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파견법은 어디로 가나?

박송이 기자 2016. 7. 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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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사회분위기에 역행하는 정부의 개정안 강행 의지, 여소야대가 막아낼까
지난해 9월 22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노사정 대표들과의 오찬장에 들어서자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오른쪽)이 일어서서 허리를 깊숙이 숙여 90도로 인사하고 있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왼쪽)은 뒤돌아보지 않은 채 앉아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차선책으로 노동계에서 반대하고 있는 기간제법과 파견법 중에 기간제법은 중장기적으로 검토하는 대신, 파견법은 받아들여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1월 13일 박근혜 대통령은 기간제법을 제외한 파견법 등 나머지 노동 4법을 처리해달라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기간제법은 양보할 테니 파견법은 받아달라는 것이다. 현행 파견법은 행정, 운전, 청소 등 32개 업종에만 허용되고 있다. 정부의 파견법 개정안은 제조업을 포함한 뿌리산업까지 파견 허용을 확대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당초 정부가 내세웠던 노동 5법을 노동 4법으로 축소한 것을 두고 양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국회 환노위 관계자는 “기간제법은 직접고용이라 차라리 논의해 볼 여지가 있는데, 파견법은 간접고용 문제라 논의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노동 4법, 특히 파견법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강하다. 정부는 파견법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말한다. 김현숙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은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노동개혁 4법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패키지 법안”이라며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 달라”며 눈물을 보였다. 20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은 19대 때 제출했던 노동 4법을 그대로 발의했다.

그러나 여대야소인 19대 국회에서도 통과되지 못했던 노동 4법이 여소야대인 20대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을까. 더민주와 정의당은 정부의 파견법 개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파견법 통과는 불가하다”고 잘라 말했다. “파견법을 통한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지금 비정규직을 어떤 형태로든지 줄여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있다. 그래서 일단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줄여야 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정확하게 적용이 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최저임금이 1만원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전제조건이 갖춰지면 파견법 개정을 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전제조건이 갖춰지지 않고 정부가 요구하는 파견법을 통과시킬 경우 비정규직만 더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파견법이 통과되면 비정규직의 노동력을 정규직보다 훨씬 더 싼 가격에 확보할 수 있는데, 누가 정규직을 채용하겠나.” 국민의당도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더민주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 국민의당의 입장은 ‘노·사·정 합의’가 없었기 때문에 정부 안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태영 국민의당 정책실장은 “정부의 파견법은 나쁜 일자리를 만들고 노동시장에 충격이 크기 때문에 노·사·정이 합의하지 않은 상황에서 파견법 개정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환노위 소속 국민의당 이상돈 의원도 “파견법이 작년 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계 쪽에서 동의하지 않은 사항이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야당이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가운데 새누리당은 겉으로는 강경한 태세를 취하고 있다. 6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고용노동부 업무보고에서 환노위 소속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은 “청년일자리 창출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이며,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동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내에서도 20대 국회 정치지형에서 파견법을 정부 의지대로 강행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현실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20대 국회 새누리당 환노위에는 노동운동가 출신 3명의 의원이 포진돼 있다. 장석춘 의원, 임이자 의원, 문진국 의원이다. 장석춘 새누리당 의원의 말이다. “당론이 파견법 통과지만, 노동계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기업은 파견업을 하라고 해도 안 한다. 문제는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이 요즘 워낙 물량 변동이 심하니까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러나 파견 허용 업종을 늘려 파견노동자가 늘면 안 된다. 이런 측면을 노동계와 야당과 다시 상의해서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접근해볼 필요성이 있다. 노동계 의견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다 보니 환노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정부안을 조정해볼 필요가 있지 않으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임이자 의원은 “(파견법에 대해서) 의원들마다 생각이 조금씩 다르다. 새누리당 환노위 소속 의원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다. 만나서 이야기를 더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파견법을 강행하려는 정부의 방향은 사회 분위기와 역행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올해 들어 파견노동자가 메틸알코올에 중독돼 실명하고 하청업체 노동자가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하는 등 간접고용의 폐해가 드러난 사고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미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고용노동부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상시적인 업무에 대한 직접고용 원칙을 법률에 명시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간접고용의 남용을 억제할 것”이라고 권고한 바 있다. 2014년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간접고용의 실태와 개선방향’ 보고서에서 “파견업종 노동자들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노동문제를 넘어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노 소장은 제도적인 개선방안으로 “모범사용자로서 정부의 역할을 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시다. 서울시는 2014년 1월부터 용역·파견업체 소속 노동자 6231명을 단계적으로 정규직화했고, 그 결과 노동자들의 처우도 개선됐다. 지출 또한 53억원이 감소했다.

노 소장은 보고서에서 “이상에서 보듯이 공공부문의 간접고용 문제는 정부의 의지와 정책 변화에 따라 해결될 수 있는 사안임. 정부가 모범사용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때 민간부문에 대한 선도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이라고 썼다. 그러나 정부의 움직임은 이와 정반대다. 주진우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방향은 필요한 일에 반대되는 방향이다. 정부는 파견이 필요하지만 이걸 법으로 막으니 불법파견이 늘어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업종제한을 양성화해 인력수습을 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은 파견을 포함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정성 및 취약한 권리를 개선하는 게 가장 우선적인 순위다”라고 말했다.

20대 국회는 파견법 개정을 강행하려는 정부의 역행을 막아내고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정과 취약한 권리를 개선하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서울메트로 2호선 구의역 사고 이후 야당에서는 구의역사고재발방지법을 앞다투어 내놓고 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사내하청·파견·도급 등 다양한 형태의 고용이 증가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안전·보건대책이 거의 유명무실하다”며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원청 사업주의 책임성을 강화한 법안이다. 더민주 산하 을지로위원회도 구의역 사고 이후 총 7개의 법안을 발표했다. 이인영 의원이 발의한 ‘생명안전업무 종사자의 직접고용 등에 관한 법률안’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련한 업무의 경우 기간제 및 파견, 외주용역근로자를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한정애 의원이 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유해·위험작업의 사내하도급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사업주 안전보건조치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김상희 의원, 김경협 의원, 이학영 의원 등도 이와 비슷한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야당의 법안이 긍정적인 부분이 있지만, 근본적인 해법은 못 되며 현실에서는 별로 의미가 없을 확률이 높다고 비판했다.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은 “야당에서는 두 가지를 말하는데, 생명안전업무에 비정규직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안전업무라는 개념을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 특정한 몇 개 업무를 제외하는 게 아니라 외주화라는 전체 함정을 인식해야 한다. 외주화 자체가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다. 두 번째는 산재 발생 시 원청이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간접고용이라는 이유만으로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때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용역업체가 ‘을’인 구조 안에서 노동자들이 원청을 향해서 자기 권리를 말할 수 있을까. 현실에서 이 법들이 의미가 없을 확률이 높다. 간접고용 전체를 없애야 하는 구상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파견법 확대로 인한 일본사회의 폐해
2015년 6월 일본에서 열린 파견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

일본의 파견노동은 한국보다 확대돼 있다. 제조업도 파견노동이 가능하고 파견기간도 사실상 제한이 없다. 일본은 1985년 근로자파견법을 제정했다. 파견노동 대상업종을 엄격하게 제한해 파견노동을 허용한 법안이었다. 그러나 1999년 근로자파견법이 개정되면서 일부 업종만 허용했던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이 일부 업종만 제외되는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전환됐다. 파견노동은 항만운송, 건설, 경비, 의료관계, 제조업을 제외하고는 모두 허용됐다. 2003년에는 제조업까지 파견노동을 허용되면서 1985년부터 2003년까지 파견노동에 대한 규제는 대폭적으로 완화됐다. 2012년에는 잠깐 파견노동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파견법 개정이 있었으나 2015년에는 다시 파견노동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파견법이 개정됐다. 이때의 개정으로 파견기간 제한이 사실상 철폐됐다. 이전에는 동일 업무일 경우 파견노동자를 교체하더라도 최장 3년까지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었는데, 2015년 개정으로 3년간 파견노동자 사용 후 다시 파견노동자로 교체해 계속적으로 파견노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다. 엄진령 불안전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은 파견법의 확대로 저임금이 고착화되고 직장 내 인간관계 형성이 불가능해지는 등 일본 사회에 파견법의 폐해가 깊어졌다고 진단했다. “파견노동이 확대되면서 직장에서 인간관계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젊은 노동자들이 미래에 대한 비전이라든가 생활계획을 세울 수가 없는 상황이다. 흔히들 일본은 노동자를 쉽게 해고하지 못하는 종신고용의 문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한국보다 파견노동이 훨씬 확대돼 있다. 일주일 파견, 일일 파견 등 초단기 파견이 일반화돼 있다. 그러다 보니 직장 안에서 서로 이름을 물어볼 필요도 없다. ‘파견씨’ ‘오챠상(차를 타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파견노동이라는 불안정한 노동형태가 일반화돼 있다 보니 저임금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들의 권리가 다 취약해졌다.” 그러나 재계를 중심으로 “고용기간 제한 등의 규제는 완화하고 차별 시정에 주력한 일본의 노동개혁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7월 9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민변 노동위원회,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등의 주최로 제1회 파견노동포럼이 열린다. 파견노동포럼에서는 파견과 간접고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파견법 폐지, 간접고용 철폐 등에 대한 목소리를 담을 예정이다. 올해 파견노동포럼에서는 ‘파견법 18년, 우리의 삶과 노동은 어떻게 변화되었나’ ‘파견법 18년, 그에 맞서는 노동법적 대응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등에 대한 주제로 토론회가 열린다. 파견노동포럼은 앞으로 해마다 개최될 예정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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