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그림에 PPT까지 하라고요?.. 수행평가에 허덕이는 아이들

오선영 조선에듀 기자 2016. 6. 2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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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수행평가' 실태 들여다보니 과목당 3개 내외.. 한 학기 30여 개 수행평가 비중 100% 과목도 생겨 경쟁 과열, 과제 돕는 사교육 받기도

"중학교 수행평가가 그렇게 무섭나요? 초 6 아들 뒀는데, 중학교 보내기가 겁나요. 입학 전 뭘 준비할까요?"

초등 6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중에는 '중학교 수행평가'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초등학교에도 수행평가가 있지만, 중학교는 과목이 많아짐에 따라 수행평가 가짓수가 크게 느는 데다, 고교 입시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교육부가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및 관리 지침 개정안'을 발표한 뒤로 걱정은 더 늘었다. 개정안에 따르면 과목 특성에 따라 100% 수행평가로만 성적을 매기는 과목이 생기는 등 비중이 커져서다.'평가 방식을 다양화한다'는 취지이지만, 학부모는 이런 변화가 그리 달갑지 않다. 수행평가 비중이 30%에 이르는 지금도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PPT·글쓰기·데생 실력은 기본

수행평가를 경험한 엄마들은 후배 엄마들에게 공통으로 세 가지 능력을 강조한다. "PPT(PowerPoint), 글쓰기, 데생 실력은 갖춰서 중학교에 보내라"는 것이다. 중 2 딸을 둔 황수연(가명·41·서울 강서)씨는 "지난달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수행평가가 쏟아졌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 집 그리기'였다"며 "방·거실·부엌 등으로 나눠 여러 장을 그리는데 솜씨가 없어 밤샐 뻔했다"고 전했다. 중 3 아들을 둔 김진아(가명·44·서울 노원)씨는 "작년에 우리 아들은 집 모형까지 만들었다. 어떤 과목이든 그림을 그리는 수행평가가 들어간다. 국어 수행평가에도 '광고 포스터 만들기' 같은 게 있어서 그림 잘 그리는 아이가 단연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또 수행평가는 '발표'를 기본으로 하는데, 대부분 아이가 발표 자료를 PPT로 준비해 온다. 황수현씨는 "기술·가정 과목에서 '청소년의 욕 사용 실태와 문제점'을 조사하고, PPT 자료로 만들어 발표하는 수행평가가 있었다. 과목을 가리지 않고 PPT 수행평가가 있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글쓰기도 필수다. 수행평가의 태반은 글쓰기와 연관이 있다. 감상문·신문기사·기행문·보고서 등 써야 할 글도 각양각색이다. 중 3 자녀를 둔 김다희(가명·40·서울 동작)씨는 "아이가 가져오는 수행평가 주제를 보고 놀랐다. '사형제도 존폐에 대한 자기 생각을 쓰라'거나 '하우스푸어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라' 등이었다. 수학여행 기행문, 독서감상문, 실험보고서 등 기본적으로 글솜씨가 있어야 잘할 수 있는 수행평가가 많다"고 했다.

◇점수 욕심에 학생 간 과열 경쟁도

비슷한 시기에 밀려드는 수행평가도 문제다. 김다희씨는 "아이 학교는 과목당 수행평가가 3개씩 있어서 30개가량 된다. 어떤 날엔 수행평가 5개가 겹치기도 했는데, 밤새 PPT 만드는 걸 보니 안쓰럽더라"고 말했다. 학생 부담은 더 크다. 중학교 2학년 이누리(가명)양은 "지난 2주 동안 수행평가 10개가 쏟아졌다. 최근 본 수행평가(시험형)는 수학 신문 만들기와 문제 만들기였는데, 두 개를 45분 안에 완벽하게 해야 만점이었다. 하지만 (할 게 너무 많아서) 제대로 준비를 못했다"고 말했다.

평가 방식이나 공정성에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도 많다. "성실하게 하면 점수 잘 준다고 들었는데 그렇지 않더라"는 학부모가 부지기수다. 최윤미(가명·44·서울 서초)씨는 "아이가 절 닮아 노래를 못한다. 독창 수행평가를 앞두고 '노래 못해도 최선을 다해 연습하고 자신있게 부르면 선생님도 인정해 주실 것'이라고 다독였는데, 점수는 잘 부른 순서대로 줬더라. 평소 학습 태도나 성실성까지 반영하는 게 수행평가라고 했지만, 결국 또 다른 성적 줄 세우기가 됐다"고 말했다.

아이들도 때로는 평가 방식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중학교 3학년 황태민(가명)군은 "느닷없이 예전에 나눠준 프린트물을 잘 정리해서 가지고 다니는지, 노트 필기를 잘하는지 등을 검사하는 수행평가도 있다. 악필도 감점이고, 예쁘게 꾸미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점당한 친구도 있다"도 경험담을 전했다. 학부모 고소윤(가명·44·서울 노원)씨는 "변별력을 준다며 불시에 노트 검사를 하더라. 정말 무섭도록 똑부러지는 아이 아니면, 수행평가를 다 잘보긴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특목고 등 고교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 많은 학교에서는 수행평가 경쟁이 과열되기도 한다. 고소윤씨는 "교실에 있는 다른 아이 그림을 망쳐놓거나 교과서를 훔쳐가는 사례도 있다. 우리 아이도 국사 노트가 없어져서 감점을 받은 적 있다"고 경험담을 밝혔다. 김진아씨는 "체육 조별 평가에서 팀을 나눠 경기하고 이긴 쪽에 무조건 좋은 점수를 줬다. 운동 못하는 아이가 낀 팀은 점수가 나쁠 수밖에 없다. 팀원들이 못하는 한 명을 탓하면서 문제가 생겼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혼자 하게 두는 게 능사 아냐… "도우면서 방법 일러줘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녀 수행평가를 도와주는 엄마도 적지 않다. 황수연씨는 "5~6명이 조를 짜서 각자 연주할 수 있는 악기로 합주하는 음악 수행평가가 있었다. 아이들끼리 알아서 하게 놔뒀는데, 나중에 보니 강사 레슨까지 받은 조도 있더라. (결국 사교육 받은 아이들이 좋은 점수를 받는데) 아이들끼리 노력하게 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고 말했다. 중 1 자녀를 둔 학부모 임세은(가명·40·서울 성북)씨 역시 "혼자 해보라고 놔뒀더니 새벽 3시까지 사회 보고서를 못 끝내더라. 다른 엄마들은 도와주지 않을까 싶어서 초조했다"고 전했다.

수행평가를 경험해 본 선배 엄마들은 "무조건 아이 혼자 하도록 두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고 충고한다. 김다희씨는 "처음에는 부모가 자료 찾는 법이나 채점 기준에 맞게 내용 구성하는 법 등을 지도하면서 함께 해주는 게 좋다. 1학년 때 그렇게 시작했더니 지금은 아이 혼자서도 수행평가를 잘 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 3 학부모 김원영(가명·44·서울 송파)씨는 "학기 초에 학교 측에서 교과목별 수행평가 계획과 평가 방식을 공지한다. 이를 토대로 어떤 수행평가가 나올 것 같은지, 어떻게 준비하고 싶은지, 왜 (교사가) 그런 수행평가를 하는 것 같은지 등을 주제로 대화 나누며 아이 스스로 준비하게 도와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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