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사람이 무서워요" 은둔하는 어른들

박주연 기자 2016. 7. 1.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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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세상에 상처받고 숨은 이들, 사회는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사회공포증 때문에 수개월간 집 밖에 나서지 못했던 웹툰작가 리을씨가 은둔형 외톨이 이미지를 그림으로 그려 보내왔다. 리을씨는 고교 졸업 후 생산직에 취직했다가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다. 이후 사람과 세상이 무서워 자살 시도를 하기도 했다. 현재는 상태가 나아져 여성 전문 웹툰 플랫폼 ‘봄툰’에 자전적 이야기인 ‘그래도 괜찮을까’를 연재 중이다. 웹툰작가 리을씨

두 자매 중 첫째인 윤미숙씨(37·가명)는 어린 시절부터 말이 없었다. 귀가하는 아버지의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방 안 깊숙이 몸을 숨겼다. 아버지에 대한 공포감이 컸던 탓이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살갑지 않았다. 늘 화난 얼굴로 “시끄러우니 조용히 하라”거나 “공부하라”며 호통만 쳤다. 하는 행동마다 “잘못됐다”고 꾸중을 했다. 아버지의 고압적 기세에 눌린 어머니도 어린 자매를 감싸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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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는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전교 10등 안에 들 만큼 공부를 잘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적응을 못하고 겉돌기 시작했다. 고2 때 결국 자퇴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을 트집 삼아 친구들과의 관계를 모두 끊었다. 검정고시를 본 후 3수 끝에 서울의 중상위권 4년제 대학에 진학했지만 얼마 안 가 대학도 자퇴했다. 이유를 묻는 부모에게 윤씨는 “사람이 무섭다”고 했다. 그리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말수는 더욱 줄었다. 컴퓨터를 보거나 잠만 잤다. 밥도 제때 안 먹고 잘 씻지도 않았다. 155㎝의 키에 체중이 68㎏까지 불었다. 부모가 야단을 치거나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방에만 틀어박혀 있던 윤미숙씨는 2년쯤 지난 후 갑자기 어머니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내가 잘못된 것은 다 엄마아빠 탓”이라며 주먹을 휘둘렀다. 말문이 트인 것처럼 그동안 쌓인 불만을 쏟아냈다. 거의 5년 동안 날마다 같은 행동을 되풀이했다. 어머니 채경자씨(64·가명)는 딸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미안하다”며 울면서 날아오는 주먹을 고스란히 맞았다. 윤씨는 보상해달라며 많은 용돈을 요구했고 부모는 이를 군말 없이 들어줬다. 서울에 방을 얻어주면 일자리를 알아보겠다고 해서 얻어준 적도 있었다. 4개월 후 딸을 찾아간 부모는 경악했다. 윤씨는 집 안을 쓰레기더미로 만들어놓은 채 은둔하면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결국 윤씨는 부모 손에 이끌려 다시 고향인 전주로 내려왔다. 지금은 그나마 상태가 좋아져 어머니를 따라 동네 마트도 다니지만 사람에 대한 공포감은 여전하다. 집에 친척이라도 찾아오면 방 안에 숨는다. 윤씨 어머니는 “나중에 딸이 은둔형 외톨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남편과 함께 전문 심리치료사를 만나고 같은 고통을 겪는 부모 모임에 나가면서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박형준씨(32·가명)는 가난한 집에서 내성적인 소년으로 성장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전단을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충격적인 일을 당했다. 갑자기 거구의 남성이 나타나 그를 집 안으로 끌고가선 닥치는 대로 폭행했다. 도망가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코뼈가 주저앉을 만큼 부상이 심했다. 누군가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간신히 살아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해자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심한 학대를 당한 조현병 환자였다.

박씨의 삶은 늘 고독했다. 고교 졸업 후엔 친구조차 없었다. 키우고 있는 고양이가 유일한 벗이다. 2년제 대학 호텔조리학과에 입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3D 애니메이션 프로그램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 생산직 노동자로 힘들게 일해 번 돈을 학원비로 지불했다가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일하고 싶은 곳에선 그를 받아주지 않았고, 일할 수 있는 곳은 견디기 힘든 곳뿐이었다. 한 직장에서 1년 이상을 버티지 못했다. 그는 자주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1년여를 집에 칩거하다가 우연히 TV에서 ‘자살예방’ 공익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진짜 마지막 통화를 하면 죽을 수 있을까’ 궁금했다. 이튿날 자살예방센터 사람들이 찾아왔다. 박씨는 그들의 도움으로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은둔형 외톨이’ 양산하기 좋은 환경

‘성인 은둔형 외톨이’가 한국 사회에 새로운 불안요소로 작동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는 집에 틀어박혀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는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 보통 6개월 이상 사회적 접촉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 가운데 일부는 혼자 편의점이나 영화관 등에 가는 등 활동적 은둔형도 있다. 정부 차원의 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어 정확한 규모나 실태는 알 수 없다.

전문가들은 국내에 최소 수십만명의 은둔형 외톨이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각에선 은둔형 외톨이가 69만6000명(2010년 일본 내각부 조사·은둔형 외톨이의 63%는 35세 이상)에 달하는 일본 못지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한다. 이들은 그 근거를 사회구조에서 찾는다. 핵가족화와 도시화로 인한 친척·이웃과의 단절, 가파르게 증가하는 이혼율 등 가족해체, 1인가구 증가, 경쟁 위주의 사회 분위기, 집단 따돌림과 학교폭력, 고용불안, 스마트폰 중독, 무너지는 인간관계 등 한국 사회가 은둔형 외톨이를 양산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분석이다.

취업이 안되는 기간이 장기화하면서 친구들과의 관계를 끊고 집 안에 은둔하는 청년의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탈학교 청소년들의 사회성 회복을 돕는 사회적기업 ‘유자살롱(유유자적살롱)’ 대표였던 이충한 하자센터 기획부장은 “명문대생 중에도 취업이 안돼 졸업을 유예하거나 휴학했다가 그 기간이 길어지면서 스스로를 고립상태로 만든 채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이 상태가 장기화하면 사회 복귀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 않으면서 경제활동도 하지 않는 ‘비구직 니트’ 청년(15~34세)이 국내에 100만명을 훌쩍 넘었다는 연구 결과가 2011년 나왔다. 이 중 일부가 은둔형 외톨이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은둔형 외톨이는 ‘병명’이 아니라 ‘상태’다.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계기는 성적 저하, 진학이나 취업 실패, 친구의 배신, 실연, 왕따, 외모 콤플렉스 등 다양하다. 일본의 은둔형 외톨이 전문가인 의학박사 이소베 우시오는 “본인이나 가족도 계기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부분은 인간관계의 좌절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스타벅스로 간 은둔형 외톨이>). ‘은둔형 외톨이 부모 모임’을 이끌고 있는 박대령 이아당 심리상담센터장도 “인간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한 사회공포증에서 시작된 은둔형 외톨이가 많다”고 말했다. 기대치가 너무 높거나 낮은(학대 포함) 부모와의 관계가 영향을 끼친 사례도 적지 않다. 이들의 대다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감을 상실하고 대인 과민, 자기비하, 피해망상에 빠진다. 현실과 심하게 유리된 자아와 이상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이슬람국가(IS)’에 가담했다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김모군의 경우도 “학교폭력 후유증 등이 겹치며 은둔형 외톨이로 생활했다”고 당국에서 밝힌 바 있다.

■덩달아 망가지는 부모의 삶

일본에선 은둔형 외톨이의 범주에 정신장애가 원인인 경우는 제외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을 앓으면서 은둔하는 이들까지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은둔이 길어지면서 여러 가지 정신질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손지훈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조현병, 우울증, 공황장애 등 질환이 은둔형 외톨이와 많이 겹친다”고 말했다.

은둔형 외톨이들은 자신의 좌절과 분노를 폭력으로 분출하기도 한다. 상당수가 가정 내 폭력이고 분노의 표적은 주로 어머니다. 자살하거나 집 밖으로 나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2012년 3년간 집에 틀어박혀 살던 윤모씨(당시 27세)는 이유 없이 슈퍼마켓 여주인을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혔다. 하지만 ‘은둔형 외톨이=범죄 예비군’이란 시각은 잘못된 것이고 오해라는 게 한·일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일본의 은둔형 외톨이 권위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사이토 다마키는 “임상 결과 은둔형 외톨이와 범죄의 연관성은 매우 예외적”이라고 단언했다.

은둔형 외톨이는 부모의 삶도 망가뜨린다. 나이든 자식의 경제적 뒷받침을 해야 하는 늙은 부모는 허리가 휜다. 심리적 고통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세상을 뜬 후에 대한 걱정이 크다. ‘은둔형 외톨이 부모 모임’ 회장으로 40대의 은둔형 외톨이 아들을 둔 오미숙씨(72·가명)는 “우리 부부가 죽고 나서 이 아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하면 암담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들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내 탓”이라며 “똑똑한 형제들 사이에 끼어 학업 스트레스가 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다수 부모는 체면 때문에 은둔하는 자식의 상태를 외부에 알리지 않고 숨긴다.

더 큰 문제는 사회적 비용의 증가다. 은둔형 외톨이가 개인 또는 한 가정의 문제로 치부돼선 안되는 이유다. 니트·은둔형 외톨이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한국과 일본의 청년을 돕는 사회적기업 ‘K2인터내셔널 코리아’ 고모리 모토무 대표가 들려준 얘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25세부터 일본의 정년퇴직 나이인 65세까지 경제활동을 하며 세금을 내는 사람과 같은 시기 은둔형 외톨이로 세금을 내지 않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산 사람 간 갭(차이)이 1억5000만엔(약 16억8000만원)이라는 일본의 연구 결과가 있다. 이런 사람이 70만명이면 천문학적 사회적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둔 기간이 길수록 사회성 회복도 어려워 조기 발견과 치유가 필요하다. 고모리는 “10년간 은둔형 외톨이로 산 사람은 치유에 1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가정에 은둔형 외톨이가 있을 때 체면 때문에 쉬쉬하면 문제를 키우게 된다”고 말했다.

■건강한 공동체 조성해 함께 풀어가야

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한 일본 후생성은 2007년부터 3년간에 걸쳐 정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은둔형 외톨이를 지원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현재 일본에서는 일본재단 등 다양한 공익법인과 시민단체가 은둔형 외톨이의 사회 복귀를 돕고, 정부와 지자체가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여기엔 은둔형 외톨이와 니트족의 직업 자립을 촉진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전국 160개소에 설치해 민간위탁 운영 중인 ‘지역 청년서포트스테이션(support-station)’도 포함된다. 고모리는 “교육(대안학교)은 물론 고용과 복지(병원) 지원 체계를 구축했고, 더 나아가 마을 단위에서 은둔형 외톨이의 사회 복귀와 자립을 도울 수 있도록 지역 마을 만들기와 연계한 정책도 강화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은 실태 파악이 안된 만큼 대책도 전무하다. 지난해 5월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됨에 따라 ‘학교밖 청소년지원센터’가 전국에 확대 설치됐지만 은둔형 외톨이의 사회 복귀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충한 부장은 “은둔형 아이들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 탓에 나서지 못하는 데다 이들을 발견하더라도 집중적 돌봄이 필요해 재정이나 인력이 일반의 5~10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2009년 문을 연 유자살롱이 지난해 12월 결국 문을 닫은 것도 사회적 인식 부족에 따른 재정 문제였다”고 말했다. 2013년부터 유자살롱에 대한 정부 지원금이 절반으로 줄면서 버티지 못한 것이다.

성인 은둔형 외톨이 대책은 더욱 암담하다. 알코올중독이나 정신질환자를 위한 재활센터가 있을 뿐이다. 박대령 센터장은 “병원이나 상담센터와 같은 기존 치료기관으로는 이들을 돌보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이들이 좋은 인간관계 경험과 사회 복귀 훈련을 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은둔형 외톨이들이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스스로 활동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문화센터와 대안학교, 직업훈련센터 등 다양한 연계 사업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 이런 요소들이 개별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마을 단위에서 치유 전문가, 가족, 당사자, 이웃들이 함께 배우고 나누면서 건강한 공동체 환경을 조성하는 게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박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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