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지카 바이러스'의 비밀, iPS세포 연구로 풀었다

김정범 울산과학기술원(UNIST) 생명과학부 교수 입력 2016. 7. 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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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만능줄기세포 나온 지 10년, 남은 과제는.. 발암 유전자부터 없애야.. 질병·신약 연구에 많이 활용

2006년 일본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생쥐의 피부 세포에 네 가지 유전자를 주입해 배아줄기세포 상태로 만들었다. 바로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 induced Pluripotent Stem cell)'다. 배아줄기세포처럼 인체의 다양한 세포로 자라는 '만능(萬能)' 줄기세포이지만, 다 자란 피부 세포를 초기 상태로 거꾸로 자라도록 유도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

이듬해 야마나카 교수는 미국 위스콘신대의 제임스 톰프슨 교수와 함께 사람의 피부 세포로 같은 iPS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세상은 재생의학(再生醫學)의 새 장이 열렸다고 환호했다. 톰프슨 교수는 1998년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하고 남은 인공수정란에서 최초로 배아줄기세포를 분리한 과학자이다.

iPS세포는 기존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부상했다. 배아줄기세포를 얻으려면 하나의 생명체로 자라는 수정란을 파괴해야 했다. 환자와 유전자가 달라 면역 거부 반응도 일어났다. 복제 배아줄기세포는 그런 문제가 없지만 역시 난자와 수정란을 파괴해야 한다. 그동안 iPS세포는 대안의 세포 치료제로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그럼에도 환자들이 열망하는 치료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무엇이 iPS세포의 발을 붙잡은 것일까.

◇발암 유전자·바이러스 제거가 관건

먼저 세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 역분화(逆分化) 유전자들이 문제였다. 야마나카 교수가 피부 세포에 넣은 유전자는 Oct3/4, Sox2, Klf4, c-Myc 4개였다. 이 중 c-Myc는 이미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로 알려져 있었다. 다른 유전자들도 암과 연관이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왔다. 이 유전자들은 바이러스에 실려 세포의 유전자에 끼어 들어갔다. 후대에도 같은 유전자가 이어지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먼저 역분화 유전자를 하나씩 줄여나갔다. 독일 막스플랑크 분자의학연구소의 한스 쉘러 교수와 김정범 박사(현 울산과학기술원 교수)는 2009년 '네이처'에 Oct4 유전자 하나만으로 iPS세포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MIT의 루돌프 예니시 교수는 세포에 삽입한 유전자를 역분화 후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어 유전자 대신 화학물질이나 단백질을 이용한 역분화법들이 나왔다. 유전자를 넣어도 세포의 유전자에 끼어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기술도 나왔다.

야마나카 교수는 2013년부터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와 함께 iPS세포를 이용한 노인성 황반변성증 치료 임상 시험에 들어갔다. 이 병은 혈관이 과도하게 자라 망막의 색소상피세포가 파괴되면서 발생하는데, 시력이 저하하고 심하면 실명(失明)으로 이어진다. 연구진은 이듬해 70대 여성 환자에게 iPS세포로 만든 색소상피세포를 이식해 시력이 회복되는 효과를 봤다.

하지만 2015년 환자의 피부 세포로 만든 iPS세포와 여기서 나온 색소상피세포에 유전자 돌연변이 두 가지가 발견되면서 일본의 임상 시험은 중단됐다. 미국에서는 아스텔라 재생의학연구소(옛 ACT사)가 황반변성증과 녹내장에 대한 iPS세포 임상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스크립스연구소의 지니 로링 박사는 2년 내 파킨슨병 환자에 대한 iPS세포 임상 시험을 계획하고 있다.

◇질병 연구와 신약 탐색 도구로 각광

과학계는 더 많은 환자가 iPS세포 치료 혜택을 받기 위해 세포은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환자 피부 세포로 iPS세포를 만들면 1인당 1년에 100만달러가 들지만, 이미 확보된 iPS세포 중 면역 거부 반응이 덜한 것을 이용하면 많은 환자가 훨씬 빠르고 저렴하게 세포 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에서 이를 추진 중이다.

현재로선 세포 치료보다는 질병 연구와 신약 개발에서 iPS세포의 가치가 더 발휘되고 있다. 2012년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이갑상 교수는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가족성 자율신경실조증 환자의 피부 세포로 iPS세포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이 세포에 6912가지 약물을 시험해 그중 약효가 있는 물질 하나를 발견했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는 지난 4월 '사이언스 중개의학'에 iPS세포로 감각신경세포를 만들어 실험해 환자의 통증을 줄이는 약물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약물을 시험하려면 세포보다는 조직, 그보다는 기관이 낫다. 존스홉킨스대 구오리 밍 박사 연구진은 지난 4월 '셀'지에 iPS세포로 최소한의 기능을 가진 초소형 미니 뇌를 만들어 지카 바이러스의 발병 원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런 미니 장기는 '오가노이드(organoid)'라고 한다. 바이러스는 미니 뇌의 신경줄기세포를 공격해 세포 사멸을 유도했다. 그 결과 뇌 부피가 줄었다.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임신부는 뇌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태아를 낳는다. 작년 UC버클리대 연구진은 iPS세포로 심장 오가노이드를 만들었다.

◇iPS 단계 생략한 새로운 분화 기술도

iPS세포는 배아줄기세포처럼 무한 증식하는 성질이 있다. 이는 암세포로 돌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피부 세포를 iPS세포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원하는 세포로 바꾸는 '직접 교차 분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2010년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피부 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넣어 8~13일 만에 신경세포로 바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전처럼 피부 세포에서 iPS세포를 만들면 10~30일이 걸리고, 여기서 원하는 세포를 분화하는 데 또 30일이 더 든다. 최대 7배 이상 기간을 단축한 것이다. 작년 UNIST 김정범 교수진은 하나의 유전자로 피부 세포에서 척수 손상을 치료할 수 있는 신경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직접 교차 분화에서도 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넣는 데 바이러스가 이용된다. 이러면 삽입한 유전자가 세포에 계속 남아 돌연변이를 유발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바이러스 대신 화학물질로 직접 교차 분화를 유도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최근 UC샌프란시스코의 샹 딩 교수는 아홉 가지 화학물질로 사람 피부세포를 심장 근육세포로 분화시켰다. 물론 직접 교차 분화 역시 iPS세포와 마찬가지로 환자 치료에 쓰려면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지 않는지, 안전성은 확실한지 점검해야 할 일이 많다.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지난 5월 네이처지 인터뷰에서 "iPS세포는 신약 발견 과정을 단축할 수 있지만 생략하지는 못한다"며 "마법은 없다. iPS세포든 다른 신기술이든 똑같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나의 혁신적인 과학기술이 개발돼 보편화되는 데에는 20년이 걸린다고 한다. iPS세포 연구는 이제 반환점을 통과한 셈이다. 마지막 골인 지점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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