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소고기가 자란다 소는 누가 키우랴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2016. 7. 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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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서 만드는 고기·우유·가죽 실험실 소고기 찜찜하다고? 항생제도 광우병도 걱정 없어요

소는 아낌없이 주는 동물이다. 인간은 소의 모든 것을 쓴다. 모유(母乳) 대신 우유를 먹고, 살점은 굽고 찌고 볶아서 식탁에 올린다. 피와 내장, 꼬리조차도 훌륭한 식재료가 된다. 당뇨 환자의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은 소의 췌장에서 나오고, 지방은 비누·샴푸의 원료이다. 뼈로는 고급 도자기인 '본차이나'를 만들고, 배설물은 퇴비와 연료로 사용한다. 구두·가방·가구·의류도 소의 가죽을 벗겨 만든다. 신(神)이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내린 최고의 축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소는 더 이상 축복이 아니다. 지구를 망치는 주범이다. 자연의 일부인 소가 스스로 자연을 망친 것은 아니다. 점점 더 많은 소를 원하는 인간의 탐욕(貪慾)이 원인이다. 소가 먹어 치우는 엄청난 양의 사료와 물, 소가 내뿜는 메탄가스와 배설물이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 고심하던 과학자들이 실험실에 푸줏간을 차렸다. 실험실에서 소에서 나오는 물질들을 인공적으로 키워내고 있다. 이들은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1⁺⁺등급 소고기, 소화가 잘되는 우유, 부드럽고 질긴 소가죽이 원하는 대로 생산되는 미래를 꿈꾼다.

◇실험실에 차려진 푸줏간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대 마크 포스트 교수는 2004년부터 소고기를 실험실에서 만들고 있다. 그가 설립한 벤처회사 '모사미트'는 배양접시에서 햄버거용 고기를 생산한다. 기술의 핵심은 줄기세포 배양이다. 건강한 소의 배아줄기세포와 성체줄기세포를 떼어내 키우는 것이다. 배아줄기세포는 대부분 순수한 단백질 덩어리로, 성체줄기세포는 근육으로 자란다. 두 가지 줄기세포를 적절하게 섞어서 키우면 근육과 살코기가 조화를 이룬 소고기가 배양접시에서 자라난다.

이 연구는 2009년 자금조달 문제로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인터넷기업 구글 공동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이 투자하면서 빠른 속도로 상용화에 가까워지고 있다. 2013년에는 실험실에서 배양한 고기로 햄버거를 만들어 시식 행사를 갖기도 했다. 첫 '실험실 햄버거'를 만들기 위해 투자된 비용은 25만달러. 단연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햄버거였다. 포스트 교수는 "배양 기술의 발달로 현재 햄버거 패티 하나를 키우는데 수백달러면 충분하고, 가격은 더욱 떨어질 것"이라며 "5년 내에 실험실 소고기를 수퍼마켓에서 파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모사미트의 가장 큰 고민은 자연스러운 육질(肉質)을 구현하는 것이다. 실제 소고기는 지방과 단백질, 힘줄 등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하지만 현재의 실험실 소고기는 사람이 일일이 구성 성분을 조절해줘야 한다. 식감(食感)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수많은 조각으로 자라난 줄기세포 덩어리는 아직 씹는 느낌이 실제 소고기와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방귀와 트림으로 온난화 유발

포스트 교수는 실험실 소고기를 개발하는 이유를 "기아 문제와 지구 오염을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소가 가축이 된 것은 1만년 전 신석기 시대이다. 현재 터키 남부와 이라크 북부에 걸쳐 있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야생의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인류 문명과 소는 항상 함께였던 것이다. 하지만 불과 100여 년 사이에 모든 것이 변했다. 대량 사육이 시작되면서 소는 지구의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오염시키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14억9000만 마리의 소가 사육되고 있다.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는 하루 평균 30리터(L) 이상의 물을 먹는다. 젖소 한 마리가 매일 욕조 하나씩의 물을 먹어 치우는 것이다. 특히 덩치가 큰 소는 돼지와 닭을 사육하는 것보다 28배의 땅과 11배의 물이 더 필요하다. 식물과 비교하면 소 사육의 비효율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같은 양의 열량을 얻기 위해 소는 감자·밀·쌀보다 160배나 더 많은 농경지가 필요하다. 전 세계 농경지의 70%는 가축의 사료를 키우는데 사용된다.

소가 살았던 곳은 황폐해진다. 소의 배설물 때문이다. 원래 소의 배설물은 질소 함량이 높기 때문에 좋은 퇴비가 된다. 하지만 대규모 사육장에서 배출되는 엄청난 양의 배설물은 악취를 내뿜는 쓰레기일 뿐이다. 배설물이 흘러들어가면 강과 바다도 오염된다. 소는 방귀와 트림으로 엄청난 양의 메탄가스를 내뿜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이기도 하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23배나 강력한 온실가스 효과를 갖고 있다. 소는 지구 전체 온실가스의 18%를 배출한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소를 키우지 않는 것이지만 소가 가져오는 혜택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포스트 교수는 "실험실 소고기가 상용화되면 대량사육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면서, 소를 키우거나 살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높은 열량을 가진 소고기를 공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량 생산되는 소는 전염병에 취약하기 때문에 항생제를 맞는다. 성장 촉진을 위해 스테로이드 제제도 투여한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소의 70%가 항생제가 섞인 사료를 먹고, 99%가 스테로이드 제제를 맞는다. 소고기를 먹는 사람에게도 이로울 리 없다. 하지만 실험실 소고기는 전염병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인공적으로 만들었다는 거부감만 없다면, 가장 깨끗한 방식으로 키워진 식량인 셈이다.

2011년 미국 스탠퍼드대의 생화학자 패트릭 브라운이 창업한 ‘임파서블 푸드’는 소고기를 만드는 대신, 소고기의 ‘맛’을 만든다. 임파서블 푸드는 시금치와 같은 식물성 재료에 소고기의 ‘피’와 같은 독특한 금속성 맛을 가진 진홍색의 ‘헴(heme)’ 분자가 풍부한 액체를 넣었다. 이들의 식물성 고기를 활용한 치즈버거는 시식자들이 진짜와 잘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아직은 치즈버거 수준이지만 임파서블 푸드는 지난 4년 동안 1억달러가 넘는 투자를 확보했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빌 게이츠와 아시아 최대 부호인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도 투자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죽·우유·콜라겐도 실험실에서

인분(人糞)을 이용해서 인조 소고기를 만드는 시도도 있다. 일본 오카야마 연구소는 인분에서 6단계의 화학적 공정을 거쳐 분리한 박테리아의 단백질에 콩과 스테이크 소스를 넣어서 만든 인조 소고기를 개발했다. 단백질이 60% 이상 포함된 고단백 인조 소고기는 맛과 색깔은 물론 영양학적으로도 진짜 소고기와 비슷하다. 아직은 생산비가 지나치게 높은 것이 흠이다.

고기만 있다고 소가 필요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소의 다른 산물을 대체하려는 과학자들도 있다. 생명공학자인 라이언 판디아와 페르만 간디가 세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벤처 ‘무프리(Muufri)’는 우유를 실험실에서 만들고 있다. 이들은 우유의 구조가 간단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우유의 대부분은 물이고 20여 가지의 성분이 미량 섞여 있다. 무프리는 효모를 이용해서 우유를 생산한다. 젖소의 유전자(DNA)를 효모 세포 속에 주입하면 효모가 우유의 주요 성분인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칼슘, 칼륨 등을 섞으면 진짜 우유 성분과 비슷해지고, 질감도 유사해진다. 지방을 적절하게 활용하면 치즈나 버터도 만들 수 있다. 무프리 측은 “두유와 같은 현재의 우유 대체품보다 훨씬 더 실제 우유와 흡사하다”면서 “동물성이 아니기 때문에 콜레스테롤이 없고 성분 조절도 가능한 만큼 우유에 소화 장애가 있는 사람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송아지 가죽과 소가죽은 옷과 가방, 신발 등의 최고급 소재이다. 미국 브루클린에 위치한 벤처기업 ‘모던 미도’는 최근 4000만달러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모던 미도는 3차원(3D) 프린터를 이용해 소의 고기와 가죽을 찍어낸다. 잉크 대신 줄기세포와 생체 물질들을 넣어 원하는 모양과 질감, 색상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 생체물질을 소재로 원하는 가죽을 출력하는 것이다. 소뿐 아니라 동물에서 얻는 가죽은 모두 동물 학대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모던 미도의 가죽은 살아 있는 동물이 필요 없는 만큼 이런 논란에서 자유롭다. 모던 미도 공동 창업자인 안드라스 포르가스는 “현재의 가죽은 소에서 벗긴 뒤 건조와 염색, 무두질 등에 상당한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면서 “우리는 처음부터 간단한 공정만 거치면 곧바로 제품 생산에 사용할 수 있는 상태의 가죽을 생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포르가스는 3D프린터를 이용해 생체조직으로 만들어진 인공 장기(臟器)를 찍어내는 벤처기업도 운영하고 있다.

소의 콜라겐은 사람의 콜라겐 조직과 유사하다. 이 때문에 화장품이나 의료용 소재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소의 콜라겐으로 만든 마스크를 화상 등 사고로 손상된 상처 부위에 씌우면 조직 재생과 혈액 응고를 돕는다. 필러와 같은 성형 기기에도 소 콜라겐이 사용된다. 하지만 소 콜라겐은 종교적 이유로 쓸 수 없는 국가가 있고, 일부 사람에서는 면역 거부 반응이 나타나기도 한다. 미국 라이스대 연구자들은 소의 콜라겐과 비슷하면서도 거부 반응이 전혀 없는 합성 콜라겐을 만들었다. 실험 결과 합성 콜라겐은 뛰어난 혈액 응고 효과를 나타냈고, 상처 치료를 가속화했다.

◇당뇨병, 관절염 환자에게도 희망

당뇨병 환자들은 혈당을 스스로 조절하기 힘들기 때문에 인슐린을 정기적으로 맞아야 한다. 1980년까지는 소의 췌장에서 얻은 인슐린을 당뇨 환자에게 사용했다. 하지만 미생물에 인간 유전자를 넣어 인슐린 양산(量産)에 성공하면서 합성 인슐린 시대가 열렸다. 최근에는 다시 소의 췌장에 주목하는 과학자들이 많다. 미생물을 이용한 합성 인슐린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부작용이 간혹 발생한다. MIT 연구팀은 소의 인슐린과 비슷한 성분으로 새로운 형태의 인슐린을 만들고 있다. 혈액 속에서 머무르다가, 혈당이 높아졌을 때만 활성화되는 방식이다.

과학자들의 실험실 푸줏간은 소를 대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에 불가능했던 새로운 영역도 개척하고 있다. 스웨덴 우메아대 연구팀은 소의 무릎에서 추출한 세포로 관절 치료에 도전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초기 단계이다. 관절과 관절 사이에 있는 연골은 부드럽고 탄력이 좋으며 내구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연골 세포는 다른 세포에 비해 성장이 느리다. 관절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키우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연구팀은 먼저 소의 연골에 대한 배양법을 개발해 치료에 쓰고, 최종적으로는 사람 연골세포의 고속 배양을 시도할 계획이다. 관절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아예 새로운 연골을 선물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소는 누가 키우지’라는 질문의 답은 ‘농부’였다. 하지만 앞으로 열릴 세상에서 ‘소는 과학자들이 키운다’고 답해야 할지 모른다. 언젠가 도축장은 역사책에나 나오고, 소는 동물원에 가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애완동물이 아니라면 소를 키울 필요가 없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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