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25만원? 우린 20만원".. 단통법 무력화

김강한 기자 2016. 6. 30.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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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판매 전문상가 가보니] 지난 주말 갤럭시S7 14만원까지.. 판매점에 수십명 고객 몰리기도 단통법 시행 후 휴대폰 판매 급감.. 휴대폰 판매점도 1000개 줄어 보조금 상한제 없앤다더니.. 방통위장 "아직 보고 받은 적 없다"
29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테크노마트의 한 휴대전화 매장에 휴대폰을 사려는 고객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이곳의 매장들은 보조금 규제를 지키지 않고 최신 스마트폰을 20만원대의 싼 가격에 팔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얼마까지 보고 오셨어요? 우린 20만6000원에 드립니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 신도림테크노마트의 'R' 판매점에서는 삼성전자 갤럭시S7, LG전자 G5 등 최신폰을 20만원대에 팔고 있었다. 정부의 보조금 상한 규제에 따르면 갤럭시S7·G5 판매 가격이 50만원대이지만 이곳에서는 30만원이나 더 쌌다. 판매점 사이에서는 통신사들이 상반기 실적 마감을 앞두고 마케팅비를 쏟아붓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지난 주말 이곳에선 갤럭시S7 가격이 14만~16만원까지 떨어졌다. 매장마다 스마트폰을 사기 위한 고객 수십 명이 줄을 섰었다. 한 매장 관계자는 "한 달에 200대 정도를 판매하는데 지난 토요일 하루에만 30대를 팔았다"며 "갤럭시S7과 G5는 지금도 번호이동(통신사 변경)을 하면 23만~25만원대에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보조금 규제 지키면 장사 못해"

최근 방송통신위원회가 보조금 상한액 폐지를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휴대폰 판매 현장에서는 보조금을 규제하는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을 사실상 사문화(死文化)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정부 규정대로라면 출시 15개월 이내 휴대폰은 현재 통신사 보조금으로 최대 33만원까지 할인 판매할 수 있다. 여기에 보조금의 최대 15%까지 판매점이 추가 할인을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출고가 83만6000원인 갤럭시S7(32기가바이트 모델)의 경우 통신사 보조금과 추가 할인을 더해 53만2400~54만5050원에 판매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보조금 상한 규제를 지키는 판매점은 없었다. 신도림테크노마트 'W' 휴대폰 판매점에 들러 "옆 매장에서 25만6000원인 갤럭시S7을 현금으로 구매하면 2만~3만원 더 빼준다고 했다"고 하자, 매장 직원은 "우리가 더 싸네요"라며 계산기에 206(20만6000원)이라는 숫자를 눌렀다. 신도림테크노마트에서는 계산기에 숫자를 찍어 흥정한다. 직원은 "옆 매장에서 우리 매장 가격 정보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근 'I' 판매점 점원은 "갤럭시S7과 G5 모두 26만7000원이지만 옆 매장에서 알아본 가격보다 무조건 더 빼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는 보조금 규제를 지키면 장사를 못한다"며 "방통위의 현장 조사를 피해가며 장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폐업하는 휴대폰 판매점 속출

휴대폰 판매점들은 살아남기 위해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상에서도 싼 가격에 스마트폰을 판매하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 '버스폰'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최신폰 구매자를 모집하는 카페 수십 개가 검색된다. 휴대폰 판매점이 운영하는 이들 카페에는 수시로 최신폰 구매자를 모집하는 공지가 올라온다. 지난 주말에도 이들 사이트에서 10만원대에 갤럭시S7·G5를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판매점은 구매자가 어느 정도 모이면 '좌표'를 올린다. '좌표'는 이 사이트에서 이용하는 은어(隱語)로 구매자들과 만날 시간·장소를 말한다. 그후 '버스 떠납니다'라고 알린 뒤 이 공지를 없앤다. 그래서 '버스폰'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구매자들이 미리 공지된 장소(빈 사무실이나 판매점)에 모이면 판매점 직원들은 문을 걸어잠근 뒤 현장에서 현금을 받고 휴대폰 개통 업무를 처리한다. 택배로 휴대폰을 보내 개통하기도 한다. 신도림테크노마트 한 판매점 직원은 "오피스텔을 임차해 운영하는 영세 판매점들이 이 같은 방식으로 폰을 팔아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누구를 위한 단통법이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테크노마트의 한 상인은 "단통법은 휴대폰 판매 시장을 위축시키는 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휴대폰 판매량은 2013년 2095만대에서 단통법이 시행된 2014년 1823만대로 급감했으며 폐업하는 중소 휴대폰 판매점도 늘고 있다. 방통위에 따르면 휴대폰 판매점은 단통법 시행 전 1만2000개에서 지난해 말 1만1000개로 줄었다.

소비자들도 불만이다. 인터넷을 통해 스마트폰 할인 판매 정보를 재빨리 입수한 사람들만 휴대폰을 싸게 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50여만원을 주고 갤럭시S7을 구매한 A(43)씨는 "공식 인증 대리점에서 제값 주고 휴대폰 산 사람들만 바보 만드는 법"이라며 "그럴 바에야 차라리 누구나 보조금 혜택을 더 받을 수 있도록 단통법을 없애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29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보조금 상한제 폐지는 실무진에서 검토를 해왔지만, 아직 이를 보고받은 적이 없다"며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현재로서는 내년 9월까지 보조금 상한제를 유지할 계획"이라고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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