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 30년 전 퇴행한듯..여성학은 이제 시작"

2016. 7. 13.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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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짬] 이화여대 정년퇴임하는 장필화 교수

장필화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 교수

아시아에서 처음 생긴 여성학과(대학원)의 첫 전임교수로서 1984년부터 강단에 섰고, 32년이 흘렀다. 장필화(65) 여성학과 교수가 16일 오후 1시 이화여대(엘지컨벤션홀)에서 정년퇴임식을 한다. “30여년 전에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있었던 것 같아요. (웃음) 또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땐 정말 무언가 바꿔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간 듯한 지금은, 가부장적 집단 무의식이 그리 빨리 변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3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강의실에서 만난 여자 대학생들은 같은 얘기를 한다.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 대접받고 싶다.” 한 세대가 흘렀지만, 여전히 ‘여자’와 ‘인간’은 다른 존재다. 그는 “여성학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1977년 여성학 과목이 처음 생긴 이화여대는 오늘날 ‘아시아 여성학’의 메카로 부를 만하다. 초기에 윤후정·정의숙·김영정·조형·정대현·이상화·서광선·정세화 교수 등 철학·교육학·사회학·법학 분야 교수들이 여성주의 정치학을 고민하면서 목적의식적 학술 활동으로 ‘여성학’을 탄생시켰다. “그동안 한국과 아시아의 여성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데는 ‘이대’라는 기관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장 교수는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아시아여성학’ 성립의 주춧돌을 놓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1995년 아시아여성학센터를 설립해 서구와 다른 문화적 맥락과 경험을 가진 ‘아시아여성’의 정체성을 이론화, 언어화한 것이다.

그는 여성학이 서구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기존 관념과 거리를 둔다. 한국 여성학 1세대이면서도 스스로 “한국 여성주의 5세대”로 자임하는 것은 그래서다. 조선의 예술가 허난설헌, 여성 실학자 이빙허각,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 ‘여자들이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내어 국권회복뿐 아니라 남녀의 동등권까지 찾을 것’이라고 주장한 국채보상운동 ‘탈환회’(반지 빼기 모임) 등 여자 선조들의 여성학적 사유의 맥을 잇겠다는 뜻이다.

그는 그동안 학문, 정책, 실천 영역 모두를 아울렀다. 학술적으로는 89년 성(섹슈얼리티) 문제를 국내 처음으로 본격적인 학문 탐구의 대상으로 논의 테이블에 올려 대외적으로 조명을 받았다.

“‘여성은 곧 섹스’라고 보았던 때죠. 지금까지도 ‘성의 상품화’ 문제를 고민합니다. 제일 미래가 안 보이는 전사회적 문제죠.”

여성정책을 만드는 데도 힘을 보탰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98년에는 대통령 직속 여성특위 민간위촉위원으로, 2000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여성자문기구 초대 의장으로 활동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윤락여성’ ‘요보호여성’ ‘전후미망인’ 같은 시혜 또는 단속의 대상으로서 여성정책이 많았습니다. 여성을 ‘문제집단’으로 보는 관점이죠. 98년부터 처음으로 여성의 경험과 시각으로 정책 수립 과정에 참여하기 시작했죠. 지금은 다시 그전으로 돌아간 것 같지만요.”

아시아 첫 여성학과 전임 32년
‘여성학 1세대·여성주의 5세대’
허난설헌·임윤지당 등 후예 ‘자임’

“여성들 자존 지키는 호신술로”
16일 퇴임식 고별강연 주제는
‘생명·사회·정의를 위한 여성학’

오늘날 여성주의 시각은 무시할 수 없는 견해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여성학이 주류 학문으로 인정받는 건 아니다. 여성학과가 폐지되거나 통폐합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장 교수는 “수천년 동안 남성들이 주체가 돼 이뤄온 철학·신학·문화·예술이론·정치·경제체제 등 모든 영역에서 여성의 경험과 시각, 관점으로 검토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여성학이 성폭력, 일본군 ‘위안부’, 여성노동 문제 등을 사회에 제기한 것도 실천과 지식생산이 함께했기에 가능했다. “학문적 발전과 실천은 항상 서로를 보완하고 긴장시키는 관계예요. 그래서 우리가 항상 바쁠 수밖에 없었죠.”

16일 고별강연의 제목은 ‘생명·사회·정의를 위한 여성학’이다.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결돼 있다’는 생태적 깨달음이라고나 할까요. 개인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생명과 자연을 사고하면 모든 걸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인간중심적인 ‘휴머니즘’을 넘어서는 것이죠.” 다만 그는 “여성을 통제하려는 ‘모성 이데올로기’와 ‘모성 가치’ 그 자체는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목욕물 버리려다 아이도 같이 버리는 일은 없어야겠죠.”

페미니즘은 성공한 엘리트 여성들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그는 밝혔다. “페미니즘은 소수자 편에 서는 게 일차적인 출발이었어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여성들의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지, 개인의 입신과 이익을 정당화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보탬이 되는 ‘여성 지위’여야 합니다. 그래서 국회의원도, 국무위원도 절반은 여성이 돼야 한다는 것이지요.”

‘여성혐오’를 비판하고 자발적으로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한 젊은 여성들에게는 “여성주의가 판단능력이 되고 하나의 호신술이 되어 자신을 지키고 자존감을 유지하는 데 쓰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강남 사건으로 여성혐오가 ‘특정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여성은 열등하고 문제집단이며 오염돼 있고, 재수가 없다는 식으로 여자들을 정복하고 억압하는 체제를 만든 것이 여성혐오의 뿌리입니다. 가부장제를 유지한 수단이었거든요. 역사의 방향을 읽으며 개입하고, 발언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것이 페미니즘입니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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