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은 집, 女는 혼수? 미혼남녀 모두 "됐거든요"

김성모 기자 2016. 7. 13.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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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통관념이 달라진다] - 집값 비싸져 홀로 감당 못해 남녀 공동으로 비용 부담 원해 함께 살아본 뒤 혼인신고 여부엔 女 54.8% 찬성, 男 56% 반대 - 알뜰 혼수에 작은 결혼식 '예단 삼총사' 등 격식 차리기는 男 84.8%, 女 87.5% "불필요" 호화 결혼식엔 반대가 90%대

"요즘 세상에 신혼집값 반반 부담, 대세 아닌가요?"

작년 12월 결혼한 이지석(가명·28)씨는 서울 영등포에 3억원짜리 오피스텔 신혼집을 구했다. 1억원은 은행 대출로 충당하고, 남은 2억원은 신부와 1억원씩 갈라냈다. 이씨는 "서울에선 아파트 전세금만 4억~5억원이 드는 세상 아니냐"며 "집값이 너무 비싸 신부에게 (함께 부담하자고) 말 꺼냈는데 선뜻 동의해줬다"고 했다.

결혼할 때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라는 전통적인 관념이 깨지고 있다. 12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의 '2015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 보건·복지 실태 조사'에 따르면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미혼 남성 10명 중 8명(79%), 미혼 여성 10명 중 7명(72.3%)이 반대한다고 대답했다.

◇"집값이 너무 올라…"

'남자가 신혼 보금자리 마련해야지'란 생각이 옛말이 되고 있는 이유는 훌쩍 뛴 집값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신혼집을 구입하는 데 든 비용을 보니 1994년 이전 결혼한 부부에서는 평균 7364만원이었다가 2010~2015년엔 1억5645만원으로 뛰었다. 전세 보증금은 같은 기간 2339만원에서 9950만원으로 4.2배 수준이 됐다. 서울 등 대도시에선 집값이 이보다 몇 배 높은 게 현실이다. "홀로 집값 내기 버겁다"는 신랑이 늘어난 것이다.

올 연말 결혼을 앞둔 정모(29)씨도 예비 신부와 전세금을 반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직장과 가까운 서울에선 낡은 소형 아파트도 전세가 3억~4억원이라 정씨 홀로 부담하기에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이 예비부부는 아예 전세금과 혼수 비용까지 결혼 예산을 한꺼번에 짜고 반반씩 내기로 했다. 이처럼 여성들이 신혼집 마련에 돈을 대는 비율은 차츰 올라가는 추세다. 보사연 조사에 따르면 기혼 여성(15~49세) 9415명 가운데 "신혼집 마련 비용을 본인이 일부라도 부담했다"고 응답한 비율(복수 응답)은 1994년 이전에 결혼한 여성들 사이에서 21.4%였다가 2010~2015년 사이 결혼한 여성에선 30.8%로 9.4% 올랐다. 남녀 공동 결혼 비용 부담 추세는 앞으로 더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보사연 조사에서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 견해에 20~24세의 미혼 남성 83.9%, 미혼 여성 77.7%가 반대해 젊은 남녀일수록 전체 미혼 남녀 평균(79%, 72.3%)에 비해 반대 의견이 높았다. 이삼식 보사연 선임연구위원은 "남녀 성 역할도 '필요한 것은 함께 부담하자'는 식으로 바뀌면서 집값 부담에 여성의 기여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알뜰 혼수와 작은 결혼식까지

이와 함께 그동안 공식처럼 여겨졌던 '신부 집에서 신랑 집으로 이불·반상기·은수저 등 '예단 삼총사'와 명품 가방 보내기' 관습도 바뀌고 있다. 내년 2월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박영민(가명·31)씨는 "신혼집을 보러 다니며 비싼 집값에 깜짝 놀라 예물·예단은 모조리 생략해 집값에 보태기로 했다"고 말했다.

집값을 반반 나눠 내는 결혼 문화가 퍼지면서 여성 몫으로 돌렸던 혼수나 예단도 자연스럽게 남녀가 공동 부담하거나 간소화하는 것이다. '작은 결혼식'으로 눈 돌리는 신랑·신부들이 많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번 보사연 조사에서 '결혼식은 격식을 갖추어 예단·예물을 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 미혼 남녀는 각각 84.8%, 87.5% 반대 입장을 보였고, '결혼식은 호화롭게 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서도 미혼 남녀 각각 95%, 95.3%가 압도적으로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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