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지슨 뒤에 숨은 '英 굴욕'의 진짜 범인

이성모 2016. 6. 30.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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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로이 호지슨 감독의 사임을 홈페이지를 통해 알리고 있는 英 FA

[스포츠서울] "잉글랜드 국가 전체와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오늘밤의 패배(아이슬란드전 패배)와 우리의 유로 2016 캠페인이 이렇게 끝났다는 것이 매우 실망스럽다. 우리는 높은 희망을 갖고 대회에 임했으나 우리가 국가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다."(호지슨 감독 사임에 대한 잉글랜드 FA의 성명문 중)

'축구 종가' 잉글랜드가 '인구 33만'의 아이슬란드에 패하며 유로 2016에서 탈락했다는 충격과 그로 인한 온갖 이야기가 영국 언론을 며칠째 장식하고 있다. 호지슨이 잘못한 것일까? 아니면 선수들이 잘못한 것일까? 혹은 이럴 때 쓸 수 있는 가장 흔하면서 애매한 말처럼 '둘 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일까.

그 문제에 대한 하나의 '정답'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호지슨 감독 혹은 선수들 뒤에 숨은 英 축구 '굴욕'의 진범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 델 보스케와 스페인, 호지슨과 잉글랜드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자. 이번 유로 2016 본선 진출국들 중 가장 우승 경력이 많은 감독 중 하나인 델 보스케 감독이 이끄는 스페인이 16강에서 탈락했다. 그것은 누가 봐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실패'다. 그 사실에 다음과 같은 두가지 요인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1. 델 보스케 감독은 최근 메이저 대회에서(국가대표) 우승 경력이 가장 많은 감독 중 하나다.

2. 스페인은 최근에 월드컵 및 유로 우승 경력이 있고, 언제든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팀이다.

그럼, 이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호지슨 감독과 잉글랜드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호지슨 감독이 가장 최근에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것은 무려 15년 전인 2001년으로 그것도 유럽의 '빅5'리그가 아닌 덴마크 리그에서의 우승이었다. 그는 물론 2010년에 풀럼을 이끌고 유로파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며 중하위권 팀을 지도하는 능력을 인정을 받았으나, 그 직후에 리버풀에서 1년도 버티지 못하고 경질당한 바 있다.


잉글랜드라는 팀은 어떤가? 그들이 가장 최근에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한 것은 호지슨 감독보다도 더 먼 일로 50년 전인 1966년의 월드컵 우승이다. 이 두 가지 팩트를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호지슨 감독은 2001년 이후 15년 동안 메이저대회 우승 경력이 없는 감독이다.


2. 잉글랜드는 1966년 이후 50년 동안 메이저대회 우승 기록이 없는 팀이다.


이 대목까지 살펴보면 누구나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할 것이다. 위 1, 2번 조합을 가지고 잉글랜드는 도대체 무엇을 기대했단 말인가? '아주 오랫동안 우승을 못한 감독과 팀이, 이번에도 우승을 못한 것이 대단히 실망스럽다'는 것은 지극히 비논리적인 발상이 아닌가?


영국 언론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지적했던 잉글랜드 선수들의 소위 '거품론'(특히 그들의 '주급'에 관하여)을 생각하면 호지슨 감독과 잉글랜드라는 팀의 조합은 16강이 아니라 조별예선에서 탈락했다고 하더라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는 조합이었다.(이번 결과 이후에 영국 언론에서는 잉글랜드 선수들의 '몸값'을 지적하며 '몸값도 못하는 선수들'이라고 혹평하고 있으나, 애초부터 그들의 몸값이 올라간 것 역시 그들의 '실력' 때문이 아니라 EPL이라는 잉글랜드에서 펼쳐지는 '글로벌리그'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사진=2011년, 리버풀 감독 재임시절 리버풀 에코의 기사. 제목을 해석하면 '제발 나가라(리버풀 죽기 전에)' 정도가 된다.

- 도대체 '누가' 호지슨과 잉글랜드를 조합했는가

그리고 여기에 진짜 중요한 질문이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위 1, 2번의 조합을 완성시킨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정확히 그 '결정권'을 쥐고 결정을 내린자가 누구인가. 혹시 그 주체야말로 호지슨이나 선수들 뒤에 숨은 잉글랜드 '굴육'에 대한 책임자가 아닐까? 그 주인공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잉글랜드 FA다.


잉글랜드 FA가 英 축구 몰락의 '진범'이라는 것을 부연설명하기 위해서는 호지슨 감독의 전임감독이 누구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호지슨 감독 직전에 잉글랜드를 이끌었던 감독은 파비오 카펠로 감독으로 그는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잉글랜드 지휘봉을 잡았던 2008년에는 세계에서 누구에게도 우승 경력이 뒤지지 않는 '명장'이었다. 실제로 그는 잉글랜드 감독에 부임하기 1년 전인 2006/07시즌에 레알 마드리드를 이끌고 리그 우승을 차지했었다.


잉글랜드 FA의 카펠로 감독 선임은 완벽하게 논리적인 선택이었다. 축구에서 팀이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그리스의 유로 2004 우승 등)를 제외하면 다음의 두가지 중 하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1) 평범한 팀도 우승으로 이끌 수 있을 정도로 최고 수준인 감독, 혹은 2) 감독이 누구냐와 관계없을 정도로 뛰어난 팀이 그것이다.


잉글랜드는 현재와 마찬가지로 2008년에도 세계 최고의 팀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월드클래스 감독인 카펠로로 하여금 그들을 이끌게 했던 것은 좋은 선택이다. 그리고 역사가 증명하듯, 잉글랜드는 카펠로 감독의 지휘 아래서도 메이저대회에서 인상적인 결과를 내지 못했다.


중요한 포인트는 또 하나 있다. 호지슨 감독 부임 이후 유로 2016 대회 이전까지 잉글랜드는 이미 유로 2012,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각각 실망스러운 성적을 내며 중도탈락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2014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의 조별리그 탈락은(이탈리아, 우루과이에 2연패 후) 1958년 이후 처음으로 잉글랜드가 본선에서 당한 조별리그 탈락이었다.


그토록 명백한 '징후'(호지슨과 잉글랜드가 통하지 않는다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영국 언론과 팬들이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과연 호지슨이 영국 감독에 적합한 인물인가'에 대한 성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호지슨 감독을 그대로 믿고 가기로 했던 선택의 주체는 다름 아닌 잉글랜드 FA였다. 호지슨 감독은 본인이 2012년에 계약했던 계약기간까지 본인에게 주어진 임무를 했을 뿐이다. 그의 계약기간은 4년, 정확히 2016년까지였다.


- 결과론? 축구는 결과로 말한다

2012년에 호지슨을 감독으로 선택한 잉글랜드 FA가 잉글랜드 굴욕의 주범이다라는 지적에 대해 '결과론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말도 사실이다. 그러나 축구는 본질적으로 결과론적인 스포츠다. 잉글랜드 FA가 호지슨을 감독으로 임명하기 훨씬 전부터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축구종가'를 자부심으로 생각하는 그들이 그걸 모를리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결정권을 쥔 주체인 FA는 '도박'이 아니라 '확신'에 가까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들에게는 '결정권'이라는 권리와 동시에 책임도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초에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 자체(선임하고 난 후가 아니라)가 중요한 것이다.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잉글랜드 FA가 호지슨을 감독에 앉힌 순간부터 잉글랜드는 '15년 전에 마지막으로 우승한 감독이 50년 전에 마지막으로 우승한 팀을 이끄는 팀'이었다. 당시 잉글랜드 FA의 결정은 완전히 비합리적인 선택 혹은 '도박'이었다. 그들의 도박이 성공하는 가능성은 단 한 가지, 완전히 의외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 뿐이었다.

그렇다면, 잉글랜드라는 팀이 과연 기적을 바라고 감독을 선임해도 괜찮은 팀이냐는 질문이 남는다. 물론 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다. 잉글랜드는 자국에 세계 최고의 리그인 EPL을 보유한 국가이자 공공연히 '축구종가'를 주장하고 있는 나라다. 축구의 대한 관심과 열정이 어느 나라보다도 높은 국가이기도 하다. 감독 경질에 대한 위약금을 제시하고 새 감독을 데려올 돈이 부족하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들의 선택은 '기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확신'을 가진 것이어야 했다. 호지슨 직전에 카펠로를 임명했던 때처럼 말이다.

잉글랜드의 유로 2016 16강 탈락은 '인구 33만'의 아이슬란드에 졌다는 사실에 그 충격이 다소 증폭됐을 뿐, 전혀 뜻밖의 결과가 아니다. 잉글랜드의 '굴욕'을 상징하는 거의 모든 언론의 사진에 호지슨 감독이나 루니의 사진이 사용되고 있으나, 그들 뒤에 숨어서 비판을 피하고 있는 '결정권을 행사한' 주체이자 가장 큰 책임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잉글랜드 FA다.

스포츠서울=이성모 객원기자 london2015@sportsseoul.com

사진=잉글랜드 FA, 리버풀 에코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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