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총공세 나선 트럼프의 속셈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2016. 7. 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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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부 플로리다 주 관광도시 올랜도에서 발생한 사상 최악의 총격 테러 사건이 올가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태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전통적으로 미국 대선에서 국가 안보 이슈는 경제 문제처럼 일반 국민의 피부에 닿지 않기에 우선순위 밖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이 문제가 올 대선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는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먼저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6월15일 현재 49명이 사망하고 53명이 부상한 올랜도 참극의 범인이 오마르 마틴(29)이라는 무슬림으로 밝혀지자, 절호의 기회를 잡은 듯 테러 문제를 선거 프레임으로 정하고 연일 공세를 펼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 12월 초 캘리포니아 주 샌버너디노에서 무슬림 부부에 의해 자행된 폭탄 테러로 14명이 사망하고 22명이 다치자 무슬림의 미국 입국 전면 금지를 공약한 바 있다. 당시에는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으면서 위축된 모습을 보였지만 지금은 기세등등하다.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유권자들의 테러 불안 심리를 자신의 선거 전략에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와 ABC 뉴스의 최근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친공화당 유권자의 65%, 무당파 유권자의 45%가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 금지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난 것도 그에겐 고무적이다.

ⓒAFP : 6월13일 필라델피아 시민들이 올랜도 총격 테러 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사건 발생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는 정치적 곤경에 처해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딴 ‘트럼프 대학(부동산 투자 강좌 프로그램)’ 비리 관련 재판의 주심 판사가 멕시코계란 이유로 인종적 모독을 퍼붓자, 여론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그런데 올랜도 사건이 단숨에 전국적 관심을 끌면서 ‘트럼프 대학’ 비리 문제도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그는 지난해 6월 대선 행보 이후 계속해온 반(反)히스패닉, 반무슬림 언행으로 여론의 호된 질타가 계속되자 근래 공격 수위를 다소 누그러뜨렸다. 올랜도 사건이 터지자 그는 이런 태도를 바꿔 다시 거센 반무슬림 행보를 재개했다. 그는 보수 성향 방송인 폭스 뉴스에 출연해 '지금 미국에는 올랜도 사건의 범인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 아주 많이 살고 있다. 범인과 똑같은 정신 상태를 가진 (무슬림) 총잡이가 수천명이다'라고 주장했다. 뉴햄프셔 주 유세에선 난데없이 오바마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급진적 이슬람 테러’란 말조차 꺼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즉각 사임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을 테러의 동조자로 몰아붙인 것이다.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에게도 '(오바마처럼) ‘급진적 이슬람 테러’란 용어를 사용할 수 없다면 당장 경선에서 물러나야 한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올랜도 사건 다음 날 행한 연설에서는 무슬림에 대한 입국 금지를 다시 약속했다. '내가 당선되면 미국이나 유럽, 다른 우방 등에 테러 위협을 가한 국가 출신의 무슬림은 미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겠다.'

사실상 모든 무슬림을 테러 위협으로 간주하겠다는 트럼프의 무모한 주장에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 우군인 공화당까지 질타하고 나섰다. 오바마는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이슬람국가(IS)를 ‘급진 이슬람’이라고 부른다고 이들을 제거할 수 없다. 그런 주장은 전략이 아닌 한낱 정치 한담에 불과하다'라며 트럼프를 강하게 성토했다. 최근 친트럼프로 돌아선 공화당의 폴 라이언 하원의장조차 '무슬림 입국 금지는 미국의 국익에 맞지 않는다. 온건 무슬림과의 연대만이 이슬람 급진 테러를 격퇴할 수 있다'라며 트럼프의 주장에 반박했다.

트럼프가 올랜도 총격 사건을 정치적 호재로 삼아 총공세를 펼치는 반면 힐러리 클린턴은 이번 사태의 핵심을 미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총기 사용으로 보았다. 클린턴은 무슬림 문제가 아니라며 트럼프의 자극적 반무슬림 언행을 비판했다. 그러나 클린턴 캠프로서는 곤란한 표정이 역력하다. 9·11 테러가 발생한 지 15년이 흐른 지금도 대다수 미국인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테러 불안 심리를 감안할 때 트럼프의 선동이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클린턴이 NBC 방송에 출연해 '중요한 건 용어(‘이슬람 급진주의’)가 아니라 행동이다. 우리는 급진 지하드 테러 행위를 분쇄해야 한다'라고 강조한 이유다.

트럼프에게 더 유리한 ‘총기 규제’ 이슈

이번 올랜도 사건과 관련된 클린턴의 공약은 총기 규제 강화다. 클린턴은 올랜도 사건의 범인이 연방수사국(FBI)의 감시 대상에 올랐지만 전쟁터에서나 사용하는 공격용 무기를 아무런 제한 없이 구매할 수 있었던 것은 총기규제법이 미비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꼽았다. 그러면서 1994년 민주당 행정부 당시 의회를 통과한 강력한 총기규제법을 재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의 총기규제법은 무엇보다 올랜도 사건의 범인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AR15처럼 반자동 총기류와 고성능 탄창의 판매를 제한하고 있다. 이 총기규제법의 시효만료일은 2004년이었다. 당시 다수당이던 공화당은 시효 연장 거부로 총기규제법을 폐기시켰다. 그동안 대형 총기 난사 사건이 터질 때마다 민주당은 이 법안의 재도입을 끈질기게 제기해왔다. 그러나 공화당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번 올랜도 사건이 터진 다음 날 의회에서 제임스 클라이번을 비롯한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총기규제법의 제정 필요성을 역설하며 발언권을 신청했지만 공화당 소속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거부해 무산된 것도 이 문제에 대한 공화당의 싸늘한 반응을 잘 보여준다. 의회를 민주당이 다시 탈환하지 않는 한 클린턴이 공약한 총기 규제 법안의 재도입이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

ⓒAP Photo : 6월13일 트럼프가 대 테러를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는 테러 위협국 출신 무슬림에 대한 입국 금지를 약속했다.

총기 규제 반대론자인 트럼프는 '힐러리가 국민들이 가진 총을 모두 뺏고 싶어 한다'라며 맹비난했지만 내심은 복잡해 보인다. 범인이 사용한 공격용 총기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과거 어느 때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트럼프는 일단 FBI의 테러 감시 명단에 오른 요주의 인물에 대해서만 공격용 총기의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샌버너디노 총격 사건과 이번 올랜도 사건을 막론하고 총기 소유를 적극 옹호하던 트럼프로서는 상당한 태도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올랜도 사건이 터진 뒤 폭스 뉴스에 출연해 '파티 참석자들이 모두 총을 가지고 갔더라면 범인이 아무 짓도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한 장본인이 바로 트럼프였다.

그렇다면 올랜도 사건을 계기로 대선의 핵심 이슈로 재부상한 총기 규제 문제가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 중 누구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할까? 6월14일자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클린턴보다 트럼프에게 유리하다. <뉴욕 타임스>는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 자료를 인용해 백인 노동자층의 거의 절반이 총기 규제보다 총기소유권을 더 지지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 뒤, '트럼프가 백인 노동자 유권자들의 표만 대거 얻는다면 교육 수준이 낮은 비백인 유권자들에게서 잃는 표를 압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11월 대선을 5개월 정도 앞둔 현재 전국적 여론에서는 클린턴이 우세하다. 지난 3주간 클린턴은 트럼프에 비해 최저 3%에서 최대 13%까지 앞섰다. 그런 점에서 올랜도 사건 이후 유권자들의 테러 불안 심리가 어느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지가 관심사다. 로이터 통신이 올랜도 사건 다음 날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클린턴은 트럼프에게 44.6% 대 33%로 11.6%포인트 앞섰다. 하지만 이는 불과 닷새 전의 13%포인트 차이에 비해 2%포인트 정도 격차가 좁아진 것이다. 이 같은 변화가 트럼프의 반무슬림 선동 결과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반무슬림 공약이 최소한 친공화당 유권자들에게는 상당히 먹히고 있다는 게 정치 분석가들의 관측이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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