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측정했길래..폭염도시가 경기도 하남과 광주?

이정훈 2016. 6. 2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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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국에서 가장 더웠던 곳은 어딜까, '대프리카'라는 별명까지 붙은 대구? 과거 폭염 도시로 유명했던 밀양? 정답은 지난 21일 나란히 35.2도를 기록한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과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이다.

현재까지 대구 기상관측소의 올해 최고 기온은 지난 18일에 기록된 33.5도에 그치고 있다. 더위로 유명한 영남 지방을 제치고 낯선 수도권의 도시들이 '폭염 도시'가 된 이유는 뭘까?

전국 기온 1위 관측소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취재진은 올해 가장 더웠던 두 도시의 관측 지점을 직접 찾아갔다. 먼저 어제(28일) 최고 기온이 34.5도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던 하남시 춘궁동. 관측 장비는 지상 3층 건물인 하남 노인복지회관 옥상에 설치돼 있었다. 어림잡아 10m 높이, 우리가 숨 쉬는 높이와는 공기가 다를만한 공간이다. 옥상 한복판에선 주변의 밝은 벽에서 반사된 햇볕이 사방에서 내리쬈다.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에 설치된 자동 기상 관측 장비(AWS), 장비 옆으로 환풍구가 위치해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옥상 한편에는 환풍구에서 뜨거운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지하 식당 조리실과 연결된 환풍구였다. 정상적인 기온 관측이 불가능한 환경이다.

"자꾸 이 동네 덥다 그러면 안 되는데"

광주시 퇴촌면의 관측 지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관측 장비는 보건소 건물 옥상에 설치돼 있었다. 관측 장비를 촬영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지역 주민은 "퇴촌이 또 전국 1위 했어요? 자꾸 이 동네 덥다 그러면 안 되는데.."라며 걱정했다. 이날(28일) 퇴촌면의 최고기온은 34.3도로 전국 500여 곳의 관측소 중 3위였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설치된 자동 기상 관측 장비(AWS)



옥상으로 올라가 보니 에어컨 실외기가 관측 기기를 향해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역시 정상적인 기온 관측이 어려운 환경이다.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에 설치된 자동 기상 관측 장비(AWS)



서울 26개 관측 지점 중 거의 매일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하는 서초구 서초동의 자동 관측 장비도 확인해봤다. 서울 교대 과학관 옥상에 설치돼 있었다. 옥상에는 퇴촌면보다 더 많은 에어컨 실외기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관측 장비와의 거리는 5m 남짓에 불과했다.

옥상 위 관측 자료가 도시 기온을 대표?

이러한 관측 장비들은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실시간으로 측정, 전송되는 자동 기상 관측 장비(AWS)이다. 관측 환경도 제멋대로이고, 관측 오류도 자주 발생한다. 하지만 기상청에서 이 자료들을 당일 최고 기온 기록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한다고 밝히면서 언론에서도 지난 21일 하남과 광주를 가장 더운 도시로 보도한 바 있다. 고작 수 십㎡ 정도의 공간을 대표할 수 있는 관측 정보가 한 도시의 기온을 나타내는 자료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실외기는 안 되고 환풍기는 되는 폭염특보 지침

더 큰 문제는 일부 옥상 관측소가 기상 예보나 폭염특보를 발표할 때도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상청은 옥상 관측소 중에서 실외기가 설치된 관측 자료는 특보 기준 지점에서 뺐지만 그 외 지점의 자료는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29일 현재 폭염특보 발효 지역, 하남시 등 경기도 4개 시군에 내려져 있다.



실제 하남시 춘궁동과 광주시 퇴촌면은 어제(28일) 나란히 폭염주의보 기준인 33도를 넘었다. 그런데 하남시에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졌고, 광주시에는 내려지지 않았다. 실외기가 있는 관측 지점은 안 되고, 환풍기가 있는 관측 지점은 되는 이상한 폭염특보 지침 때문이다.



특히 하남시 내에서도 춘궁동과 2km 가량 떨어진 신장동 관측 지점의 최고 기온은 31.2도에 불과했다. 지면 부근의 정상적인 관측 환경에 설치된 관측 지점 기준으로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기상청 "수도권에는 관측 부지 마련하기 어려워"

그럼에도 기상청이 관측소를 옮기지도 않고 특보의 기준 지점으로 삼는 이유는 뭘까?
현실적인 이유는 땅값이 비싸고 주변에 건물 등 장애물이 많은 수도권에서는 관측 장소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에 취재한 결과 수도권에 설치된 178곳의 자동 관측 장비 중 83%에 달하는 곳이 옥상 위에 설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상청은 이 장비들을 지면 부근의 표준 관측 환경에 맞게 설치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기상청은 관측 지점 간의 기온 편차를 고려한 지역별 상세 예보를 통해 특보를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옥상 관측 자료, 최고 기온 기록으로 적합할까

자동 기상 관측 장비(AWS) 기록을 최고 기온 자료로 사용할 지 여부도 논의가 필요하다. 자동 관측 장비의 최고 기온 기록이 문제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2년 7월, 경북 경산의 한 자동 기상 관측 장비에서 40도가 넘는 기온이 관측됐다. 역시 옥상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가 문제였다.

당시 이에 대한 비판이 일자 기상청은 뒤늦게 관측 장소에 문제가 있는 장비들을 적합한 장소로 옮기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취재 결과 현재까지도 전국의 수많은 자동 관측 장비들이 부적합한 환경에 놓여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관측소 위치 탓에 또 다른 도시가 '폭염 도시'란 오명을 얻지 않으려면 자료 사용 범위에 대한 기상청의 재검토가 요구된다.

이정훈기자 (skyclea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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