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대 단톡방 성폭력 피해자 인터뷰 "소름끼쳤다"

김형규·박광연 기자 2016. 7. 1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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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대 인문대 단톡방(단체카톡방) 성폭력 사건 피해자대책위원회와 총학생회 산하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는 11일 ‘서울대 인문대학 카톡방 성폭력 고발’이란 제목의 대자보를 붙였다.

대자보 내용은 서울대 남학생 8명이 단체카톡방을 통해 동기 여학생 7명 등을 성희롱하는 메시지를 6개월간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앞서 경향신문은 지난 7일 피해 학생 2명과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남학생들의 단톡방 내용은 어떻게 알게 됐나.

“작년 한 술자리에서 술에 취한 동기 남학생 한 명이 동기 여학생 한 명에게 실수로 남자 동기들의 단체 카톡방을 보여줬다. 내부 고발 식으로 죄책감을 느끼면서 보여준 것이 아니라 실실 비웃으면서 ‘너희가 보면 어떻게 할건데’ 식으로 ‘(카톡방) 봐봐라’고 말했다. 우연히 내용을 접하게 된 동기 여학생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동기 여학생들에 대한 유사 성희롱 문구가 있음을 확인하고 그 내용을 따로 저장해 보관했다.”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 6월에 있었던 고려대 단체 카톡방 언어성폭력 사건에 대한 동기 남학생들의 대화 내용을 우연히 듣게 됐다. 그들은 남자들 카톡방이 다 비슷하다면서 오히려 피해자들을 예민한 사람으로 몰아가며 질책했다. 문제의식을 느끼고 단체 카톡방 내용 전문을 다시 찾아 읽어보니 동기 여학생들과 불특정 다수 여성들에 대한 성희롱 수위가 생각보다 심각함을 알게 됐다. 심지어 자신들의 발언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 반성하지 않고 계속해서 웃음거리로 삼고 있었다. 분노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이번 사건을 공론화하게 됐다.”

-단체 카톡방에서 언급된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동기 여학생과 관련 없는 일상적인 내용을 동기 여학생들과 연결시켜 성희롱하는 내용이 많았다. 예를 들어 ‘뭐 먹을 사람 없냐 학교에’란 얘기에 ‘동기ㄱ(피해자 이름) 먹어’라고 대답했다. 특히 (여성을) ‘먹는다’는 표현이 많이 나왔다. ‘콩 한쪽(여성 비유)도 나눠먹어야지’ ‘존나 포도따듯이 툭툭 따먹으삼’ ‘먹버(여성을 먹고 버린다)’ ‘봉씌먹(봉지 씌우고 먹는다)’등의 표현이 대표적이다. 또한 몰래 동기 여학생의 앞모습 사진을 찍고 카톡방에 공유하며 ‘박고 싶어서’ ‘동기ㄴ 박으려는줄’이란 대화도 나눴다. 전반적으로 발언의 목적어가 동기로 치환되는 경향이 있다. 동기 누구누구를 먹고, 누구누구를 박는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그들의 발언에서 여성들은 박히는 존재, 먹히는 존재, 따먹히는 존재로 성적 대상화됐다. 동기 여학생들을 자신들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객체로 취급한 것이다. 자신들 마음에 들지 않는 여성을 대상으로는 ‘걔를 왜 먹어’ ‘저년 좀 치워라’하는 등 극단적인 성적 대상화 발언도 있었다. 아예 여성들을 성적 자기결정권이 없고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보기 싫으면 치우는 그런 존재로 취급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동기 여학생들의 외모와 몸매, 신체 특정 부위를 희화화했다. ‘동기ㄷ 얼굴로 절구 찧을 수 있다’ ‘동기ㄹ년 뽕좀 그만 넣으라 해라’ ‘너무 티남…미사일(가슴 비유)’등 얼굴과 가슴에 대한 발언이 많았다. 어느 날 동기 여학생 한 명이 근육질 남성의 사진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해놓은 적이 있었다. 그 사진을 보고 가해자들은 ‘이 프사 (남성의 근육질 가슴) 웬만한 여자보다 클 듯’ ‘지(사진 올린 동기 여학생)보다 (가슴) 큰 놈으로 해놨어’라며 웃었다.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내용이었다.”

-다른 내용들은 없었나.

“여성을 혐오하는 발언도 나왔다. 동기 여학생 한 명이 모임에 늦는다는 이유로 ‘으휴 동기ㅁ 묶어놓고 패야함’이라 말했다. 이 말을 한 가해자는 평소 오프라인에서도 이런 얘기를 많이 했다. 말 안들으면 패야하는데 식의 말을 했다. 또한 카톡 내용 일부에는 불특정 여성을 대상으로 ‘ㄹㅇ 인성 김치’라며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용어 중 하나인 ‘김치’를 언급하기도 했다. 동기 여학생들 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내용도 만연해 있다. 가해자들의 발언 내용에는 미팅한 체대생, 소개팅한 여성, 여자 과외학생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미팅을 한 체대생에 대해 ‘체대 개지림 진짜 몸매가 일단 애기 6(명)은 낳음’이라 하고, 소개팅한 여성을 대상으로는 ‘보자마자 명기삘 해봐’ ‘정중하게 팬티를 보여달라고 요청해 봐’라는 메세지를 주고 받았다. 여자 과외학생을 성적으로 조롱하는 내용도 보인다. ‘(과외 요청 들어온) 초등학교 5학년은 로린이(로리타와 어린이의 합성어)…고딩이면 좋은데’라고 했다. ‘과외학생 (외모) 인증좀 부탁 ㅇㅇ’ ‘여자인디 졸못’이라 하고, 과외학생과 시간이 안 맞는 등의 이유로 ‘과외가 파토나면 패버릴까’‘찾아가서 구타’라는 말도 했다. 가해자들이 불특정 다수에 대한 왜곡된 성 의식을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발언이 부적절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나.

“그렇다. 자신들의 발언이 잘못됐으며, 만약 외부로 유출돼 공개되면 뉴스에도 나올 수 있는 내용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야 진짜 이거(발언 내용) 풀면 나 엿될 듯’ ‘엠창 남톡 털리면 우리 뉴스에 나올 듯 간수 잘하자 ㅋㅋㅋ’ ‘야 진짜 앞으로 남톡 우리끼리만 좀, 개방하면 사살’ 등의 대화를 나누며 자신들의 잘못된 발언이 유출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이런 발언들이 나온 이후로도 가해자들의 언어성폭력은 계속됐다. 잘못을 인식하고 있지만, 잘못됐다는 사실조차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도 당당하게 하는 멋진 남성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단체 카톡방 내용을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처음에 읽었을 때는 동기 남학생들에 대한 실망감이 가장 컸다. 겉으로 봤을 땐 이렇게 말할거라 상상도 못할 만큼 저급한 말들이었기 때문이다. ‘여자라는 존재 자체가 잘못인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초반에는 ‘내가 동기 남학생들에게 무슨 잘못을 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동기 남학생들에게 먼저 잘해주려 했고, 그러면 그들도 미안함을 느껴 사과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단체 카톡방 내에서 성희롱 발언 수가 늘어나고 그 수위도 높아졌다. 같은 학교에 들어와 함께 공부하는 존재인데 다른 성별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희롱의 대상이 되었다. 여자인게 큰 죄인가. 여자라는 존재 자체로 멸시받고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남자 동기들에 실망감을 넘어선 감정을 느꼈을 것 같다.

“평상시의 외모, 옷차림, 언행 하나하나가 성적 조롱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이 너무 무섭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지금까지 동기 남학생들이 동기 여학생들에게 했던 언행 하나하나를 다시 생각해봤다. 한때 동기 남학생이 동기 여학생을 좋아했던 적이 있다. 그때 그 호감 표현이 순수한 감정이 아니었을거란 의심이 든다. 연애감정이라기 보다는 ‘쟤를 어떻게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을 것 같아 무섭다. 한편 동기 남학생들은 소속 반 전체의 단합을 외치면서 동기 여학생들도 함께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하곤 했다. 이번 사건을 통해 그들이 말한 단합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겉으로만 단합을 외치며 속으로는 동기 여학생들을 성적 대상화해 조롱하고 있던 것이다. 소름끼쳤다.”

-이 사건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

“주목해야 할 점은 무차별적인 언어성폭력 대화가 인문대 학생들로부터 나왔다는 점이다. 지성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서울대생이 이래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가해자들은 인간의 본질을 공부하는 인문학도이다. 인문학에서는 인간에 대한 물상화, 희화화, 조롱화를 가장 금지한다. 인간 존재 자체를 논하는 인문학도들로부터 인간을 조롱하고 대상화하는 발언이 나와 충격적이다. 이 사건을 남녀 대립구도로 바라보는 것을 특히 경계한다. 이번 단톡방 언어성폭력 사건을 처리하고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남성들이 공감해 도와주고 있다. 인문대 학생회장과 학소위 관계자 분들은 남자임에도 많이 도와주고 있다. 단순히 남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른 일반적인 남성들이 가해자와 같은 취급 받아 매도당하는걸 원치 않는다.”

-지난 6월 고려대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고려대 사건에서는 단체 카톡방에 있던 남성이 내부고발자가 되어 언어성폭력 내용을 폭로했다. 진짜 용기있는 행동이라 생각한다. 내부고발자가 있었다는게 너무 부럽다. 자정작용이 있었다는 말이다. 우리는 그것조차 없었다. 가해자들의 실수로 언어성폭력 내용이 우연히 누출된 것이다. 고려대 사건을 비난하는 가해자들의 모습을 보며 가해자들이 반성의 여지, 갱생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고려대 사건이 터지면서 이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릴 수 있었다.‘이게 문제가 될 수 있고 고쳐야 되겠구나’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은 정말 의미있는 시발점이었다. 고려대 사건이 없었다면 이렇게 공론화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려대 사건 공론화를 보면서 용기를 얻었다. 고려대 사건과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내부의 언어성폭력 문제를 고발하는 움직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가해자들이 나서서 ‘미안하다, 징계를 받겠다’라고 사과하는 자정작용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톡방 성폭력 사건의 원인은 뭐라고 보나.

“일부 남성들은 일상적인 성적 발언에 대해 ‘이건 별거 아니니 괜찮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정말 사소한 발언과 관점도 다른 사람에게는 불쾌하게 여겨질 수 있다. 사소한 언행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여성들 또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적 대상화를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일부 여성들은 성적 대상화되는 것이 곧 자신의 성적 매력을 인정받는 것이라 생각한다. 성적 대상화는 매력이 있든 없든 타인이 자신을 객체화시킨다는 점에서 잘못된 것이다. 여성들도 성적 대상화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말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졌으면 한다.”

-2차 피해가 있을수 있겠다.

“성희롱·성폭행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 지인들이 ‘뭐가 잘못된거 아니야’ ‘여자가 유혹한거 아니야’ ‘여자가 행실 잘못된거 아니야’는 말로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은 평범함 속에 내재돼있다는 ‘악의 평범성’ 개념을 얘기했다. 나치의 장교였던 아이히만은 유대인들에게는 끔찍한 악마였지만 지인들에게는 따뜻하고 존경 받는 상사였다. 자신에게 착하고 잘해주는 지인이지만 타인에게는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피해자대책위원회를 구성한 상태다. 서울대 총학생회 산하 기구인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와 협력해 대자보를 작성하고, 가해자들의 반성과 사과, 가해자들에 대한 학교 측의 징계를 요구할 계획이다.”

<김형규·박광연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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