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위작 논란 '제2의 미인도 사건'

한윤정 선임기자 2016. 6. 30. 21:2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ㆍ고 천경자는 “가짜다” 이 화백은 “진짜”…감정결과 부인 ‘진·위는 오리무중’
ㆍ“색채나 리듬은 지문과 같다”
ㆍ간담회 열고 진품 주장 되풀이

이우환 화백이 30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위작 판정을 받은 작품은 모두 진품이라고 거듭 밝히며 경찰의 수사 결과를 반박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이우환 화백(80)의 위작 논란이 제2의 ‘미인도’ 사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천경자 화백은 논란이 된 작품이 가짜라고 주장하고, 이 화백은 진짜라고 주장하는 차이가 있을 뿐, 작가가 국가권력을 상대로 싸운다는 점에서는 같다. 이 화백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과 민간 감정기관들의 과학감정을 토대로 한 경찰 수사결과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나서 위작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우환 화백의 작품 ‘점으로부터 No. 780217’.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민간 감정기관들이 위작으로 판정한 13점 중 한 작품이지만, 이 화백은 이 작품 등 13점 모두 “진품”이라고 밝혔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 화백은 30일 오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국가권력이 재야에서 혼자 활동하는 작가를 무참하게 짓밟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작가인데, 내가 내 작품이라고 하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고 하는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느냐”며 “수사가 시작된 이후 3번이나 직접 감정하겠다고 요청했으나 모두 거부당하고, 자격이 불확실한 감정위원들과 국과수에 먼저 감정을 의뢰한 뒤 제가 확인하기도 전에 감정결과를 발표하는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했다”고 경찰을 비난했다.

일본과 프랑스를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는 그는 지난 26일 귀국, 27일과 29일 두 차례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서 위작 판정을 받은 13점의 압수작품을 직접 감정했다. 29일 두번째 감정에서는 “전부 진품”이라고 경찰수사 결과를 뒤집었다.

이 화백은 29일 감정 당시 한 수사관이 ‘위작이라고 발표한 13점 가운데 4점은 위작, 나머지는 진작으로 하자’고 제안했다고 이날 폭로하기도 했다. 4점은 체포된 위조범이 직접 위조했다고 자백한 작품이다. 그러나 경찰은 그의 발언을 즉각 부인하고 그동안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던 위조화가 ㄱ씨(39)를 체포하고, 유통총책이자 주범 격인 ㄴ씨(68)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화백은 경찰이 가짜라고 한 13점이 모두 자기 그림이라는 주장을 이날도 되풀이했다. 그는 “저만의 호흡, 리듬, 색채로 그린 작품”이라며 “호흡이나 리듬은 지문과 같다. 이것은 그 누구도 베낄 수 없다. 제3자는 아무리 잘해도 들쑥날쑥하고 어설플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또 “작가는 작품을 보면 1분도 안돼서 자기 것인지 아닌지 느낌이 온다. 특히 내 그림은 단순해서 내 손을 거치지 않으면 금방 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국제미술과학연구소, 민간 감정위원회,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등 3곳과 국과수의 감정 결과도 전면 부인했다. 경찰은 압수된 작품들이 물감의 원소성분에서 진품과 큰 차이를 드러내고, 캔버스 제작기법 등도 다르게 나타났다고 발표했으나, 이 화백은 “압수된 작품들에 쓰인 물감이 내가 쓰는 물감이 맞다”고 말했다. 또 압수작품은 물감에 유리 가루가 섞여 있으나 그 당시 다른 작품들은 그렇지 않은 점, 오래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캔버스와 나무틀에 덧칠한 흔적 등에 대해서는 “모르겠다”면서도 위작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화백의 진품 주장으로 위작 논란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경찰은 논란이 시작된 2012년 이후 “내가 본 그림 가운데 가짜가 없다”고 주장해온 작가의 입장을 고려해 감정에서 배제시켰으나, 작가가 진품임을 강하게 주장함으로써 곤혹스러운 입장에 빠졌다. “작가 의견은 위작 여부를 가리는 한 요소일 뿐”이라며 “계속 수사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작품 감정에서 작가 본인의 의견을 최우선 고려한다는 원칙과는 배치되는 상황이다.

그동안 언론과의 접촉을 꺼려오던 이 화백은 이날 앞으로는 필요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나서 해명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미 수십년 전에 내 손을 떠난 작품들이어서 나와 상관없지만 내 자식을 자식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며 “앞으로 작업을 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런 일에 연루돼 정말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작품을 작가 본인만 감정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사후에는 전문가들이 감정해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감정의 수준이 너무 낮다”고도 비판했다.

미술계는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홍경한 평론가는 “이 화백이 감정 결과를 부정함으로써 국내에서 객관적 감정이 불가능해졌다. 이제 누가 감정 결과에 승복하겠느냐”고 말했다. 정준모 평론가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 감정에 개입함으로써 학술적인 토론과 의견 개진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 화백 본인의 작품 거래를 비롯해 미술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란 의견도 많다.

<한윤정 선임기자 yjhan@kyunghya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