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이겨낸 프로골퍼 이민영 "암이 내 몸과 마음을 다 바꿨다"

2016. 7. 5.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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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덕분에 더 나은 사람 됐다".."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고 싶진 않아"
신장암 수술을 받은 지 1년여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린 이민영.<KLPGA 제공>
금호타이어 여자오픈 최종 라운드 18번홀을 마치고 인사하는 이민영.<KLPGA 제공>

"암 덕분에 더 나은 사람 됐다"…"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고 싶진 않아"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 "암은 몸과 마음을 다 바꿨다. 지금 생각하면 고마운 존재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금호타이어 여자오픈 우승자 이민영(24·한화)은 작년 3월에 신장암 진단을 받았다. 대회 도중 극심한 복통과 혈뇨 증세로 기권하고 달려간 병원에서 악성종양이라는 검사 결과를 받아쥔 이민영은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수술대에 오르기까지 일주일 동안을 이민영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민영은 암을 "고마운 존재"라고 말했다. 암을 이겨낸 뒤 몸과 마음이 다 같이 더 건강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이민영은 암 덕분에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됐고, 더 나은 삶을 살게 됐다고 여긴다.

인생을 경주마처럼 앞만 달리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는 이민영은 후배나 동료들에게 "골프만 치는 로봇이 되지는 말라"고 조언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우승 트로피를 안고 귀국한 이민영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골프 선수라면 1등을 목표로 사는 게 맞지만, 아등바등 성적에 집착한 삶을 살지는 않을 생각"이라면서 "나중엔 해외에 나가서 봉사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다음은 이민영과 문답.

-- 축하한다. 대회 마치고 우승 파티는 했나?

▲ 중국 현지에서 후어궈(중국식 샤부샤부)로 저녁을 근사하게 먹었다. 술은 마실 줄 몰라서 한잔도 못 했지만…하룻밤 더 자고 월요일에 귀국했다.

-- 2년여 만에 우승인데 우승 순간 어떤 느낌이었나?

▲ 18번 홀에서 퍼트를 준비하다 처음 리더보드를 봤다. 그때까지는 내가 선두인 줄도 몰랐다. 얼핏 보니까 내가 두세 타 앞서 있더라. 내가 우승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순간 울컥했다. 첫 우승 때도 눈물이 안 났는데 이번에는 눈물과 콧물까지 살짝 나왔다.

-- 암 투병이 화제다. 암에 걸린 사실은 언제 어떻게 알게 됐나.

▲ 작년 중국 하이난에서 열린 대회 때 연습 라운드 끝나고 배가 너무 아팠다. 기절할 듯 아프다가 멀쩡해지길 되풀이했다. 소변에 피가 섞여 나왔다. 대회를 중도에 포기하고 귀국해서 병원에 가서 정밀진단을 받았더니 신장에 악성종양이 있다고 하더라. 믿어지지 않아서 더 큰 병원에 가서 확진을 받았다. 다행히 일주일 만에 수술을 받았고 치료가 잘 됐다.

--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무척 불안했겠다.

▲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앉아만 있어도 눈물이 줄줄 나왔다. 다른 장기로 전이된 게 아니라고 했지만, 온갖 나쁜 생각은 다 들더라. 암 관련 인터넷 카페라는 데는 다 가입했다. 거기서는 20대 암이 정말 위험하다고 해서 엄청나게 비관했다.

-- 그 일주일에 어떤 생각을 했나?

▲ 무섭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하고, 살아온 날이 후회도 되고, 착하게 살 걸 하는 생각도…그리고 왜 성적에만 집착했을까 하는 후회에다 못되게 굴었던 것도 반성했다. 암이라는 병명이 주는 공포감과 중압감이 엄청났다.

-- 암에 걸린 게 어떤 변화를 줬나?

▲ 이민영의 몸과 마음을 다 바꿨다. 암에 걸리기 전에는 몸에 좋지 않은 것만 골라 먹었다. 단 음식, 찬 음식, 기름진 음식을 좋아했다. 지금은 다들 멀리한다. 만약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지금은 전보다 더 뚱뚱하고,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했을 것이다. 경기력도 더 나빠졌을 것이다. 암에 걸리기 전에는 아침이면 몸이 무겁고 피곤했는데 지금은 몸이 가볍다. 암에 감사할 정도다. 특히 인생관이 바뀌었다.

-- 인생관이 어떻게 달라졌나?

▲ 김세영과 장하나가 동갑 친구들이다. 주니어 때부터 늘 그 친구들 아래였다. 프로 선수가 되어서도 그 친구들이 훨씬 잘 나간다. 솔직히 샘이 많이 났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 친구들처럼 잘하고 싶었다. 그런데 암 치료를 받고 나서는 하나도 안 부럽더라. 그 친구들이 돈도 더 많이 벌고 더 유명하지만 내 삶에 만족한다. 원래 느긋한 성격이긴 했지만, 암에 걸리고 나서는 더 여유로워지고 집착과 욕심이 없어졌다. 주변에서는 이제 너무 욕심이 없는 것 아니냐는 말도 한다.

-- 정말 우승 욕심도 없이 경기하나?

▲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다 1등하고 싶어서 열심히 하는 거 아니냐. 하지만 어떤 식으로 우승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고 싶지는 않다. 골프를 진정으로 즐기면서, 관조하면서 경기하다 보면 저절로 우승이 따라오는 그런 경기를 하고 싶다. 성적에 매달려서 아등바등하거나 안 풀린다고 자신을 꾸짖고 화내고 울고불고하면서 우승하는 그런 골프는 하지 않겠다.

-- 원래 좀 그런 스타일 아니었나?

▲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 후배나 동료 선수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있겠다.

▲ 골프만 치는 로봇이 되지 말았으면 한다. 프로 선수 중에 사소한 거 하나도 혼자 해결 못 하는 친구들 많다.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골프에만 집착하지 말라는 얘기 해주고 싶다.

-- 골프 말고 다른 경험을 강조하는데 본인은 어떤가.

▲ 책을 많이 읽는다. 소설, 비소설 가리지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는다. 자기계발서나 건강 관련 책도 많이 본다. 영화 보러도 다니고 수영도 자주 한다. 붓글씨도 배운다. 여행을 좋아해서 겨울마다 여행을 간다. 지난겨울에는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다녀왔다. 시즌 중에도 대회 쉬고 여행을 갔다 온 적도 있다. 여행을 더 재미있게, 풍요롭게 다니려고 외국어 공부도 하려고 한다. 외국인 친구도 사귈 수 있지 않나.

-- 늘 마음을 비우고 경기한다면 어떻게 우승할 수 있나?

▲ 우승하고 싶단 마음을 갖고 있으면 달려들기만 하더라. 감정조절도 되지 않아 결국 경기를 망치더라. 그래서 늘 욕심내지 말자고 자기 최면을 거는 심산으로 욕심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다 보니 정말 욕심을 내려놓고 경기에 집중하게 되더라.

-- 화려한 공격적인 플레이 스타일이 아니다.

▲ 어지간하면 그린 한 가운데를 겨냥한다. 100% 확신이 들어야 핀을 직접 겨냥한다. 가까운 거리라도 조금이라도 위험 요소가 있다면 가운데 보고 친다. 그런데 요즘 공격적이고 화려한 플레이가 대세라고 해서 한번 변신을 시도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뭔가 2% 부족한 것 같아 변화가 필요하지 않나 싶어 공격적인 플레이를 해봤는데 한화 골프단 김상균 감독께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해줘서 정신을 차렸다. 지금 생각하면 공격적이 아니라 무모했다.

-- 원래 성격이 내성적인가?

▲ 인정한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게 솔직히 부담스럽고 편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왠지 쑥스럽다. 프로 선수로서는 좋은 자질이 아닌 걸 나도 안다. 프로 선수는 다소 연예인 기질도 있어야 한다지만 사실 그럴 자신이 없다. 원래 내 성격을 바꾸는 것도 어렵지 않나. 뒷바라지해주신 부모님께도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미안할 때가 많다. 늘 마음은 있지만 꺼내 보이는 게 너무 힘들다. 이번에 우승하고도 딱히 인사를 못 드렸다. 참 못났다. 내가.

-- 골프는 어떻게 시작했나?

▲ 6살 때부터 태권도를 했다. 도장 대표로 대회도 나갔다. 공인 2단이다. 그런데 겨루기할 때면 늘 얻어맞았다. 얻어맞고 맨날 우니까 관장님이 그만두라고 쫓아냈다. 맞는 게 싫었는데 그날로 태권도와 작별했다. 그러다 TV에서 골프 중계방송을 보고 멋있어 보여서 아버지를 졸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지만 딸이 하고 싶다니까 시켜주셨다. 1년도 안 돼서 골프 선수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면 할수록 재미있었다. 어린 마음에 골프를 한다니까 우쭐한 마음도 있었다.

-- 골프 선수로서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나?

▲ 내가 스윙에 잡동작이 없다. 손목을 과도하게 쓰거나 요령으로 스윙하질 않는다. 가르치는 분들이 백지장 같다고 한다. 스윙을 고치기도 쉽다. 아이언샷이 좋은 이유다.

-- 아무리 욕심이 없다 해도 아쉬운 대회는 있을 텐데.

▲ 지난달 한국여자오픈이 아쉽다. 정말 흐름이 좋았는데 판단 한번 잘못해서 좋지 않은 흐름으로 바뀌면서 우승 기회를 놓쳤다. 작년 KLPGA 선수권대회에서 연장 나가서 진 건 내가 너무 못 쳤고 상대가 워낙 잘 쳤기에 이번 한국여자오픈만큼은 아쉽지 않다.

-- 올해 첫 우승을 거뒀는데 어떤 목표가 있나.

▲ 작년에 연장에서 진 KLPGA 선수권대회에서 올해 우승하고 싶다. 그리고 후원사가 여는 한화금융클래식도 우승하는 게 목표다.

--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 무대 진출 계획은 없나?

▲ 2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 진출을 생각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니 실력이 안 되는데 굳이 갈 필요 있나 해서 포기했다. 일본 진출은 생각이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방식인지는 계획이 없다.

-- 골프 선수를 그만두면 어떤 삶은 살고 싶은가?

▲ 해외에 나가서 봉사 활동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갖고 있다. 한비야 씨가 멋져 보인다. 그분처럼 할 엄두는 나지 않아도 그런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 골프 선수는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

▲ 가능하면 오래 하고 싶다. 성적의 노예가 되지 않고 실력만 받쳐준다면 할머니가 되어서도 하고 싶다.

kh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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