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新경제 못 담는 구닥다리" 경제지표 왕좌 GDP의 위기

2016. 7. 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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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시대 못 따라가는 통계지표
[동아일보]
#1. 지난해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11위인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다. 전년보다 2계단 뛰었다. 2030년엔 세계 7위로 도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유엔이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47위에 그쳤다. 심지어 올해는 58위로 11계단이나 추락했다. 한국 경제가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행복도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2. 미국의 ‘집카’는 2000년 자동차 한 대를 시간 단위로 여러 명이 나눠 쓰는 차량 공유(카 셰어링) 서비스를 시작했다. 집카를 본떠 국내에도 2011년 쏘카, 그린카 등의 업체가 생겼다. 현재 대기업까지 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국내에서 차량 공유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는 340만 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이 시장이 아무리 커진들 경제 성장엔 별 도움이 안 된다. GDP 통계에는 이런 공유경제 활동이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를 80여 년간 지배해 온 경제지표의 ‘절대 왕좌’ GDP가 위기에 처했다. GDP가 실제 ‘삶의 질’과 괴리돼 있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최근엔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진 구닥다리 지표가 ‘디지털 혁명’과 같은 시대 변화를 담아내지 못한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이런 문제를 극복할 대체 지표 개발에 나섰다.

산업화 시대 유물…新경제 반영 못해

GDP는 한 나라 안에서 생산된 최종 재화와 서비스를 시장가격으로 평가해 합산한 금액이다. 1930, 1940년대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 때 국가의 생산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선진국이 ‘덩치 경쟁’을 벌이던 시기에 이를 측정하기 위한 맞춤형 지표로 탄생한 것이다.

이후 GDP는 한 나라의 경제 규모와 성장 속도, 부(富)의 정도를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로 군림해 왔다. GDP 증가율은 곧 경제성장률의 개념으로 사용됐고, 국력 비교부터 정부의 정책 결정, 선거 때 정권의 국정 운영 능력 평가에도 GDP가 잣대가 됐다.

하지만 생산에서 소비의 시대로 변하고 경제의 축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옮겨가면서 ‘경제학의 최고 발명품’으로 불리던 GDP도 힘을 잃어가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1970, 1980년대에 비해 국민들이 즐길 수 있는 TV 채널이 많이 늘고 하다못해 약국에서 파는 진통제 종류도 많아졌지만 GDP는 이런 변화를 일일이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구글, 애플, 아마존 등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경제가 확산되면서 GDP의 한계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학원에 가면 학원비가 통계에 잡혀 GDP가 증가한다. 하지만 유튜브로 무료 강의를 들으면 실제 돈이 오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GDP 통계는 변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나 숙박 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 등도 업태는 사실상 일반 택시나 호텔과 비슷하지만 거래 특성상 GDP에 잡히지 않는다. 또 온라인 쇼핑이나 모바일뱅킹이 늘면 소비자 효용은 커지지만 시설투자 비용이 줄어 GDP는 오히려 감소한다.

인공지능(AI), 로봇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 이런 문제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국내 GDP 통계를 주관하는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도 지난달 경제동향간담회에서 “품질 차별화가 가능한 서비스업의 비중이 늘고 디지털 경제가 확대돼 GDP 신뢰성이 떨어지고 있다”며 “GDP 신뢰성에 대한 의문은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각국 GDP 대안 찾기

저성장과 계층 양극화가 고착화되면서 GDP와 국민들의 생활체감도는 갈수록 괴리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GDP 규모는 세계 11위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더 나은 삶 지수’(올해 28위), 갤럽의 ‘웰빙 지수’(2014년 117위) 등 삶의 질과 직결되는 지표들의 순위는 한참 떨어진다.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무시하고 이른바 ‘나쁜 경제성장’을 해도 GDP가 증가한다는 문제도 있다. 예컨대 사교육비가 치솟고, 미세먼지를 내뿜는 자동차 생산이 늘고, 또 국민들이 병에 많이 걸려 치료비가 증가해도 GDP는 늘어 경제가 성장한 걸로 비친다. 심지어 환경 파괴나 전쟁 등도 생산 활동으로 분류돼 GDP가 급증하게 된다. 반대로 개인의 여가나 가족을 위한 가사노동 같은 무형의 가치는 GDP에서 제외된다.

2008년 프랑스 정부가 GDP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발족한 대통령직속위원회도 이런 문제 인식을 갖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주축이 된 위원회는 GDP 숫자에 대한 맹신에서 벗어나 국민 행복도를 반영하는 새로운 지표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위원회는 “양보다 질적 변화가 중요하고 환경 교육 건강을 비롯해 개인의 주관적 만족도가 지표에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도 이런 현실을 반영해 GDP 통계 보완을 위한 중장기 계획 마련에 나섰다. 이주열 총재는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GDP 추정 방법을 개선하고 생활수준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새 지표를 개발하겠다”고 공언했다. 한은 관계자는 “GDP의 국제기준이 바뀌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국제기준과 별개로 공유경제, 디지털 경제 등 현재 통계에 포착되지 않는 부문을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김정식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비록 GDP에 한계가 있고 여러 기관에서 대안 지표를 내놓고 있지만 아직까지 GDP를 대체할 만한 국제 지표는 없다”며 “GDP를 통해 경제 성장을 측정하는 작업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가, 실업률 등도 ‘반쪽 통계’

달라진 경제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통계는 GDP뿐만이 아니다. 소비자물가도 체감 물가와 괴리가 커지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3년 1월부터 올 3월까지 통계청의 공식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평균 1.1%였지만 한은이 같은 기간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물가 인식’ 상승률은 2.7%로 2배 이상 높았다. 올 2∼4월에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대였지만 밥상에 주로 오르는 품목을 묶은 신선식품지수는 9%대로 올라 장바구니 물가와 공식 물가 간의 차이가 컸다.

최근 전세 대신 월세가 늘면서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이 커지고 있지만 물가지수에 반영되는 가중치(30.8)가 스마트폰 이용료(33.9), 휘발유(31.2)보다 낮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따라 통계청은 가구별로 주로 사용하는 물품을 선정해 직접 물가지수를 계산해 볼 수 있는 ‘체감물가 계산 서비스’를 지난달 28일부터 시행 중이다. 또 소비 패턴 변화를 빠르게 반영하기 위해 소비자물가 조사에 포함되는 대표 품목의 변경 주기를 기존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체감 실업률도 공식 통계와 동떨어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정규직 취업을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이나 몇 달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 등은 사실상 실업자나 다름없는데도 ‘비경제활동인구’로 잡혀 공식 실업률 계산에서 제외되고 있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달 청년층(19∼25세)의 체감 실업률이 34.2%에 이른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공식 실업자 외에 알바생, 취준생, 취업 포기자 등을 모두 포함해 자체적으로 추산한 결과다. 이에 대해 유경준 통계청장이 “통계의 기본이 안 된 보고서”라며 발끈하고 나섰지만 현대경제연구원의 지표가 오히려 더 피부에 와 닿는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정임수 imsoo@donga.com·세종=손영일·박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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