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의 당연한 욕심 제어하는 게 정치죠

2016. 7. 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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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커버스토리
‘하나와 진이의 갈등 속으로’ 첫 회

장하나 전 국회의원과 김광진 전 국회의원이 임대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집주인에 맞서 상가세입자들이 결성한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맘상모)의 대표 서윤수씨가 운영하는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곱창집 ‘우장창창’을 찾아가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있다. 우장창창은 새 건물주 가수 ‘리쌍’으로부터 가게를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고 가게에서 몰려날 위기에 처해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눈물 깃든 현장이 도처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성과 합리가 아닌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갈등 공간이 전국에서 부스럼처럼 솟아 가라앉지 않습니다. 해법을 찾지 못한 갈등이 오래 묵어 삶을 곪게 하는 사태는 정치가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19대 국회의원 장하나·김광진씨가 갈등의 현장을 찾아갑니다. 청년 비례대표로 정치를 경험한 두 전직 의원이 현장 속에서 정치를 성찰하며 현직 국회의 역할을 고민합니다.

놀고먹는 직업을 꼽아보라면 아마도 많은 시민이 국회의원을 예로 들지 모르겠습니다. 실제 국회의 모습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국회는 바쁘게 돌아갑니다.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는 의원은 거의 없습니다. ‘300명 중 몇몇 의원만 바쁘고 대부분의 의원은 놀고먹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놀고먹는 것으로 보이는 그들도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일하느냐가 다를 뿐 하루하루 바쁘게는 살아갑니다.

물론 바쁜 일상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국회가 만드는 법에 따라 국민 수천명의 삶이 바뀔 수도 있기에 법안을 만드는 데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합니다. 정부를 견제하는 일도 국회의 주된 업무인 까닭에 해당 상임위원회 준비도 게을리할 수 없습니다. 일상 업무 외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사회 이슈에도 관심을 둬야 하고 잠깐이라도 얼굴을 비춰야 할 곳도 많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동네축구처럼 ‘왔다갔다 정치’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를 비롯해 우리 사회가 간과하거나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여론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목숨 걸고 고공농성하는 노동자들을 언론과 정치권은 농성 첫날, 며칠째 되는 날, 다시 땅을 밟는 첫날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카메라와 정치인들이 현장을 찾는 것도 이때뿐입니다. 34일째 되는 날에도, 68일째 되는 날에도, 그들은 그 높은 곳에서 비바람을 맞고 있을 텐데 말이죠.

“그 커피숍 딱 오늘까지 영업하는 날인데”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이라고 이름을 올렸지만 4년 내리 국방위원회에만 있다 보니 비정규 노동자나 자영업자, 세입자 등 ‘을들’의 아우성이 가득한 ‘현장’에 참여할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참여한다 해도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서 ‘병풍 역할’을 하거나 잠시 얼굴을 비출 뿐 그들의 삶에 녹아들어갈 만큼의 시간을 내지도 못했지요.

‘젠트리피케이션’은 상권의 발달로 기존의 원도심 거주자들이 치솟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쫓겨나는 현상입니다. 최근 몇 년간 언론에서 자주 보던 단어입니다. 물론 세상일이 모두 그러하듯 당장 내 문제가 되지 않는 한 그저 운 나쁜 누군가의 이야기로 치부되기도 하지만요.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고깃집 ‘우장창창’을 경영하는 서윤수(39)씨는 4년 전부터 건물주와 피 말리는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 ‘장하나·김광진의 갈등 속으로’는 세입자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현장에서 첫 회를 시작합니다. 20대 국회의 1호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지난달 9일 발의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입니다. 야당이 20대 국회 초기부터 상가 세입자의 권리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에 의욕을 보이고 있습니다. 법률 개정에 힘을 모으기 위해 ‘전직’인 저희가 상가(喪家)가 돼가고 있는 한 상가를 찾았습니다.

지난달 24일 우장창창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가게 앞에 내걸린 손팻말과 알림막이었습니다. “서윤수의 우장창창, 계속 장사하고 싶습니다.”

먼저 도착해 가게 옆 커피숍에서 일행을 기다렸습니다. 금요일 오후의 커피숍은 데이트 나온 연인들과 젊은이들로 분주했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창밖 가로수길을 걷는 시민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계속 장사하고 싶다는 소박한 호소가 담긴 우장창창의 알림막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요. 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 잠시 길을 멈춰 팻말에 쓰인 내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얘길 나누는 연인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민은 그저 자신의 길을 가기에 바빠 보였습니다.

우장창창 가게 앞 모습. ‘강제집행 없는 세상, 쫓겨나지 않는 세상’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보내온 알림막과 손팻말이 놓여 있다. 서윤수씨가 처음 곱창집을 연 곳은 사진 오른편 건물 1층으로 가수 리쌍이 소유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우장창창 안에서 그날 판매할 고기를 두 손 가득 든 서 대표가 저희를 맞았습니다. 그가 던진 첫인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옆 가게에서 커피 드셨다면서요. 거기 딱 오늘까지 영업하고 문 닫는데, 운 좋으시네요.”

그 커피숍도 급격히 치솟는 임대료 부담으로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우장창창으로부터 오른쪽 대각선 건물의 1층 역시 높은 월세를 감당할 세입자가 나타나지 않아 비어 있었습니다. 세입자들이 임대료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1차 젠트리피케이션이라면, 새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아 상권이 몰락해가는 과정은 2차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임대료가 최고 수준에 이른 가로수길은 이미 2차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국회에서 일할 때 많은 토론회와 간담회를 주최했습니다. 다른 의원들이 여는 행사에도 참여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마다 든 생각이 있습니다. ‘정작 이 이야기를 들어야 할 사람들은 그 자리에 오지 않고, 토론회에 오지 않아도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만 모여서 박수치고 있구나’ 하고 말입니다. 언론에서도 꽤 다뤄진 내용이어서 사람들이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 사안들도 현실에선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늘 놀라곤 했습니다.

우장창창의 사례도 그럴지 모릅니다. 서윤수씨는 임대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건물주에 맞서 상가 세입자들이 결성한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맘상모)의 대표이기도 합니다. 그가 겪어온 일들은 언론보도를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때마다 거론돼왔습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처음 듣는 이야기겠지요. 그의 ‘전후 과정’을 조금만 살펴보면 우리 자신이나 가까운 지인들이 처한 상황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2010년 11월, 서 대표는 지금은 가수 리쌍이 운영하는 ‘포차’ 자리에 곱창집을 개업합니다. 집주인에게 내는 보증금·월세 외에 전에 있던 세입자에게 권리금 조로 2억7500만원을 지급했지요. 장사가 꽤 잘되고 있을 때 가수 리쌍이 새 건물주가 됩니다. 영업 시작 1년 반 만에 리쌍이 직접 영업을 하겠다며 자리를 비워달라고 합니다. 다른 임대업자가 들어온다면 권리금을 승계시킬 수 있지만 건물주가 직접 운영하겠다고 하면 권리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결국 1억8000만원을 권리금으로 받고 건물 지하와 주차장 부지에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합의서를 작성했습니다. 지붕이 있는 건물에서 천막을 덮는 주차장 부지로 쫓겨나는 것도 억울한데 앉은자리에서 1억원을 날린 것입니다.

그렇게 주차장에서 다시 시작한 곱창집은 서 대표의 서글서글한 영업수완으로 손님을 모으고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습니다. 2년 만에 다시 두 번째 내몰릴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서씨가 건물주에게 주차장 용도변경 협조 합의서를 이행하라는 소송을 내자 건물주가 계약갱신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며 서씨의 퇴거를 요구하는 명도소송을 냈기 때문입니다.(4면 상자기사 참조) 현재 우장창창은 권리금 없는 지하와 주차장 부지에서 시작한 영업이라 단돈 한 푼의 영업권도 청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제19대 국회의원 장하나·김광진
“사회적 갈등 현장 목소리 전하며
진정한 정치의 의미 전하고 싶다”
20대 국회 1호 법안 상가임대차법
개정안에 힘 보태기 위해 찾아간
첫 현장 신사동 곱창집 ‘우장창창’

강제퇴거 집행 앞둔 서윤수 대표
한 달째 가게서 숙식하며 저항 중
2년전 건물주 리쌍 요구에 1층 가게
내주고 건물 옆 주차장·지하서 영업
“애초 합의대로 장사하게 해달라”

힘있는 사람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국회에는 참 많은 민원이 들어옵니다. 수십 년 동안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부터 제도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해서 발생하는 일들, 개인 이익을 얻으려는 어처구니없는 민원도 많습니다. 민원들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대부분 해결할 방법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제도와 규정으로 해결될 일이었다면 재판을 했거나 탄원을 제출해서 해결했겠지요. 그게 안 되니 국회의원이 법을 바꾸거나 인맥을 동원해서라도 해결해달라고 찾아오게 됩니다.

민원인을 만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선 잘 들어드리는 것입니다. 이야기하는 민원인이나 이야기를 듣는 국회의원이나 해결 가능성이 낮다는 걸 알면서 대화를 시작합니다. 수십 년 동안 찾아가는 곳마다 거부당하며 마음에 쌓였을 답답함을 들어드리는 것만으로도 그분은 어느 정도 마음이 수그러집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아닙니다.

이때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혼란이 발생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멋진 정치인’은 감성에 충실하게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같이 눈물 흘려야 하지만 제가 서 대표에게 한 첫 질문은 “이 식당은 지붕이 없는 상태의 영업이니 식품위생법 위반 아닌가요?”였습니다. 두 번째 질문도 비슷했습니다. “건축물대장상의 주차장을 점용하고 있으니 건물주는 건축법 위반일 텐데 구청에서는 두 건에 대해서 단속하지 않아요?”

서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법상 위반이 되는 부분들도 있다, 그래서 구청에 과징금을 매년 물고 있다, 그 문제는 계약할 때부터 건물주와 논의했다, 문제를 해결해주기로 약속한 건물주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라고 말입니다.

힘이 있는 사람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누려야 하는 권리와 권한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누리려고 합니다. 약자의 삶을 옥죄는 데 그 약속을 역이용하기까지 합니다.

이것을 바로잡는 것이 정치입니다. 혼자서 해결할 수 없기에 사람들은 조합을 만들고, 법의 정의를 외치며, 정치권과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호소합니다. 우장창창 한쪽 벽엔 맘상모 회원들이 우장창창을 응원하는 글귀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맘상모가 있어서 난 두렵지 않습니다. 맘상모라는 작은 힘이 큰 힘을 이겨내고 이루어냅니다…” 언제나 그렇듯 어깨를 겯고 손을 맞잡을 때 우린 힘이 세집니다.

노동 현장이나 집회 현장, 그리고 이런 임대차와 관련한 삶의 현장에서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상생’과 ‘함께 살자’입니다. 함께 살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땅값과 임대료 상승이 가져다주는 이익이 눈앞에 선명한데 그것을 ‘옳은 마음’만으로 제어하긴 쉽지 않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값을 올려도 새로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있어서입니다. 혹은 장사가 잘되니 세를 주지 않고 건물주가 직접 장사를 해서 수익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지요. 그것을 막을 방법이 있을까요?

“‘함께 살자’는 슬로건 말고 건물주의 퇴거 요구에 맞선 다른 대응 논리는 없냐”고 서 대표에게 물었습니다. 그에게는 가슴 아픈 질문이었을 겁니다. 해답이 있다면 이런 힘든 싸움을 하고 있을 필요도 없을 테니까요. 임차인의 권리를 지켜내는 것, 권리금이란 이 상권을 만들어온 상인들의 부가가치의 누적치이니 당연히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 결국 그렇게 임대료가 오르면 이 동네의 모습처럼 점차 빈 공간이 늘어나 결국 건물주에게도 피해가 닥칠 것이란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장하나 전 의원이 말했습니다. “건물주가 욕심부리는 건 당연한 거예요. 개개인이 욕망을 컨트롤하지 못하니 법과 제도가 그것을 제어하도록 해야 하는 거예요. 시장의 논리가 사람의 권리를 넘어서는 사회, 자본이 인권을 넘어서는 사회는 야만이 지배하는 세상이죠. 건물주의 횡포를 방치해 망한 상인을 사회복지로 다독이는 것을 저는 원하지 않아요. 그런 복지국가보다 경제민주화가 작동해서 망하지 않고 땀 흘려 일하면서도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가 바라는 세상 아닌가요?”

“분쟁조정위만 제 역할 해도”

‘그 세상’을 만드는 것이 정치인의 역할입니다. 그 책무를 다하라고 국민이 권한을 위임한 것이고요. 장 전 의원은 이 분야 전문가입니다. 그는 2013년 6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상가법)을 대표발의하기도 했습니다.

“법안 발의 당시 상가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광역시·도마다 설치하는 신설 조항을 넣었는데 정작 저 자신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외국 입법례를 찾아볼수록 분쟁조정위 설치가 시급한 거 같아요. 우리 법은 본질적으로 건물주의 권리 보호에만 충실하죠. 그러니까 건물주들은 분쟁조정에 응하지 않고 법원 판결을 선호해요. 세입자들은 소송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감당할 수 없어 권리 주장을 포기하는 등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어요. 외국의 상가임대차 분쟁 해결 사례를 보면 법원 재판에 앞서 행정기관이 운영하는 분쟁조정위나 민사조정위의 조정이 활발해요. 시간과 비용을 줄이면서 분쟁을 해결하고 있는 거죠.

반면 맘상모의 분쟁 사례를 보면 임차인이 200일 이상 1인시위를 한다거나 강제집행 과정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해요. 이런 소모적이고 후진적인 현실을 바꾸려면 우선 분쟁조정위부터 법제화해야 해요. 비교적 활발히 운영 중인 서울시 분쟁조정위도 법적 구속력이 없어 임대인 대다수가 출석을 거부하는 실정이에요. 세입자들에겐 분쟁조정위만 제 역할을 해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2014년 3월 서울시가 발표한 ‘상가임대정보 및 권리금 실태조사’를 보면 서울시 상가임대차의 평균 임대기간은 1.7년입니다. 상가법에서 정하고 있는 법정 임대차보호기간 5년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일본과 프랑스, 영국 등은 장기임대차를 유도함으로써 세입자의 영업권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임대인의 계약갱신 거절 사유가 정당한지를 심사하고 고액의 금전 보상이 있을 때 갱신 거절의 정당성을 인정합니다. 퇴거료(보상금) 산정 땐 연매출액에 근사한 금액, 5년치 임차료, 5년간 수입의 30%에 해당하는 금액 등을 기준으로 합니다. 이런 고액의 보상금으로 사실상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을 강하게 보호하는 거지요. 프랑스도 최단 임대차 기간을 9년으로 정해 세입자의 안정적인 영업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일본처럼 건물주의 갱신 거절 시 고액의 금전보상을 요건으로 하고 있어 사실상 갱신을 강제하고 있습니다.”(장하나)

치솟는 월세도 세입자들을 내쫓는 도구로 악용됩니다. 해법은 없을까요? 한국의 대통령령은 현재 월세 증액 범위가 매년 9%를 넘지 않도록 정하고 있어요. 근데 이게 2008년 이후 개정되지 않고 있거든요. 2014~2015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각각 1.3%과 0.7%인 것을 고려하면 임대료 폭등은 한국 상인들이 느끼는 가장 큰 고충이라 할 수 있어요. 더민주 홍익표 의원이 지난 6월9일 대표발의한 상가법은 월임차료 상승률을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2배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조속한 통과를 기대해봅니다.

환산보증금은 보증금+(월세×100)으로 계산합니다. 상가법 제2조는 이 환산보증금을 기준으로 임차인의 보호범위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환산보증금 보호범위(서울 4억원, 수도권과밀억제권역 3억원, 광역시·군 제외 2억4000만원, 기타 지역 1억8000만원) 밖에 있는 상인의 경우 건물주가 월임차료를 인상하는 데 제한이 없어집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장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실제 서울시 주요 상권의 평균 환산보증금은 7억9000만원에 달하거든요. 서울시에서 사실상 현행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임차인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 거죠. 무엇보다 환산보증금에서 월세는 세입자의 재산이 아닌 임대인의 수입이기에 환산보증금이 크다고 영세상인이 아니라고 보아선 안 됩니다. 영세상인만 보호하겠다는 현행 상가법의 태도는 월세와 보증금이 높은 건물의 소유주에게는 상가법 준수의 의무를 면제해주는 역차별적 성격의 독소조항으로 개정안에서 반드시 폐지돼야 합니다.” 

많은 임차인의 꿈은 부지런히 돈을 모아서 내 이름으로 된 가게에서 월세 내지 않고 장사하는 것이지요. 장사가 잘되고 돈은 버는 것 같은데 계속 가난해지고 있다며 서 대표는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사장님이 건물주가 돼도 세입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마음이 그대로일 것 같은지” 묻자 그는 물 한 모금을 들이켜며 말했습니다. “이 문제에선 이미 공인이 되어버려서 말을 바꿀 순 없을 거예요.”

서씨, 주차장 용도변경 합의 이행
요구 거부한 리쌍 상대로 소송내
리쌍도 명도소송으로 맞대응해
법원 “계약연장 요구 안 한 서씨
5월말까지 가게 비워라” 판결

맘상모 대표로 법 개정 이뤘으나
정작 자신의 가게에선 쫓겨날 판
장하나·김광진 “분쟁조정위원회
제 역할 해야 상인들 피해 최소화
환산보증금 규정 폐지도 시급”

이제 ‘여소야대’는 변명이 될 수 없다

그래도 우장창창의 서 대표는 행운아입니다. 건물주가 리쌍이라는 유명 연예인이기에 이 문제가 여기저기 기사화되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법원의 강제집행 2차 계고기간이 지났지만 아직은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처음 임대기간 5년을 주장했을 때는 가로수길이 장사가 잘되던 시기였어요. 5년이나 장사를 해서 권리금을 환수하지 못하면 그건 장사하는 사람들의 능력 문제라고 생각했지요. 해서는 안 될 생각이긴 하지만 용산의 철거민분들을 보면서 나는 2년 만에 쫓겨나는데 그래도 저분들은 10년도 넘게 장사했고 보상금도 받는데 왜 저렇게까지 할까란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갑자기 방송 시사 프로그램을 계기로 소위 ‘곱창 파동’이 나면서 매출이 급감하고 가로수길의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하니까 깨닫게 되더군요. 그분들은 그저 살아가기 위해서 투쟁했다는 사실, 돈을 더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으니 생존을 위해 싸웠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저의 주장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니란 사실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3개월 뒤 우장창창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언제 강제집행이 들어올지 몰라 장사가 끝나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혼자 식당에서 숙식하는 서 대표에게 그 모습이 그려질 리 없습니다. 답이 없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 대표가 말했습니다.

“제 가게에 대한 언론보도가 나가면서 언론플레이 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요즘은 국회에 가서 발표도 하고 기자회견에서 마이크도 잡지만 저는 본래 노출되는 걸 꺼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젠 알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어요. 토론도 논의도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최소한의 합일점이 생기지 않을까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를 국민들이 알기 시작했잖아요. 건물주가 세입자를 마음대로 쫓아내는 게 돈 가진 사람의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는 사실에 국민들이 동의하게 된 거잖아요. 저는 이것도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내 삶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누가 그러더군요. ‘네가 하는 것, 그것도 정치’라고요. ‘내가 버틴다고 바뀌겠나’ 했지만 벌써 상가법이 두 차례나 바뀌었고 저도 아직 이렇게 버티고 장사하고 있으니까요. 내가 행동하고 우리가 함께함으로써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이젠 알아요. ‘힘들지만 힘내서 꼭 이기라’며 응원하는 분들이 계세요. 가끔은 무책임한 응원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 무책임이 무한책임이 된다는 것도 느껴요. 이 자리에서 계속 장사할 겁니다. 그 작은 성공을 제도 변화로 증명해낼 겁니다. 그 변화가 전국에 있는 맘상모 회원들이 맘 편히 장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줄 겁니다. 그 승리에 함께해주세요.”

19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눈물 흘리며 국회를 찾아오는 분들에게 했던 가장 부끄러운 변명 중 하나는 ‘여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20대 국회에서 그 말은 ‘사용 불가한 변명’이 됐습니다. 여소야대 상황인데다 야당 출신 국회의장이 의사봉을 쥐고 있으니까요. 정치는 권력을 정의롭게 쓸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김광진이 대표로 씀

연재를 시작하며

장하나

장하나

힘든 사람들 찾아가서 손잡고 같이 울고 사진 찍고 그러는 게 영 질색이었습니다. ‘의원이 직접 와서 이야기 들어준 것만 해도 고맙다’는 인사는 더 질색이었습니다. 거리의 의원으로 기억되는 건 너무 고맙지만,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자괴감으로 응어리졌습니다. 의원들은 아무리 바빠도 지역구 체육행사나 경로당에는 찾아가면서도 분쟁 현장을 방문하는 것에는 늘 심사숙고합니다. 이래저래 맺힌 게 많은 전직 의원이 <한겨레> 토요판을 통해 한풀이를 해보렵니다.

김광진

김광진

정치인은 새로운 이슈를 쫓아서 열심히 뛰고 있지만 사람들의 삶은 여론의 관심이 있든 없든 계속 지속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 삶을 놓쳐버린 경우가 많았음을 반성합니다. 한때는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을 가졌다가 이제 다시 시민으로 돌아온 저와 장하나 전 의원이 격주로 그동안 다 하지 못했던 삶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합니다. 이슈의 중심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그 고통이 지속되고 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진솔하게 담겠습니다.

거부된 합의, 반복된 퇴거?
우장창창의 어제와 오늘

“지난주 법원 집행관이 와서 집행 전에 건물주와 다시 한번 합의를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건물주 쪽에 연락을 했는데 아직 만나진 못했어요.”

1일 오후,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우장창창’의 서윤수(39) 대표는 법원 집행관의 연락이 퇴거명령 집행을 앞둔 마지막 절차가 아닐지 걱정스러워했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곱창집 우장창창은 현재 법원이 정한 퇴거기간(5월30일)을 넘긴 상태다. 언제든 강제퇴거를 당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서씨는 5월31일부터 가게에서 숙식을 하며 강제집행에 대비하고 있다.

서씨가 현재 건물 1층에 곱창집을 개업한 건 2010년 11월이다. 1년 반 만인 2012년 5월 새로운 건물주 ‘리쌍’은 서씨에게 가게를 비워달라고 통보했다. 건물주와 실랑이 끝에 서씨는 1층 점포를 내주고 건물에 딸린 주차장과 지하로 곱창집을 옮겼다. 당시 건물주와 서씨는 “주차장을 용도변경해 영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협조한다”는 합의서를 썼다.

당시 자신이 겪은 이 일이 단순히 운이 없어서 당한 것이 아니라고 느낀 서씨는 비슷한 처지의 상인들과 ‘맘상모’(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맘상모는 임차상인의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가법)을 바꾸기 위한 운동을 벌였고 이들의 노력 끝에 상가법은 2013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개정됐다.

맘상모의 대표로 활동했지만 정작 서씨 가게에는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잇따른 민원 신고 때문에 주차장에서 영업을 할 수 없게 된 서씨는 합의서대로 건물주에게 주차장 용도변경을 요구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소송을 냈다. 이에 건물주도 서씨가 주차장에 천막을 치는 불법을 저질렀다며 명도소송으로 맞섰다.

양쪽의 주장을 기각한 법원은 서씨가 지하와 주차장 임대계약 종료 6개월에서 1개월 사이 건물주에게 계약 갱신 요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건물주의 요구대로 서씨에게 퇴거명령을 내렸다. 현행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 임대인이 세입자에게 계약 중단을 통지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계약이 연장되지만 서씨는 이것이 가능한 환산보증금(서울의 경우 4억원) 기준에 해당되지 않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것이다.

법원의 합의 종용에 대해 건물주 길성준씨의 누나인 길아무개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법률대리인에게 문의하라”고 했지만 법률대리인은 “이와 관련해 건물주 쪽에 별다른 위임을 받은 것이 없어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지난달 중순께 서씨는 서울시 상가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한 상태다.

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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