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민들이 어리석어 '대형사고' 쳤냐고?

입력 2016. 7. 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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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김경락의 초딩 이코노미
(24) 브렉시트

울고 있는데 뺨 맞았다고나 할까? 우리나라 경제 말이야. 가뜩이나 수출이 잘 안되고 지갑마저 얇아져 외식 한번 하기 어려울 정도로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지 오래됐는데, 또 나쁜 소식이 들려왔어. 그것도 멀고도 먼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 말이야. 지난주 영국은 유럽연합(EU)에 계속 남을 건지, 아니면 떠날 건지를 놓고 국민투표를 했는데, 유럽연합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쪽이 승리를 했잖아.

브렉시트. 그 결정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곳은 금융시장이야. 대부분 나라의 주가지수는 곤두박질쳤고, 미국 돈(달러)과 일본 돈(엔)을 뺀 대부분 나라 돈의 가치도 추락했지. 한국 돈 원화도 하락 행렬에서 빠지지 않았어. 경제 전문가들은 브렉시트 탓에 우리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도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고, 정부도 여러 차례 긴급 회의를 하며 긴장된 모습을 보였지.

영국 국민의 이번 결정과 경제가 무슨 상관이냐고? 이번에도 조금은 복잡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 유럽연합이 왜 생겨났는지, 영국 국민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등을 차근차근 이해해나간 뒤에야 브렉시트가 불러온 경제적 파장을 어렴풋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을 거야. 자, 이제 시작해볼까?

왜 전문가들의 예상이 빗나갔을까?

투표함을 열어 개표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쪽이 우세할 것이라는 전망이 더 많았어. 여러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도박사들도 브렉시트에 돈을 걸지 않았지. 영국 돈인 파운드화 가치도 브렉시트 쪽으로 결론이 나지 않는 것이라는 기대 속에 계속 올랐어.

이런 기대감 혹은 판단은 브렉시트가 영국 국민에게 결코 이롭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지. ‘스스로에게 독화살을 쏘는 바보들이 어디 있겠나’라고 본 거야. 사실 영국 정부나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들은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날 경우 영국 경제에 막대한 충격을 불러올 것이라며 구체적인 숫자까지 나열한 분석 결과를 내놓기도 했거든.

왜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에 재앙이라고 봤는지, 궁금하지? 유럽연합은 28개 나라들이 모인 연합체야. 가입하려 준비 중인 나라도 꽤 있어. 이 연합체는 단순한 모임 수준이 아니라 같은 경제권으로 묶여 단단히 결속돼 있지. 경제적으로는 유럽연합 자체가 거대한 하나의 국가나 마찬가지야. 예를 들어 유럽연합 소속 국가들 사이에선 물건을 사고팔 때 별도의 세금(관세)을 물지 않아도 돼. 이민을 가는 것도, 다른 나라에 공장을 세우거나 학교를 다니는 것도 어렵지 않지. 그렇다면, 브렉시트는? 그렇지, 이런 이점을 포기하는 게 되는 거야.

영국은 금융산업이 매우 발달돼 있어. 미국의 뉴욕과 함께 영국 런던은 세계금융의 양대 중심지야. 금융이라는 게 그래. 누구나 아무런 제약 없이 들어왔다 나갔다 할 수 있어야 해. 유럽연합 체제는 영국의 금융산업 발전에 있어 중요한 요건인 거지. 브렉시트는 영국의 가장 큰 돈줄인 금융업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게 되는 거야. 당장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주요 은행들이 런던에 둔 지점 혹은 본사를 유럽 내 다른 국가로 옮기는 것을 검토한다는 뉴스가 곧바로 나오더라.

개표 전까지는 ‘잔류’ 전망 우세
영국 경제에 해로울 것이라 본 탓
예상 밖 결과에 금융시장 대혼돈
불안감 커지고 소비심리 위축돼
세계경제 성장엔 부정적 요인

영국 뒤이어 이탈 행렬 나올 수도
갈등과 분쟁의 시대로 되돌아가나
유럽연합 내 불평등 확대 주목해야‘탈퇴’ 찬성 이면엔 복지확대 열망
“부자들만의 유럽연합” 반성할 때

세계와 한국 경제에 불리한 이유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여러 경로로 경제에 나쁜 영향을 주거나 줄 거라고 예상되고 있어. 먼저 금융시장. 금융시장은 사소한 사건 하나로도 엄청난 돈이 순식간에 쏠릴 수 있는 곳이야. 주변 상황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 변화 폭도 크다는 뜻이지. 특히나 금융시장은 가까운 미래를 쉽게 예측하기 어려울 때일수록 하루가 다르게 널뛰듯 큰 변화를 보여. 브렉시트 결정 후 며칠 동안 금융시장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도 애초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지.

금융시장의 변화 폭이 커지면, 그 자체로 경제활동에 문제를 일으켜. 앞날이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불안감이 금융시장을 통해 매일매일 전달이 되고, 그 결과 사람들의 경제 심리는 얼어붙게 되지. 기업들은 예정해 놓았던 투자 계획을 변경하거나 취소를 하고, 소비자들도 불투명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소비를 뒤로 미룬다는 뜻이야. 투자와 소비가 준다는 건 물건을 만들려 하지도 않고 만든 물건을 사람들이 사지도 않는다는 얘기야. 금융시장을 통해 확대된 불안심리가 경제를 좀먹어 가는 거지.

브렉시트는 국가 간 물건을 사고파는 무역에 직접 영향을 줄 수도 있어. 미국, 중국에 이어 가장 큰 수입 시장인 유럽이 영국의 탈퇴로 좁아지게 됐잖아. 유럽 내에서도 세금(관세)을 내지 않고 무역을 할 수 있는 경제 영토가 줄어들게 되지. 더구나 앞서 말한 대로 영국 경제도 더 나빠질 테니 영국이나 유럽에 물건을 많이 파는 나라들일수록 브렉시트 탓에 당장 수출이 줄어들 수 있어.

구체적으로 우리나라는 어떤 영향을 받냐고? 일단 우리나라 정부나 대다수 전문가들은 금융시장 경로를 통한 경제 위축 가능성을 더 크게 보고 있어. 주식시장이 널을 뛰고 외환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사람들의 경제 심리가 얼어붙을 것을 우려하는 거지. 반면 수출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지는 않더라고. 우리나라는 주로 중국과 일본, 미국에 물건을 팔기 때문이야. 실제 영국 시장은 우리나라 수출액의 2%가 채 안 되고, 유럽으로 넓혀봐도 10% 수준이라고 해. 매년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100만원어치의 물건을 판다면, 그중 영국에 파는 물건은 2만원이 안 되고, 유럽 전체적으로도 10만원 정도에 그친다는 뜻이야.

미리 겁먹지도 안심하지도 말아야

브렉시트는 이제 막 시작이야. 앞으로 수만가지 일들이 벌어질 수 있지. 벌써부터 미리미리 이런저런 예단을 해서 낙관하거나 비관에 빠질 이유는 없어. 당장 국민투표대로 영국이 유럽연합에 탈퇴를 신청하지 않을 수도 있어. 이번 투표는 법적 강제력이 없거든. 물론 영국 정치인이나 정부는 국민투표에서 나타난 국민들의 뜻을 외면하기는 어렵겠지만 말이야.

영국이 탈퇴의 길로 간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최소한 2년, 길면 10년의 세월이 걸릴 수도 있다고 해. 영국과 유럽연합 간의 이혼이 매우 지난한 과정을 거칠 수 있다는 얘기야. 또 브렉시트를 한 뒤에도 영국과 유럽연합이 이런저런 무역 협정을 맺어서 브렉시트 이전과 마찬가지로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수도 있어. 그냥 한바탕 소동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얘기지.

물론 반대의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어. 영국의 변심을 유럽연합 내 다른 나라들도 뒤따를 수 있다는 거지. 사실 유럽연합에서 여러 회원국이 이탈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왔어. 영국이 처음은 아니라는 거야.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은 그리스가 대표적이지. ‘그렉시트’라는 말까지 다 나왔었잖아. 불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야.

좀더 넓게 보면, 탈퇴를 공식적으로 입에 담지는 않았지만 현재 유럽연합 체제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회원국은 여럿 있어. 영국에서 그 불만이 폭발적으로 터져나온 거지. 유럽연합이 10여년 전 출범하게 된 것은 조금 거창하게 말해서 ‘유럽 공동의 번영’이란 꿈 때문이었다고 해. 유럽 내 모든 국가들이 서로 싸우지 말고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선 유럽연합이란 새로운 우산 아래 모여야 한다고 본 거지.

사실 유럽은 우리나라가 속한 아시아만큼이나 오랜 역사가 있는 곳이잖아. 또 크고 작은 나라들이 무수히 많은 터라, 유럽의 역사는 분쟁과 갈등의 역사이기도 해. 20세기에서 가장 큰 전쟁인 1·2차 세계대전도 유럽에서 시작됐지. 브렉시트는 공동 번영이란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그릇으로서의 유럽연합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내지 도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볼 수도 있다는 얘기야.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이런 근본적인 의문을 유럽이 잠재우지 못한다면 결국 유럽연합의 해체, 다시 말해 갈등과 분쟁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어. 브렉시트가 군사·정치적 사안으로까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 있다는 거야. 당연히 이 과정에서 경제는 망가질 테고. 우리나라도 이 틈바구니 속에서 어떤 영향을 받을지 가늠하기도 어려워지겠지.

브렉시트에 찬성한 민심의 근원

이 글의 앞부분에 영국 국민이 어리석은 결정을 한 것일까란 의문을 달았어. 생각해보자고. 스스로에게 독약이 되는 것을 잘 몰라서 그런 결정을 했을 수도 있고, 독약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결정을 했을 수도 있겠지. 또 거짓된 주장을 사실로 착각해서 브렉시트 쪽에 표를 몰아줬을 수도 있고.

하지만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만한 또다른 이유, 브렉시트에 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던 사정 말이야. 투표 결과의 충격이 조금 가신 탓일까. 이제 좀더 근원적인 질문, 영국인은 왜 브렉시트에 찬성했을까에 대한 해설이 나오고 있어. 이런 해설 중에 한번쯤 너희도 생각해볼 만한 한 토막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칠까 해.

영국의 한 교수는 이런 분석을 내놨어. “이번 투표 결과는 영국의 정치 엘리트들이 민심과 동떨어져 있다는 걸 보여준다.” 영국의 국회의원(하원) 650명 중 500명쯤이 브렉시트에 반대한다고 해. 국민의 절반 이상은 찬성하는데 말이야. 민심을 읽고 대변해야 하는 정치인들이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거지.

그렇다면 브렉시트에 찬성한 민심의 근원은 또 뭘까? 유럽연합 체제에서도 심화된 소득 불평등에 주목하는 시각이 있어. 공동의 번영을 기대했으나 고소득층만 더 혜택을 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다는 거지. 실제로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노동자 등 가난한 사람들이 브렉시트에 많이 찬성을 했어. 특히 유럽연합이 출범하면서 급증한 영국으로의 이민이 서민들의 삶을 더 팍팍하게 했다는 인식도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지게 했다고 해. “부자들한테만 이로운 유럽연합은 이제 그만.”

브렉시트에 찬성한 사람들의 또다른 요구가 복지 확대였다는 것도 곱씹어볼 지점이야. 한때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말이 나올 정도로 폭넓은 복지제도를 갖춘 게 영국이었어. 그러나 1980년 이후로는 점차 축소가 됐거든. 여기에 대한 불만이 30년간 쌓여오다가 브렉시트 요구로 터져나왔다는 거야. 어때? 영국 국민이 어리석은 결정을 했을 수는 있으나, 그럴 수밖에 없었던 배경도 있었다는 것도 기억해둬야겠지? 브렉시트가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정치·군사적 혼란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사례로 기록되지 않을지 모르겠어.

김경락 경제에디터석 기자

김경락 경제에디터석 기자. 세종특별자치시에서 기획재정부를 출입하며 재정·금융 분야를 다루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소식을 전하는 것만큼이나 알기 쉽게 경제 현상을 소개하는 데 관심이 많다. 쓴 책으로 <내 동생도 알아듣는 쉬운 경제>(사계절)가, 번역한 책으로 <오래된 희망, 사회주의>(메디치미디어)가 있다. 딱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눈높이에서 경제 현상의 이면을 풀어준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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