 옆방에서 지냈지만, 방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불이 날뻔했다는 이유로 축사 옆 창고에 딸린 허름한 쪽방으로 쫓겨났다.

고씨가 십수년간 지낸 이 쪽방은 6.6㎡ 규모로 입구부터 날파리가 날렸고, 곳곳에 거미줄이 처져 있었다.

소가 생활하는 우리와는 불과 3m도 떨어져 있지 않아 악취가 진동했고, 20W(와트)짜리 형광등 1개만이 어두운 방 안을 비추고 있었다.

쪽방으로 이어지는 창고 입구에는 각종 농기계와 사료 포대 등 폐기물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고씨는 이곳에서 먹고 자면서 새벽부터 소똥을 치우고 젖을 짜는 일을 하면서 지냈다. 축사 규모가 2만㎡에 달할 정도로 커 하루 일과는 녹록치 않은 중노동의 연속이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일을 제대로 못하면 끼니를 얻어먹지 못하고, 맞기도 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고씨의 처지를 잘 알지 못하는 이 마을 주민들 역시 '만득이'가 자기 의지와 관계 없는 노예와 같은 생활을 했을 것이라고 어렴풋이 눈치는 채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 40년을 살았다는 주민 B(64)씨는 "몇 년 전 만득이가 목과 팔에 상처를 입은 채 돌아다니는 것을 봤다"고 전했다.

일부 주민은 "만득이가 제때 밥을 얻어먹지 못하는 것 같다"며 "일을 못 하면 굶기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고씨와 김씨의 관계가 정상적이지 않고, 고씨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여기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관했다.

오창읍 주민자치센터 관계자는 "고씨를 이상하게 여겨 신고한 마을 주민은 지금껏 없었다"며 "지적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사람이 농장에서 일하는 정도로 여겨 무심히 넘긴 것 같다"고 말했다.

고씨가 "주인이 무서워 도망 나왔다"고 경찰에 진술한 데서도 그가 강제노역뿐 아니라 가혹행위를 당했을 가능성이 읽힌다.

가해자 김씨를 처음 조사한 경찰보고서 역시 고씨가 일을 잘 못하면 머리를 쥐어박고 밥도 굶겼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고씨는 최초 경찰에 발견됐을 때 극도의 불안감과 대인기피증을 보였다고 한다. 이런 반응은 비정상적인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본능적 반응으로 의학계는 보고 있다.

김씨의 주장과 달리 머리를 쥐어박는 정도를 넘어선 물리적 폭력이 가해졌을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1일 축사 인근 공장 건물에 비를 피하려고 갔다가 사설 경비업체 경보기가 울리면서 세상에 알려진 A씨는 경찰의 보호를 받으면서 비로소 19년에 달했던 굴종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47살인 고씨가 살아온 삶의 절반 가까운 세월을 노예처럼 유린했지만 김씨는 별다른 죄의식도 느끼지 않는 듯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20여 년 전 소 중개업자가 데려온 이후 한가족처럼 지냈다"며 "감금한 적이 없었다"고 강변했다.

그러면서 "지금이니까 그렇지 예전에는 문제가 안 됐던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지척의 거리에 77살 노모가 살고 있던 터라 지문 조회만 했으면 A씨를 가족의 품에 돌려보낼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던 그는 가족에게 인계하지 않고 A씨를 강제노역시킨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지적 장애인의 인권은 무시해도 된다는 가해자의 삐뚤어진 인식과 이를 알면서도 외면한 마을 주민들, 장애인 강제노역이 사회문제가 돼 전수조사에 나섰음에도 파악하지 못한 당국에 의해 한 지적 장애인의 반평생이 송두리째 부정된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고, 사람을 무서워하고 있다"면서 "안정을 찾은 후 학대 여부 등을 확인한 뒤 가해자를 다시 불러 조사해 사법처리 할 것"이라고 말했다.

logo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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