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시공간의 물결' 중력파, 수십억년前 과거도 볼 수 있는 망원경"

박건형 기자 입력 2016. 7. 2. 03:03 수정 2016. 7. 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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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입자' 중성미자로 노벨상 日 가지타 교수 인터뷰 "소립자 검출 장비에만 1000억원 日정부·국민, 기초과학 신뢰 커.. 이런 문화 덕에 노벨상 많이 나와 카미오칸데 중성미자 연구 때 가장 우수한 연구팀원이 한국인.. 이젠 한국 물리학도 세계적 수준"

세계 최고의 과학자는 달변(達辯)이 아니었다. 간단한 질문에도 고개를 갸웃거렸고, 답변이 떠오르지 않자 답답한 듯 한숨을 내뱉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연구를 설명할 때는 어린아이처럼 눈이 반짝거렸다. 과학에 대한 그만의 철학은 명확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가지타 다카아키(梶田隆章·57) 교수는 지난 24일 대전 KAIST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과학은 남이 하지 않는 새로운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가지타 교수는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지만 다른 물질과 거의 반응하지 않아 '유령 입자'로 불리던 중성미자(中性微子·뉴트리노)의 실체를 밝혀내 아서 맥도널드 캐나다 퀸스대 교수와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는 본인이 이끌고 있는 카그라(KAGRA, The Kamioka Gravitational Wave Detector·가미오카 중력파 검출기) 연구단과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KGWG)이 공동 주최한 국제 세미나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카그라는 일본 기후현 히다시 가미오카 폐광(廢鑛)에 설치된 거대 장비이다. 지하 200m에 길이가 3㎞에 이르는 두 개의 터널을 설치해 만들었다. 블랙홀의 결합이나 중성자별의 폭발 같은 현상이 벌어지면 시공간(時空間)이 출렁이면서 중력파(重力波)가 생겨난다. 이 중력파는 마치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동심원 모양의 물결이 퍼져 나가는 것처럼 온 우주로 번진다. 중력파가 지구에 도착하면 터널 사이를 오가는 레이저에 변화가 생긴다. 이를 측정해 중력파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카그라는 최근 시험 가동에 성공했다. 가지타 교수는 "카그라는 같은 원리로 지어진 미국의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IGO·라이고), 유럽의 VIRGO(비르고)와 함께 우주를 보는 인류의 시각을 획기적으로 넓혀 줄 것"이라고 말했다.

―노벨상을 받은 후에 삶이 상당히 달라졌을 것 같다.

"엄청나게 바빠졌다. 주위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서 압박감도 느낀다. 무엇보다 연구를 할 시간이 줄어들었다. 중·고등학생들을 상대로 강연도 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폐광에 지은 소립자 검출 장치인 수퍼카미오칸데에서 중성미자를 연구해 노벨상을 받았다. 무려 1000억원이라는 돈이 들어간 거대 장비였고, 카그라 역시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 연구비 조달이 어렵지는 않았나.

"일본 정부와 국민은 과학자들을 믿는다. 기초과학에 당장 상용화되거나 곧바로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노벨상이 많이 나온 것도 이런 문화의 산물이 아닐까 한다. 과학자들은 "우리의 연구가 인류 전체의 지식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정부가 일일이 과제를 만들고 기획하지도 않는다. 그건 어디까지나 과학자들의 몫이다."

―거대한 장비를 짓기만 하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연구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수퍼카미오칸데를 처음 짓기 시작한 것이 1995년이다. 수퍼카미오칸데는 거대한 물탱크에 6000개에 이르는 대형 광(光)센서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형태이다. 2000년대 초반 완공 직후에 이 광센서가 불과 10초 만에 몽땅 터져버렸다. 원인도 모르는 채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복구에만 5년이 걸렸다. 왜 그런 사고가 일어났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기초과학의 성패는 얼마나 기다릴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차분하게 자신을 믿어야 한다."

―카그라는 아인슈타인이 예견했던 시공간의 물결인 중력파를 검출하는 장비이다. 하지만 가동도 시작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지난해 라이고가 두 건의 중력파를 검출했다. 실망하지 않았나.

"거꾸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소식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과학에는 확신이 필요한데, 라이고는 중력파가 있고 우리가 옳은 방향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는 확신을 줬다. 라이고는 고작 두 개의 중력파만 발견했을 뿐이다. 카그라는 라이고보다 더 정밀한 성능을 갖추고 있다. 라이고는 숱한 입자들이 쏟아지는 허허벌판에 있다. 카그라는 산속에 지어졌기 때문에 다른 입자가 차단되고, 액체 헬륨을 이용해 열의 영향도 덜 받는다. 무엇보다 카그라와 라이고, 이탈리아의 비르고 등을 함께 가동할 때 중력파의 실체에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

―세 기기가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말인가.

"두 대에 불과한 라이고는 중력파를 일으킨 블랙홀의 결합, 중성자별의 폭발 등이 어느 쪽에서 생겼는지 대략적인 방향만 알 수 있다. 하지만 카그라와 비르고가 있으면 세 개 이상의 장치에서 검출되는 내용을 분석해 정확한 거리와 위치를 알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중력파를 통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 먼 곳에서 일어난 미지(未知)의 사건에 대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 광학망원경이나 전파망원경과는 다른 우주를 관측하는 또 다른 눈이 돼 줄 수 있다. 수십억 년 전에 먼 우주에서 일어난 과거의 일까지 볼 수 있다."

―한국 연구단과 꾸준히 공동 연구를 진행하면서 여러 차례 한국을 찾았다. 한국 물리학의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수퍼카미오칸데에서 중성미자 연구를 진행할 때 가장 훌륭한 팀원이 한국인이었다. 지금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서 세계적으로 중성미자 연구를 이끌고 있다(김수봉 교수). 카그라에도 한국 연구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카그라의 레이저 발생 장치는 한국의 고려대에서 공급받았고,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은 카그라의 검출 결과를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있다. 한국의 물리학 수준은 이렇게 보면 된다. 예전에는 한국으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으러 가는 사람은 없었다. 한국 사람들도 전부 외국에서 학위 과정을 밟았다. 하지만 이제 한국으로 많은 학생이 물리학을 공부하러 간다."

―한국 학생들은 창의성이 빈약하고, 질문도 잘 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일본도 정확히 같은 고민을 갖고 있다. 학생들이 소심하고 부끄러워한다. 무언가를 억지로 바꾸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긍정적인 것은 요즘 학생들은 예전 학생들보다 조금은 나아졌다는 것이다."

―스승인 고시바 마사토시 교수와 대(代)를 이어 노벨상을 수상했다. 고시바 교수로부터 특별한 가르침을 얻었나.

"학문적인 내용보다는 마음가짐을 더 많이 배웠다. 젊은 세대는 항상 현재 이후를 생각하라고 하셨다. 무엇이든 중요한 것을 찾아서 그걸 하라고 말이다. 나 역시 후배들에게 같은 얘기를 한다. 고시바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하는 것이 내 역할이랄까."

―학생들이 항상 궁금해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물리학을 잘할 수 있느냐이다.

"나도 그런 비법이 있으면 좋겠다. 학생보다는 부모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똑똑한 학생들이 물리학을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오늘날의 부모들은 과학자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잘 믿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 같은 아시아권 문화에서는 교육과 진로의 선택에 부모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과학은 어떤 분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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