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만세운동 주도 이신애 선생, '7월 독립운동가'

2016. 6. 3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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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애 선생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조선민족대동단의 여성대표로 제2 만세운동을 이끈 이신애(1891.1~1982.9) 선생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국가보훈처가 30일 밝혔다.

선생은 평안북도 구성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나 부친을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를 따라 원산으로 이주했다. 개성 호수돈여학교에 진학했으나 어려운 가정형편과 건강 악화로 학교를 중퇴했다.

1914년 성경여학교에서 공부한 후 1918년 루씨여학교 두산리 분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 무렵 부흥회에서 손정도 목사의 설교에 깊은 감명을 받아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이듬해 5월부터 혈성부인회에 가담해 상하이 임시정부로 보낼 군자금을 모집했으며, 그해 9월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를 처단하기 위해 서울로 들어온 강우규를 은닉해 주고 군자금을 모집해 의거에 필요한 물품을 지원했다.

같은 해 9월 조선민족대동단에 가입해 부인단 총대에 선출됐다. 당시 대동단은 1919년 10월 조직 본부를 상하이로 옮기기 위해 의친왕 이강을 중국으로 망명시키고자 했다. 아울러 대동단은 상하이 임시정부의 특파원 이종욱 등과 연계해 제2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만세운동을 벌일 계획이었다.

그러나 11월 11일 상해로 향하던 의친왕 일행이 만주 안동역(오늘날 단둥역)에서 체포되면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일제 경찰의 체포망에서 벗어난 선생과 나창헌 등은 만세운동을 다시 추진했다. 독립선언서를 인쇄해 의친왕 이강과 여성대표 이신애 등 3·1 운동 때와 같은 33명의 독립운동가가 서명했다.

1919년 11월 28일 오후 5시께 선생은 동료들과 함께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안국동 경찰관 주재소 앞 광장에서 독립선언서를 뿌리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운동을 벌였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선생은 1920년 3월 1일 서대문형무소 같은 동에 있던 유관순 등과 3·1 운동 1주년을 맞아 옥중에서 만세를 부르다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심한 고문을 당했다.

정부는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선생의 공적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three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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