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붙였다 떼었다 마음대로..'유전자 편집 시대'

목정민 기자 입력 2016. 6. 26. 21:05 수정 2016. 6. 2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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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유전병 치료 최전방에 선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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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가 생명공학계의 ‘슈퍼 스타’로 급부상하고 있다. 유전자 가위는 단백질이나 리보핵산(RNA) 등 생체물질을 이용해 특정 유전자만 골라 잘라내는 기술이다. 과학자들은 크리스퍼 가위를 ‘신석기 혁명’에 비유하고 있다. 돌을 갈아 도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됐듯 유전자를 잘라내는 도구인 ‘크리스퍼 가위’가 생기면서 유전자 편집이 손쉬워졌다는 뜻에서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2012년 처음 개발된 신생 기술이다. 그럼에도 개발 4년 만에 이 기술을 이용한 유전자 조작 돼지 등이 개발되고 직접 인간을 대상으로 한 질병치료 임상시험에 활용하는 등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국제 유명 저널 ‘사이언스’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2015년 주목할 만한 기술로 선정하기도 했다.

■ 제3세대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최신 유전자 기술이다. 유전물질인 RNA에 세균에서 유래한 ‘카스9(Cas9)’ 단백질을 붙여 만든 ‘가위’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1세대 ‘징크 핑거 뉴클레이즈(ZFNs)’와 2세대 ‘탈렌(TALENs)’을 거쳐 3세대 크리스퍼 가위로 발전해왔다. 1세대와 2세대 기술은 단백질을 이용해 유전자 염기서열(유전자를 구성하는 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티민 염기)을 인식해 잘라냈다. 3세대부터는 유전물질인 RNA에 카스9 단백질을 붙여 염기서열을 인식한다. 카스9 단백질을 세균에서 발견하면서 유전자 가위에 대한 ‘혁신’을 불러왔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에 대한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한 것은 미국 UC버클리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다. 이후 한국의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 단장(서울대 화학부 교수)이 인간세포의 유전자 교정에 성공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UC버클리 교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일 먼저 낸 과학자다.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2012년 처음 등장한 뒤 전 세계 과학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세대와 2세대 기술은 유전자를 잘라내는 데 길게는 수년이 걸렸으나, 크리스퍼 기술은 단 며칠 만에 유전자를 잘라낼 수 있다. 또 1세대 기술은 유전자를 잘라 붙이는 비용이 건당 2만5000달러(약 3000만원)로 비쌌으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건당 30달러(약 3만6000원)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연구자가 원하는 부분을 정확하게 인식해 잘라 붙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크리스퍼 가위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3세대보다 정확도가 높아진 3.5세대 크리스퍼 가위도 등장했다. 3.5세대 크리스퍼 가위는 카스9 단백질 대신 ‘크리스퍼-Cpf1’이라는 단백질을 이용한다. 미국 연구진이 처음 개발했는데, 김 단장 연구팀은 크리스퍼-Cpf1 단백질을 이용한 크리스퍼 가위가 카스9 단백질을 활용했을 때보다 정확도가 높다는 것을 입증해냈다. 실제 크리스퍼-Cpf1 가위를 이용해 쥐의 유전자를 잘라내 유전자 변형 생쥐를 만드는 데도 성공했다. 연구진은 지난 7일 생명과학 및 화학 분야 유명 저널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3편의 논문을 연달아 게재하는 쾌거를 올렸다.

■ 전 세계 연구진 크리스퍼 가위 이용한 연구 돌입

크리스퍼 가위를 이용해 전 세계 연구진이 앞다퉈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임상시험에 돌입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지난 21일(현지시간) 크리스퍼 가위를 활용해 암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시험을 허가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최종 승인까지 떨어지면 세계 최초로 크리스퍼 가위를 이용한 암환자 치료가 이뤄지게 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팀은 올해 말쯤 암환자 18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혈우병은 이미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 벤처업체인 샌가모 바이오사이언스는 올해 혈우병 환자 80명을 대상으로 혈우병 유발 유전자를 그대로 둔 채 정상 유전자를 삽입하는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동물이나 식물 개량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크리스퍼 가위를 이용해 말라리아를 옮기지 않는 모기를 개발했다. 벤처기업 툴젠은 윤희준 중국 옌볜대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일반 돼지보다 근육량이 많은 ‘슈퍼근육 돼지’를 만들었다.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 단장(서울대 화학부 교수). 가위로 사용되는 RNA와 단백질을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 인간 배아 연구 시 윤리적 문제도

인간 배아의 유전자 연구를 허용할 것이냐, 금지할 것이냐를 두고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크리스퍼 가위가 그 논란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최근 영국과 중국 연구진이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인간 배아 연구에 나섰기 때문이다. 아직 100% 확실하게 유전자를 잘라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크리스퍼 가위를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사용했을 때 의도치 않은 불행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영국 정부도 올해 초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인간 배아의 유전자 교정 연구를 허가했다.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유전자 교정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허가한 것은 세계 최초였다. 영국 런던에 있는 생명공학 연구소인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불임과 관련됐다고 추정되는 유전자를 크리스퍼 가위로 잘라내는 연구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연구는 세계적으로 윤리적 논란을 낳았다.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유전자를 의도적으로 넣었다 뺄 수 있기 때문에 ‘맞춤형 아기’를 만들 수 있어서다. 공상과학영화 <가타카>에서처럼 우성 형질로만 이뤄진 인간이 태어나는 것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중국에서는 지난해 인공 수정란의 빈혈 유발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바꾸는 실험을 실시했다. 중국 중산대 황준쥬 교수 연구팀이 한 이 실험은 전 세계적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생명윤리를 거스른다는 판단에, 지난해 12월 미국 과학아카데미와 영국 로열소사이어티 등이 주관한 ‘인간 유전자 교정 국제 정상회의’에 참석한 과학자들은 황준쥬 교수팀이 유전자를 교정한 맞춤형 아기 연구를 진행해서는 안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반면 영국과 중국이 인간 배아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은 생명윤리법으로 연구를 제한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생명윤리와 연구 진흥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가운데 크리스퍼 가위 연구가 어떻게 나아갈지 이목이 집중된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인간을 포함한 동물이나 식물의 세포에서 특정 유전자만 골라 잘라내는 3세대 유전자 편집 기술. 세균에서 유래한 효소를 사용한다. 유전병 치료나 식물 개량에 활용하고 있다.

<목정민 기자 mo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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