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보좌진 열흘새 20명 '증발'

2016. 6. 30.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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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6촌 비서관, 동서 보좌관, 조카 비서관…
‘가족 채용’ 파문에 줄줄이 면직 처리
새누리, “친인척 채용 못하게 국회법 고치자”
과거에도 ‘특권 내려놓기’ 선언하고 흐지부지
전문가들 “지속적 감시와 재촉 필요”

“워낙 쉬쉬하는 분위기이긴 해도 적어도 스물대여섯명이 넘는다는 이야기가 돈다.”(한 국회의원 보좌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은 어수선했다. 20대 국회 시작부터 몰아친 의원들의 친인척 보좌진 채용 파문 탓이다. 이날 하루 여야 의원들은 따가운 여론과 당 지도부의 단속 방침 앞에 ‘주변 정리’에 분주했다. “며칠 새 여의도 보좌진 수십명이 증발했다”는 풍문은 사실에 가까웠다.

국회 사무처에는 면직 신청이 줄을 이었다. 강석진 새누리당 의원은 9급 비서로 채용한 동서의 딸을 면직시켰다. 강 의원은 <한겨레> 통화에서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불찰이 컸다”고 말했다. 같은 당 이완영 의원도 6촌 동생(7급 비서)을 면직 처리했다. 이 의원 쪽은 “운전기사로 6촌 동생을 채용했으나 어제 면직 처리했다”고 말했다. 박대출·송석준 의원도 조카를 각각 5급 비서관과 수행비서로 채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 28일에는 옛 동서를 4급 보좌관으로 고용해온 김명연 의원과, 5촌 조카를 보좌관으로 채용하고 있던 한선교 의원도 이들을 면직 처리했다. 새누리당 법률지원단장인 최교일 의원실은 하루 종일 당 소속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실태를 파악했다.

서영교 의원으로 인해 친인척 보좌진 채용 논란을 촉발한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추가 사례가 이어졌다. 추미애 의원은 이날 “시부모님의 양녀로 들어오신 분의 자녀가 9급비서로 있다”고 트위터로 털어놓으며 사과했다. 추 의원은 4년간 일해온 이 시조카를 면직 처리할 예정이다. 안호영 의원은 5급 비서관인 6촌 동생을 면직 처리했다. 안 의원은 “17대 국회부터 (다른 의원들의) 보좌진으로 활동해온 6촌의 경력을 도움 받고자 채용했지만, 크나큰 실망을 안겨드렸다”고 말했다. 사유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서 의원 사태가 시작된 지난 21일부터 이날까지 국회사무처에 접수된 보좌진 면직 신청 건수는 20건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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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인척 보좌진 채용은 정실주의와 폐쇄주의가 강한 한국 정치문화의 산물이라는 지적이 많다. 국회의원은 보좌진을 9명까지 자유롭게 채용할 수 있다. 한 새누리당 초선 의원은 “보통 연고지에서 선거를 시작하는데 집안 친인척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수개월 동안 거의 무보수로 고생했는데 당선 뒤에 외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다른 한 새누리당 보좌관은 “보좌진은 채용에 있어 특별한 자격요건이 없다. 대부분 주변의 평판이나 추천, 정치권 경력을 고려해 채용한다”며 “특히 선거 회계 등 예민한 부분은 믿을 만한 피붙이를 선택하곤 한다”고 말했다. 이런 폐쇄성 탓에 의원들은 친척의 부탁으로 능력에 상관없이 보좌진을 채용하는 경우가 잦다.

여론이 따갑자 여야는 부랴부랴 자체 조사에 나서는 한편 근절 대책들을 내놨다. 더민주는 당무감사위원회를 열어 사태의 시발점이 됐던 서영교 의원에 대한 엄중 징계를 요청하며 최종 결정을 당 윤리심판원에 넘겼다. 당 지도부는 서 의원에게 자진 탈당을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의원은 기자들에게 “당의 (최종) 결정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도 혁신비상대책위원회에서 “의원이 8촌 이내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채용할 수 없도록 하는 국회법을 여야가 함께 개정하고, 의원들이 보좌진에게서 후원금을 받을 수 없도록 정치자금법도 개정하겠다”고 결정했다. 김희옥 비대위원장은 “(친인척 보좌진 채용은) 사안에 따라 해당자를 조사하고 징계를 포함한 제재를 받게 할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새누리당은 회기 중에는 국회 동의 없이는 체포할 수 없도록 하는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자체 조사에서 친인척 편법 채용이 없는 것으로 확인한 국민의당은 “지역위원회 사무실에도 친인척 채용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이 ‘가족 채용’ 등을 없애자며 달려든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친인척 보좌진 채용을 제한하는 법률안이 18대 국회부터 여러차례 발의됐지만 제대로 심사가 이뤄진 적은 한번도 없다. 2010년에는 국회의원의 배우자, 4촌 이내 혈족·인척의 채용을 금지하고, 채용 사실이 드러나면 당사자를 퇴직 조처하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고, 19대 국회가 개원한 직후인 2012년 7월에도 이와 동일한 법안들이 여야에서 각각 발의됐다. 그러나 이 법안들은 국회 운영위원회에 상정만 됐을 뿐 단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한 채 자동폐기됐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국회 차원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청년 취업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공적인 자리를 가족들끼리 나눠 갖는 것은 국민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다만 친인척 중 전문적 능력 등으로 채용이 꼭 필요한 경우에는 국회사무처에 사유를 소명하는 신고제 형식을 검토해볼 수도 있다”고 했다.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은 “(친인척 채용을) 정서적인 측면으로만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 국회 윤리규범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선교 의원이 면직한 보좌관은 13년의 경력이 있고, 안호영 의원 비서관 역시 17대 국회부터 보좌진으로 일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지금은 여야가 분주히 나서고 있지만 스스로 권한을 줄이는 일이라 시간이 지나면 과거처럼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며 “지속적인 감시와 재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는 이날 저녁 만나,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을 완화하는 방안 등을 논의할 국회의장 직속 자문기구를 설치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이 기구에서는 의원 체포동의안이 본회의에 보고된 뒤 72시간이 지나도록 표결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자동폐기되는 현행 제도의 폐지 등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성연철 김남일 하어영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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