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10억짜리 오디오 만드는 그의 가방엔.. 낡은 LP 수십장

김수경 기자 2016. 7. 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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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 어쿠스틱스' 후버 회장 LP 사운드에 최적화된 기기 빌리 조엘, 롤링 스톤스.. 세계적 아티스트들이 애용, 창사후 줄곧 LP로 소리 튜닝 "비싼 가격 아니다" "주문후 구입까지 11개월, 부품 하나하나 모두 수작업.. 제작 과정 알면 가격 합리적"

가수 빌리 조엘, 셀린 디옹, 레이 찰스, 퀸, 롤링 스톤스, 첼리스트 요요마, 비틀스의 프로듀서 조지 마틴이 공통으로 애용했던 오디오 회사가 있다. 1973년 생긴 이 회사는 CD가 전성기를 누리던 1990년대에도 그랬고 지금도 LP 레코드에 최적화된 오디오만 만든다. 부품을 고르는 단계부터 사람 손을 쓰고 앰프와 스피커를 사려면 주문 후 11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그럼에도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앞다투어 찾는 이 오디오는 스위스 오디오 'FM 어쿠스틱스'다. FM 어쿠스틱스를 만든 마누엘 후버(64) 회장이 서울 청담동 전용 전시실이 생긴 것을 기념해 우리나라를 찾았다.

콘서트의 감동 표현하고파

지난 15일 만난 그는 스위스에서 가지고 왔다는 정사각형 모양의 LP 가방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의 가방 안에는 여러 음악가의 LP 40여장이 들어 있었다. 그가 가방을 뒤적이더니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라벨의 오페라 '스페인의 시간'을 꺼냈다. 턴테이블 위에 반짝거리는 LP를 올려놓고 그는 "잘 들어보세요. 바이올린이 어디 있는지, 첼로와 오보에가 어디 있는지 귀로 알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첫 곡이 시작되자 그는 눈을 감았다.

―LP 앨범을 항상 들고 다닙니까.

"물론이죠. 무겁지만 어떨 때는 100장 넘게 가방에 넣고 비행기를 탑니다. LP로 들었을 때 음악으로부터 받는 감동과 울림이 아주 크거든요. 눈보다 1000배 더 민감한 게 바로 귀예요. 5년 전에 스위스 시골에 있는 농부들을 상대로 실험을 했습니다. 한 번도 하이파이 오디오로 음악을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바이올린과 첼로 연주자를 데리고 가서 라이브로 연주한 뒤에 같은 음악을 우리 오디오로 들려줬습니다. 처음에는 어떤 것이 라이브인지 전혀 구분 못하더니 불과 3시간 만에 실제 연주와 녹음된 음악을 구분해 냈어요. 귀가 그만큼 묘한 신체 기관입니다."

―음악가 집안이라고 들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성악가였고 아버지는 피아니스트여서 어릴 적부터 일주일에 3~4번은 콘서트에 다녔어요. 일곱 살 때부터 나도 모르게 음악 교육을 받았던 거지요. 아버지가 저에게 피아노를 가르치셨지만 저는 소질이 없었어요. 하지만 듣는 건 좋아했어요. 오케스트라 공연마다 쫓아다니곤 했으니까요. FM 어쿠스틱스의 목표는 단순해요. 그때 제가 콘서트 홀에서 느꼈던 오케스트라의 전율을 그대로 표현하려는 것 뿐이에요."

"만드는 과정 알면 비싸다고 못할 것"

FM 어쿠스틱스 제품은 하이파이 오디오 중에서도 고가다. 가장 비싼 모델의 스피커와 각 스피커에 물리는 파워앰프 두 개를 사면 10억원이 넘는다. 주문하기도 까다롭다. 구매자가 이런저런 조합으로 세트를 사고 싶다고 해도 후버가 보기에 조합이 맞지 않으면 팔지 않는다. FM 어쿠스틱스를 수입·판매하는 '오디오갤러리' 나상준 대표는 "후버 회장이 보기에 앰프와 스피커 궁합이 맞지 않으면 구매자를 설득하든지 팔지 말라는 답이 온다"고 했다.

―가격이 너무 비싼 것 아닌가요?

"우리가 제품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면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공장에서 부품을 가지고 온 뒤부터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크기가 각기 다른 디스크가 5개씩 들어가는 스피커를 한 쌍 만든다고 칩시다. 공장에서 부품을 가지고 왔어도 양쪽에 정확히 같은 음을 내는 부품을 찾아야 해요. 하나를 조립하고서 양쪽이 일치하는지를 부품 하나를 조립할 때마다 귀로 확인하는 거죠. 그런 노력을 모두 감안했을 때 우리는 매우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한 거예요."

―깎아주지도 않는다면서요?

"스타벅스에서 커피 살 때에 할인해달라고 하나요? 아뇨, 아무도 깎아달라고 안 해요. 그런데 왜 오디오는 할인해달라는 사람이 많은 걸까요? 오디오를 파는 게 아니라 '할인'을 팔기 때문에 그래요. 요즘 하이파이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죠. 품질이 떨어지는 오디오에 가격을 엄청나게 뻥튀기해 놓고 30%, 40% 할인이라고 광고해요. 사람들은 오디오 품질이 어떤지 상관없이, 비싼 오디오를 할인해준다고 하니까 할인율이 높은 제품을 덥석 사요. 화나는 일이죠."

자신이 만든 오디오가 세계 최고라는 그의 자부심에 걸맞게 FM 어쿠스틱스 오디오를 쓰는 사람들도 세계 최정상의 음악가들이다.

―기억에 남는 고객이 있나요?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미켈란젤리(1920~1995)가 우리 제품을 주문했을 때였어요. 공연 때마다 자신의 피아노를 두 대씩 싣고 다니는 걸로 유명한 완벽주의자였죠. 개인적으로 팬이라 만드는 대로 서둘러 배송해주겠다고 연락을 했더니 직접 가지러 오겠다는 거예요. 까만 리무진을 타고 왔는데 양손에 흰 장갑을 끼고는 제품을 직접 봐야겠다고 하더라고요. 상자에서 꺼내서 상태를 한참 동안 확인하더니 벨벳 천에 싸서 차에 싣고 가져갔어요. 엄청난 완벽주의자였던 거죠."

인터뷰가 끝날 때쯤 그는 또 다른 곡을 들려주고 싶다며 붙잡았다. 클래식과 팝 음악을 1시간 넘게 들은 뒤였다. 그가 아쉬운 눈빛으로 LP 한 장을 꺼냈다. 스페인의 기타 황제라 불리는 파코 데 루치아(1947~2014)의 앨범이었다. "이 앨범은 정말 꼭 들어봐야 해요, 기타 소리가 끝내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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