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지난해 총선에 ‘브렉시트’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한 공약은 당시엔 ‘신의 한 수’로 여겨졌다. 캐머런은 이 공약을 앞세워 보수당 내 유럽연합(EU) 탈퇴파의 불만을 잠재웠고, 극우 정당으로 쏠리던 유권자의 표심을 돌려 총선에서 압승했다.

하지만 묘수(妙手)인 듯했던 그의 공약은 결과적으로 악수(惡手)가 됐다. 국민투표 결과 영국의 EU 탈퇴가 결정되면서 당장 그 자신이 불명예 퇴진하게 됐고, 영국은 극심한 지역 갈등과 세대 반목 등 브렉시트 결정에 따른 후유증을 겪게 됐다. 선거에만 눈이 멀어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가져올 후유증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은 대가다.

캐머런 총리의 자충수를 떠올린 것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발언을 듣고서다. 안 전 대표는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대해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안 대표는 다음 해 치러질 대선의 유력 주자로 거론되지만, 정치적 입지를 넓힐 묘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총선 공약으로 국민투표를 제안한 캐머런 총리의 처지와 비슷하다. 일부에서는 20대 국회 출범 직후 박선숙, 김수민 의원이 홍보비 리베이트 사태에 연루되며 당이 위기에 빠지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국민의 시선을 끌기 좋은 국민투표를 들고나온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안 전 대표는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배운 것이 없는가”하는 비판이 나오자, 안 전 대표는 스위스 국민이 기본소득 지급안을 부결시킨 국민투표 사례를 언급하며 “우리 민도(民度)가 스위스보다 낮다는 얘기냐”고 반박했다. 하지만 인구 800만명 스위스에서 국민투표 요건을 갖춘 시민단체가 주도한 특수한 상황을 이번 사안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미 스위스 국민 다수와 정부, 의회까지 이 안을 반대했다는 점을 안 전 대표가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 사드 배치를 놓고 이념과 지역으로 국론이 분열되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유력 대선 주자로서 체급을 높이는 정도(正道)는 무리한 국민투표 요구가 아니라 안보 사안을 국가적인 관점에서 고민하고 국론 분열을 해소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아닐까. 안 전 대표는 한국의 민도가 스위스보다 낮다는 말이냐며 화를 내기에 앞서, 자신은 스위스나 영국의 정치인들보다 수준이 높은지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