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댓글부대' 논란 직원들, 징계 대신 회식..용역팀장 "이원복 원장이 몇개월 피하라 했다"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 2016. 6. 2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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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이원복 원장이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글로벌기술정보 용역 과정에서 국정원 개입 의혹와 관련한 야당의원의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이 원장은 당시 국감장에서 부실용역을 시인했으나 지난 4월 경찰이 사건 관련자들을 업무상 배임혐의로 검찰에 송치하자 이들을 따로 불러 저녁을 사주고 ‘검찰에서 무혐의 결정이 날 수도 있다’며 징계를 미루고 있다. / 김창길 기자

KTL 용역팀장 “원장이 언론보도 후 시끄러우니 몇 개월 피해 있으라고 했다”

‘댓글부대’ 논란을 일으킨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직원 9명을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지난 4월 말 서울중앙지검으로 불구속 송치했지만 검찰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경찰이 이들에게 적용한 혐의는 업무상배임, 입찰방해죄, 사기죄다. KTL이 정상절차를 무시한 채 기자가 채 10명이 되지 않은 <그린미디어>에 실시간 글로벌기술정보제공 사업을 맡김으로써 부실용역을 초래했다는 <경향신문> 보도를 사실로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경향신문>이 최초로 문제를 제기했고, 지난해 10월 국감에서 야당의원들이 가세한 국가정보원 개입 의혹은 사실무근으로 결론을 내렸다. ‘댓글부대’보다는 정부보조금을 노린 단순 사기극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경찰이 이번 사건을 단순 용역비리로 결론을 내리면서 검찰은 큰 부담을 덜게 됐지만 수사는 의외로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검찰은 통상적인 사건 처리 시한인 두 달이 넘도록 아직까지 기초적인 조사도 진행하지 않고 있다. 검찰 수사가 이처럼 이례적으로 장기화할 움직임을 보이는 사이 KTL에서는 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비리 저지른 사람이 오히려 특혜 누려’

경찰 조사 결과 KTL에서 발주한 글로벌기술정보용역은 2014년 시작돼 차기 대선이 치러지는 2017년 시스템 구축완료를 목표로 추진됐다. 용역팀의 세부계획은 3개년에 101억원을 투입해 267개국의 80개국 언어로 된 수출정보를 국내 1만2000개 중소기업에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통신사도 꿈꾸기 힘든 이 용역을 추진할 사업자로 선정된 <그린미디어>는 2013년 말까지 서울 신대방동 4층 허름한 건물에서 3~4명의 기자들로 근근이 운영되던 인터넷 언론매체였다. 누가 봐도 이런 업체에 3개년에 걸쳐 100억원짜리 용역을 맡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문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용역 때문에 지난 1년간 기관 전체가 벌집이 돼 업무가 마비됐는데도 KTL이 책임자 문책에 전혀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부실용역에 간여한 사실이 드러난 KTL 직원 9명 중 징계를 받은 사람은 아직 단 한 명도 없다. 원장과 사전에 한마디 상의도 없이 2014년 3월 <그린미디어>를 서울 구로동 KTL 별관 사무실로 끌어들인 정모 본부장 1명만 대기발령을 받은 상태지만 이 역시 징계로 보기 어렵다. 지난해 본사 이전으로 대부분의 직원들이 경남 진주로 내려가 있는 상태에서 서울본부로 대기발령지가 정해졌기 때문이다.

KTL 내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비정상적 상황의 한복판에는 KTL 이원복 원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경향신문>이 ‘댓글부대’ 의혹을 최초로 보도하기 두 달 전인 2014년 10월 말 KTL 원장에 임명됐다. 그 후 1년 8개월간 그는 말썽 많은 용역 책임자들에 대해 단 한 번도 단호한 문책 의지를 보인 적이 없다. 오히려 이들을 가능한 한 끌어안고 가려는 태도를 보였다.

정 본부장을 본사가 있는 진주가 아닌 서울로 대기발령낸 것 역시 마찬가지다. KTL 직원들 사이에서는 ‘비리를 저지른 사람이 오히려 특혜를 누린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이 원장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이 원장은 “아무래도 경찰과 검찰 수사를 받으려면 서울에 있는 게 편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비리직원의 수사 편의를 위해 서울로 대기발령을 냈음을 굳이 숨기지 않은 것이다. 그는 비리직원들에 대한 징계를 미루는 이유에 대해서도 “검찰이 기소를 할지, 기소유예를 할지도 모르는데 징계를 했다가 나중에 무혐의가 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반문했다.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9명 전원에 대해 직위해제나 대기발령을 내고 자체조사는 진행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기자가 왜 그렇게 남의 기관 일에 관심을 갖느냐”고 반문했다. 이뿐만 아니다. 이 원장은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검찰로 송치한 9명의 직원을 따로 불러 저녁을 함께했다. 민감한 시점에 부실용역뿐 아니라 ‘댓글부대’ 논란까지 일으켜 기관의 신뢰에 먹칠을 한 직원들과 어울려 동반회식을 한 것이다. 이 원장은 “일처리를 왜 그렇게밖에 못했느냐고 야단치는 자리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범죄사실이 드러나 검찰수사를 앞두고 있는 직원들을 불러 밥을 사주면서 야단을 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남궁민 KTL 전원장은 지난해 11월 과의 인터뷰에서 기획재정부가 경영평가에서 석연찮은 이유로 2년 연속 D등급을 줘 자신을 면직시킨 데 이어 감사원이 기재부 눈치를 보고 제대로 감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김창길 기자

이 원장의 평소 태도로 볼 때 피의자 신분인 직원들을 불러 동반회식을 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경찰 수사결과에서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은 왜 멀쩡한 공공기관 직원들이 유사용역실적도 전무하고 창간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그린미디어>에 3개년에 100억원이 투입되는 용역을 맡겼을까 하는 점이다. 경찰 수사팀 관계자는 “KTL 직원들이 정부 보조금을 따기 위해 그린미디어와 공모해 무리한 용역사업을 밀어붙인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KTL 직원들이 아무리 돈에 욕심이 있었더라도 <그린미디어>만을 믿고 용역사업을 승인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사업자 선정 당시 네이버에 등록도 되지 않은 <그린미디어>가 전 세계에 1500여명의 통신원을 보유하고 있다는 허풍’을 곧이곧대로 믿었을 리도 없다. 이래저래 <그린미디어> 배후에 ‘절대로 탈이 나지 않는다’는 믿음을 심어준 누군가가 있고, KTL 직원들은 이미 짜여진 시나리오에 따라 맡겨진 역할만 이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즉 KTL 직원 입장에서는 정작 책임질 사람들은 빠지고 자신들만 희생양으로 삼는 경찰 조사 결과에 불만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점에서 이 원장이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는 직원들을 불러 밥을 같이 먹은 것은 질책보다는 이들의 불만을 달래는 데 무게가 실려 있을 수 있다.

검찰 수사는 더디고 청와대는 침묵하고

그렇다면 왜 이렇게 이 원장은 KTL 내부 비리에 과단성 있는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KTL 남궁민 전임 원장은 후임자가 정해지자마자 2014년 11월 초 이 원장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부하직원들이 자신 몰래 비밀리에 수상한 용역을 진행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던 남궁 전 원장은 ‘문제가 많은 사업이니 혹시 내년도에 예산이 반영돼 있으면 취소하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원장은 전임자의 경고를 무시하고 어떻게 해서든 이 용역을 계속해서 유지해보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사실은 용역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다가 지금은 <그린미디어>와 사이가 틀어진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이 최근 <경향신문>에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면서 드러나게 됐다. 민 소장은 “이 원장이 KTL에 온 지 얼마 안 돼 2단계 용역을 위해 자체예산으로 10억원을 편성했다고 귀띔을 해줄 정도로 이 사업에 애착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경향신문> 보도가 나온 후에도 이 원장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며 “심지어 언론 보도가 잠잠해지면 다시 부를 테니 몇 개월간 피해 있는 게 좋겠다는 말도 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KTL은 <그린미디어>가 2015년 1월 제출한 용역 결과물이 부적정 판정을 받았음에도 국감이 시작된 그해 9월까지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KTL의 한 내부 직원은 “산자부 과장이 야당의원들에게 끌려가 혼쭐이 난 후 우리 쪽에 전화를 걸고 나서야 최종적으로 용역비 회수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원장은 “민 소장과 2~3차례 사무실에서 만난 건 사실이지만 용역을 계속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남궁 전 원장으로부터 어떤 문자도 받은 사실이 없다”고 했다. 반면 남궁 전 원장은 “필요하면 내가 보냈던 문자메시지를 공개하겠다”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기재부가 석연찮은 이유로 2년 연속 경영평가에서 D등급을 줘 나를 면직조치하고 감사원까지 눈을 감은 것은 뭔가 다른 배경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이 모든 의혹을 밝힐 키는 검찰로 넘어갔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더디고, KTL 비리직원들은 ‘설마 검찰이 기소하겠느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댓글부대’ 논란의 핵심인물로 지목된 국정원 출신의 김흥기씨가 안봉근 비서관을 ‘사칭’하고 다니는데도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침묵은 계속되고 있다. 이래저래 KTL을 둘러싼 ‘댓글부대’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 kangj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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