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은 어떻게 생존율 1위 '자영업'이 되었나

입력 2016. 6. 28. 21:26 수정 2016. 6. 2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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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국공립 6% 뿐… 민간 어린이집이 대부분
정부 ‘무상보육’하면서 질 관리에 손놔
학부모 “믿고 맡길 데가 없다” 발동동
보육 질 저하, 보육갈등 반복 불러
보육 공공성 확대로 정책방향 바꿔야

서울시 산하 서울신용보증재단의 ‘2014년 서울 자영업자 업종지도’를 보면, 업종별 생존율이 나온다. 이 자료를 보면 2010년에 창업해 2년 뒤인 2012년까지 생존한 비중이 가장 높은 업종은 ‘보육시설’이었다. 보육시설의 생존율은 95.7%, 43개 업종 평균은 63.3%였다. 다른 업종과 달리 정부 보육료 지원으로 운영되는 탓이다. 민간·가정 어린이집의 28.5%(조사 대상 2623곳 기준)가 개설할 때 평균 5600만원의 권리금을 지급했다는 조사 결과(2015년 보육실태 조사)도 나와 있다. 어린이집 아이들의 머릿수에 따라 권리금은 높아졌다.

무상보육이 전면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어린이집은 엄연히 ‘복지시설’의 하나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하지만 국내 보육 현실에서 어린이집은 ‘생존율이 그나마 높은 자영업’으로 여겨지고 있다. 정부가 보육을 민간에 의존하면서도 제대로 된 보육료 지원과 철저한 관리감독으로 보육의 질을 높이는데는 손을 놓은 탓이다.

■ 아무도 만족 못하는 보육현실 정부가 7월1일부터 ‘맞춤형 보육’(홑벌이 자녀의 어린이집 이용을 하루 12시간에서 6시간으로 제한) 시행을 예고하면서 어린이집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용시간이 제한되는 맞춤반에 대한 보육료 지원이 삭감되면 어린이집 수입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보육료 지원 문제와 관련한 정부와 어린이집 간의 갈등은 거의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정부가 올해만 10조5천억원의 보육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어린이집들은 늘 경영난을 호소한다. 학부모들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 정책 변경과 무관하게, 믿고 맡길 만한 보육시설 자체가 부족하다는 불만을 이구동성으로 쏟아낸다.

38개월 된 딸을 둔 맞벌이 직장인 ㅊ씨(40)는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 종일반에 아이를 보내지만,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이용한다. 아이의 등하원은 한달에 100만원을 주고 베이비시터에게 맡긴다. 출근 전 아이를 데려가고 퇴근 후 데려오면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는 “맞춤형 보육이 되더라도 원래 같이 있던 아이들이 더 늦게 하원하는 것이 아니라 별로 달라질 게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름만 ‘종일반’이지 실제 종일반을 제대로 운영하는 어린이집은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지난해 영유아를 둔 엄마 104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전체의 43.5%는 자녀양육의 가장 큰 애로점으로 ‘일할 때 믿고 맡길 보육시설이 없다’고 답했다. 22개월과 2개월 된 두 아이를 키우는 ㅇ씨(33·육아휴직자)는 “첫째를 낳자마자 지원한 국공립 어린이집은 당시 대기번호가 250번이었는데, 아직도 180번”이라며 “석달 전 신청한 민간 어린이집도 대기번호 18번을 받았다”고 말했다. 바로 입소가 가능한 어린이집도 있었지만 아이를 맡긴 지 이틀 만에 더는 보내지 않기로 했다. 그는 “미끄럼틀 위에 안전바도 없고 공간도 협소해서 안전하지 않아 보였다”고 말했다.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어린이집 학대사건이나 안전사고는 부모들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어린이집이 4만곳이 넘는데 부모들은 맡길 데가 없다고 하고, 교사들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린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데 그 누구도 정책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 민간에 의존하며 질 관리에는 손 놔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의 근본 원인이 정부가 보육을 민간 시장에 의존하면서, 어린이집 시설의 수급 조절과 질 관리에는 손을 놓은 데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말 기준 전국 어린이집은 4만2517곳이다. 이 중 국공립 어린이집은 2629곳으로, 6.2%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민간 어린이집’(1만4626곳, 21명 이상 보육)과 ‘가정 어린이집’(2만2074곳, 5~20명 보육)의 비중은 86.3%에 이른다. 정부가 보육정책 초기부터 비용이 많이 드는 국공립을 확충하는 데 공을 들이는 대신 손쉽게 늘릴 수 있는 민간에 맡긴 결과다.

국공립 어린이집 입소 대기자는 25만명(2014년말 기준)이 넘는다. 입소 경쟁률이 100 대 1이 넘는 셈이다. 지역에 따라 길게는 최대 3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학부모들이 국공립을 선호하는 이유는 ‘보육의 질’ 때문이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보육교사 인건비 등이 안정적으로 지원되고 정부의 책임있는 관리감독을 받는데다 시설도 우수한 편이다.

반면 민간 어린이집의 여건은 지역에 따라 그야말로 ‘복불복’이다. 정부는 민간에 대해서는, 영유아의 수에 따라 보육료를 지원한다. 정부 지원이 국공립보다 적은데 아동 수까지 줄어들면 어린이집은 ‘생계형 자영업’으로 전락하게 된다. 보육교사 급여를 낮추고 아이들에게 줄 급식비·간식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2015년 보육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민간 어린이집과 가정 어린이집의 초임교사 평균 급여는 각각 월 144만원과 139만원에 불과했다.

■ 어린이집 공공성 확대 절실 이런 상황은 무상보육 정책이 시행되면서 더 심각해졌다. 정부는 2012년 영아를 시작으로, 2013년 0~5살 영유아 전 계층에 대한 무상보육을 실시했다. ‘안 보내면 손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영유아의 어린이집 이용이 급증했다. 아파트나 단독주택 등 가정에서 쉽게 차릴 수 있는 가정 어린이집의 경우, 2007년 1만3184곳에서 지난해 2만2074곳으로 40%가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출생아 수는 5만4489명이 줄었다. 정부가 어린이집 수급조절에 실패하면서 보육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논란도 더욱 커졌다. 김혜금 동남보건대 교수(보육학)는 “정부 보육예산 중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무상보육비가 보육대상(어린이집 이용아동)의 확대로 급격하게 늘어왔을 뿐, 실제 보육의 질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보육료 지원은 최근 몇 년 새 동결 상태나 다름없었다”며 “이런 정부 정책이 어린이집이 사회복지시설인지 영리를 추구하는 자영업인지, 본래의 성격이 모호해지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보육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공공성을 확대하는 쪽으로 정책의 중심을 잡지 않으면 보육 갈등이 반복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신나리 충북대 교수(아동복지학)는 “정부가 무상보육을 한다면서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의지는 미약하고, 공급과잉이 된 민간 어린이집을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며 “맞춤형 보육이 시행되면 수입이 줄어드는 어린이집은 또 어떻게든 쥐어짜기식 경영으로 현상유지해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이상구 공동대표(예방의학전문의)는 “국공립에 다니는 아동 비율을 30%로 확대하는 한편, 민간 어린이집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 엄격한 평가 인증을 하되 인증을 통과한 곳은 정부 지원을 대폭 늘리고 학부모 운영위원 및 감독관 제도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황보연 이재욱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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