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공연리뷰> 박영민의 바그너..'성공한 모험'

입력 2016.07.01. 14:42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부천필 '탄호이저' 오페라 콘체르탄테 공연
부천필 오페라콘체르탄테 '탄호이저' 공연 장면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공=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세 시간 반의 장정이 끝나자 청중은 환호와 기립박수로 연주자들의 노고에 답했다. 30일 밤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그너의 향연' 시리즈 두 번째 '탄호이저' 오페라 콘체르탄테 공연이 끝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감탄과 열기로 가득했다.

누구에게나 시작은 어렵다. 특히 바그너 연주의 시작은 그렇다. 작년부터 부천필을 이끄는 박영민 상임지휘자는 말러에 이어 바그너에 도전했다. 국제적 명성을 지닌 바그너 주역 가수들이 참여하지 않아 '모험'이라는 우려의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성공이었다. 부천필의 연주는 세심하면서도 탄탄했고, 30대가 대부분인 젊은 성악가들은 '바그너 전문 가수'라는 뚜렷한 타이틀 없이도 청중을 매혹했다.

바그너 오페라와 악극 중 가장 감상하기 쉬운 작품으로 알려진 '탄호이저'지만 성악적으로는 쉽지 않은 도전작이다.

젊은 바그너가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 시대의 끝 자락에 작곡한 작품이어서 고음역의 음이 연속되는 이 오페라 타이틀 롤은 바그너 헬덴테너들조차도 기피하는 힘겨운 배역.

더구나 '나쁜 남자' 캐릭터인 탄호이저 역은 관객의 공감이나 연민도 거의 얻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젊고 패기 넘치는 신인에게 이 역을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부천필의 공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른을 갓 넘긴 베르디 국제콩쿠르 2위 수상자 이범주는 기대 이상의 선전을 보여주었다.

탄호이저는 베누스 여신과의 길고 긴 대결 장면의 연속 고음으로 1막에서 벌써 목소리가 피로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범주는 3막까지 페이스 조절을 잘해 '로마 순례의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도 맑은 음색과 소리의 탄력을 잃지 않았다.

아쉬움이 있다면, 독일어의 어두운 모음들을 이탈리아어 식의 밝은 모음으로 소리 내는 부분이 많았다는 점이다.

탄호이저의 연인 엘리자베트 역의 호주 소프라노 케이틀린 파커는 2막에 등장해 '노래의 전당' 아리아를 노래할 때부터 청아한 고음과 풍부한 성량으로 청중을 기쁘게 했다.

특히 죽을 위험에 빠진 탄호이저를 구하기 위해 '멈춰요!(Halt!)'라고 외칠 때 파커의 목소리는 오케스트라를 뚫고 명징하게 울렸으며, 이어지는 탄호이저 변호 장면은 호소력이 넘쳤다. 죽음을 앞두고 '성모 마리아께 올리는 기도'를 노래할 때는 그 간절한 음색이 청중의 마음을 움직였다.

기사 볼프람 역의 바리톤 김성곤은 전형적인 하이바리톤의 깨끗한 음색으로 리트를 노래하듯 정갈하고 정감 있는 가창을 들려주었고, 절도와 기품을 갖춘 배역과 잘 어울리는 연기를 펼쳤다.

이날 청중에게 가장 사랑받은 가수는 베누스 역의 네덜란드 메조소프라노 데어드레 앙게넨트였다. 오케스트라 총주를 거뜬히 넘어서는 음량과 탄탄한 저음, 유연한 레가토에 깊이 있는 표현력까지 모든 덕목을 갖춰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헤르만 영주 역의 베이스 하성헌은 '발퀴레'의 훈딩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선을 보였을 때보다 훨씬 노련하고 자신감 넘치는 바그너 베이스로 돌아왔다. 그의 품위 있는 음색과 표현력은 헤르만 역에 적합했다.

목동역을 맡은 소프라노 이가연은 비록 단역이었지만 천상의 목소리 같은 맑고 깨끗한 고음으로 청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부천시립합창단, 고양시립합창단, 마에스타 오페라 합창단이 연합한 120명이 넘는 대규모 합창단은 일단 음량으로 청중을 압도했다. 전당의 합창에서는 좀 더 섬세한 해석이 아쉬웠지만 순례자의 합창에서는 강약을 적절히 조절하며 악상을 잘 살려 깊은 감동을 주었다.

콘체르탄테 공연에서는 일반 오페라 공연만큼 연출의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탄호이저'의 연출 작업은 청중에게 이 작품의 극적 요소를 좀 더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연출가 이의주는 무대 위의 오케스트라와 성악진의 공간 사이에 탄호이저 이름 철자를 새긴 비석들을 세워 두 영역을 구분하는 재치를 발휘했다.

이 비석들은 가수들이 앉거나 기대며 연기를 자연스럽게 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콘서트홀 구조상 충분한 효과를 내기는 어려웠지만, 조명과 영상도 음악의 분위기에 맞춰 수시로 바뀌며 배경의 이해를 도왔다.

이번 공연에서는 출연진 전체가 가사를 암기해 연기를 곁들여 공연해서 청중의 집중도를 높였고, 청중은 무대 위의 오케스트라를 보며 더욱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다른 어떤 오케스트라보다도 현악 사운드가 유려한 부천필의 장점이 '현의 중노동'으로 불리는 바그너 작품에서 찬란하게 빛났고, 지휘자 박영민의 깊이 있는 해석과 오케스트라 전체의 음악적 응집력이 공연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rosina@chol.com

inishmor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