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아이들 300명 수장되는 거 보고도 난 왜 살아 있나"

권영미 기자 2016. 6. 26.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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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시집 '내 몸에 내려앉은 지명'(地名) 낸 김정환 시인
김정환 시인 © 백다흠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문학평론가 고종석의 표현을 빌자면 시인 김정환(62)은 시를 '폭포'처럼 쏟아낸다. 동료시인 이시영에 따르면 그의 시는 쉽게 읽히지 않고 방대하고 난해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동료와 후배 시인들은 '이상한 매력과 감동이 있다' '어딘지 멋있다'고 그의 시에 대해 평가하고 있다.

1980년 등단해 시력(詩歷)이 벌써 36년에 달하는 김정환은 민중들의 고통과 좌절, 희망의 모색을 노래하는 시들을 발표해왔다. 이같은 공감과 모색이 진솔하기 때문일까. 독자들 역시 명징한 비유와 강한 메시지를 담은 초기 시집들은 물론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최근의 시세계까지 기꺼이 탐험해왔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당산동 자택에서 만난 시인 김정환은 클래식 음악을 배경삼아 시에 대한 생각과 최근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김정환 시인은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다. 2008년 웹진 대산문화와 인터뷰 한 것을 포함해 언론매체에 그의 생각을 말한 것은 아마도 평생 다섯손가락에 꼽을 정도도 안된다. 시인은 "자신의 시에 대해 설명하거나 자신의 책을 홍보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기자와 만난 이례적인 '사건'은 그러므로 그의 신작시집 '내 몸에 내려앉은 지명(地名)'(문학동네)의 홍보나 설명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김정환 시인은 '시란 무엇인가' '시인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최근의 고민은 무엇인가' 등의 근본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놨다.

김정환 시인은 "시는 시인 자신과 소통하고 독자와 소통하는 것"이라면서 "시를 읽은 후 자신을 건드린 부분을 중심으로 독자가 자신을 재조정하고 그 재조정된 미학틀로 다시 그 시를 읽는 것, 그 재조정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시 읽기"라고 설명했다. 또 세월호가 문학인들에게 던져준 충격에 "울고 남탓 하지만 말고 (문학의) 문법 자체를 갱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스스로 너무 진창에 빠지지 말라고 들어올리는 그물을 짜는 것"이 자신의 시 쓰기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김정환 시인과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시를 어떻게 완벽하게 이해해. 쓴 나도 완전하게 이해못하는데…

나는 첫 시집부터 쉽다, 읽기 편하다는 평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런데 어떤 시집이 얇고 쉬워서 첨부터 끝까지 샥 읽고 '아, 쉽다' 그러면 좋은가. 나는 그런 사람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시를 어떻게 완전하게 이해하나. 나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데.

(본인이 좋아하는 시를 꼽아달라고 하자) 나는 내 시 중에서 이것이 좋다고 골라본 적도 내 시를 설명해본 적도 없다. 내 시를 설명하는 거, 해설은 평론가에게 물어보지 왜 나한테 물어보나.(웃음) 시는 일단 나하고 소통하고 그 담에 독자와 소통하면 되는 거지.

그런데 쉬운 내용을 주고받는 것을 소통이라고 불러선 안된다. '서로 깊어지는 관계와 형식'이 소통이다. 시가 어렵다고 해도 읽다가 뭐가 툭 건드리는 말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중심으로 자기 인생을 다시 짜보는 것 그리고 다시 읽는 것, 그것이 시집을 읽는 방법이다.

시집은 여러 번 읽어야 한다. 다시 읽으면 그만큼 미학적으로 재조정됐기에 그전에 건드린 게 아닌 다른 것이, 아니면 전에 건드렸던 것이라도 이번엔 다른 식으로 자신을 건드린다. 그러면 그것을 중심으로 다시 자신을 재구성한다. 다시 그 재구성하고 다시 조정하는 것을 반복하는 게 시집읽기다. 그렇기에 좋은 시집은 평생 읽는다.

아주 쉬운 시를 반복해서 읽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그냥 쉬운 습관일 뿐이다. 시는 그런 것을 바탕에 두고 있지는 않다. 시를 쓰는 것은 자기와 소통하고 (발표함으로써) 남과 소통하는 것인데 이때 소통되는 것은 내용이 아니라 '미학틀'이다.

대중들에게 너무 어려운 요구 아니냐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중들이 시인이나 기자보다 훨씬 많은 직접적 경험을 한다. 그들의 미학적 경험은 더 생생하다. 그것을 나꿔채서 '이건 너희한테서 나온 건데' 하며 다시 던져주는 것, '대중에서 시작해 대중에게 돌아가는 것'이 문학이고 예술이다.

일부러 시를 어렵게 쓰라는 말이 아니다. 문학이란게 일부러 복잡하게 하면 사기꾼이 하는 짓이다. 일단 나한테 '왜 사는지'를 설득하는 게 시인데 산문으로는 전달이 안되니까 시로 발표한다. '난해 속으로 도약'해버리는 것이다. 김소월 시가 좋지만 지금은 그렇게 쓰는 시대가 아니다. 현대가 강요하고 현대가 반영되는 미학적 틀자체가 엄청 복잡해졌다. 시는 가장 까다로운 미학틀을 건드리는 장르다.

좋아하는 시인? 나는 내 시를 쓰는 것일 뿐이다. 잘 쓰는 사람이 있으면 '너는 그거 써라, 나는 이거 쓴다' 이런 식이다. 저 시인이 '나보다 잘쓰는 것 같다' '나보다 못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덜떨어진 거지.

◇문인들을 덮친 세월호, 울고 남탓하는 것으로 끝나선 안돼

시라는 게 내가 싫어하는 게 튀어나오기도 하고 나를 어디로 끌고가기도 한다. 생각도 아니고 덩어리도 아닌 무엇인가가 내게 질서를 요구한다. 그렇게 쓰여진 시는 그후 역으로 나를 정리해준다. 정리가 되면 기분이 좋고 안되면 술을 먹어야 한다. 시인이란 맨정신으로 미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맨정신인데 (나도 모르는) 어떤 것이 정리해달라고 하면서 내 속에서 튀어나온다. 그 무엇인가를 끄집어내서 질서를 부여하는데 그게 새로운 질서이길 바란다.

요즘의 관심사? '아이 300명이 수장되는것을 안방에서 보고도 왜 나는 온전히 살아있나' 하는 거다. 이게 내 고민이다. 안방에서 수십일에 걸쳐 '수장(水葬)'을 관람한 건데 '그러고도 어떻게 우리가 살아있냐' 하는 것이다. 한번 '세게' 울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고 있다. 이건 기존의 문법이나 소재 이런 차원이 아니다. 기존의 미학체계, 시의 문법 자체가 완전히 망가진 거다.

요즘에 시비조로 후배들에게 "시인이 곡비(哭婢, 장례 때 곡성이 끊이지 않도록 곡하는 노비)냐. 누가누가 멋있게 우나 경쟁하냐"고 말한다. 그냥 이런 참사가 있었고 울고 비판하고 하는 선에 그쳐서는 안된다. 문법 자체를 갱신하면서 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 문제를 피해갈 수가 없다. 안방에 태풍이 밀어닥친 격이다. 제 정신 가진 글쟁이들이라면 지금 거기 전부 빠져있다. 빠져서 대신 죽어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시로 쓰는 방식에서는 '왜 우리가 그것밖에 못하느냐' '우리 문학이 그 짓밖에 없느냐'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다. 비난도 아니고 내가 잘났다는 것도 아니다. 울고 남 욕이나 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잘 우는 사람이 잘 잊어먹더라.

이 문제를 껴안고 허우적대는 것의 결과가 작은 실마리를 얻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학의 특성상 그냥 계속 파탄나면서 끝까지 가는 거다. 그러다 뒤돌아보면 혹시 작은 실마리가 있었을 수 있겠지. 그런 게 지금 나의 관심사, 아니 관심이라는 말도 한가한 말이고…그런 상태다.

◇내가 그물을 짜면서 그 안에 담긴 나를 내가 들고 있다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나? 문학은 문학을 할 수가 있다.(웃음) 일단 문학하는 사람을 살린다. 글을 쓰는 이에게 '왜 살아있는가'를 설명하는 게 문학이다. 베스트셀러는 잠시 쾌락이나 재미를 주고 끝나지만 제대로 된 진지한 문학은 작가한테 해줬던 (왜 살아있는가를 설명하는) 역할을 독자에게도 해준다.

그런데 그러려면 독자가 진지해야지 '너무 어려워' 하며 읽기 시작하면 안되는 거다.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80세 넘으면 죽는데 우린 그걸 짐승도 아니고 아는데 그걸 알면서도 왜 아등바등 사냐, 문학이 그 설명을 해줘야 할 것 아닌가. 소위 납득을 시켜줘야지. 소통을 그저 '전달'이라 생각해 손쉬운 교양서나 쉬운 시집을 샥 읽고 이런 거라 생각하면 그 값 내고 끝인 거지.

시인이 어떤 식으로 존재할 수 있나. 글쟁이가 글을 써서 먹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글이 멀쩡해진다. 문학 중에서 유독 시라는 장르만 봉건적 사고에 박혀서 시인들은 일 년에 몇 편 쓰면 많이 쓰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한달에 20만~30만원 받고 굶으며 살거나 마누라 착취하거나 시와 전혀 관계없는 직장 다니면서 자신의 삶과 전혀 관계없는 것을 쓰거나 한다. 그런 건 시를 전혀 발전시키지 못한다. 나는 그런 후배를 절대로 시인으로 안쳐준다. 좋은 시집이 나오고 좋은 독자가 키워지면 시인들도 먹고 살 수 있다. '깊어지는 소통'을 할 수 있는 독자들이 2만명만 있다고 치면 시인들고 시써서 먹고 살지.

내가 쓰는 이 시들의 바탕은 뭐냐고? 현실이다. '이 자는 현실을 이렇게 집어삼키거나, 받아치거나, 정리하거나, 시비를 걸거나, 받아들이는구나' 하는 거를 보여주는 거다. (내 시집 말고도) 모든 시집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몇 년은 유난히 나를 괴롭혔다. 조용히 살고 싶은데 세월호를 비롯해 정치며, 먹고사는 문제, 식구들 문제.

또 나이먹었으니 사람들 죽어가는 게 보이잖아. 슬퍼할 겨를도 없지. 나 죽을 준비를 해야 하니까. 이 현실을 내게 납득시키는 미학적 그물이랄까, 나를 너무 진창에 안빠지게 건져올리는 미학적 그물을 만드는 것이 시쓰기였다. 내가 그물을 만들어서 그 안에 담긴 나를 내가 들고 있는 거야. 너무 진창에 빠지지 말라고. 문학이 현실의 무엇인가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학적 틀(그물)을 끊임없이 만드는 것 이게 글쟁이들이 하는 거다. 그것을 '해결'이라고는 볼 수 없고 아마도 ‘자신을 구원한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 김정환은

1980년 등단한 후부터 민중들의 고통과 좌절, 희망을 리얼리즘적으로 형상화한 시들을 주로 써왔다. 시집은 물론 장편소설, 인문·역사서, 클래식 음악 해설서 등 100여 권에 달하는 저작을 펴낸 정력적인 저술가기도 하다.

시인 혹은 작가가 아닌 '문화운동가'라는 직함 역시 그를 설명하는 한 축이다.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 의장, 한국작가회의 상임이사,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사무국 국장, 한국문학학교 교장을 지낸 그에게 사회와 역사를 바꾸는 것은 시만큼 중요한 꿈이었다.

첫시집 '지울수 없는 노래'(1982)에서 '철길이 철길인 것은/만날 수 없음이/당장은, 이리도 끈질기다는 뜻이다./(중략) 아직 떠나지 못한 내 발목에까지 다가와/어느새 철길은/가슴에 여러 갈래의 채찍 자욱이 된다'('철길' 중에서)라고 쓰며 김정환은 '철길을 달리는 기차'처럼 강하고 꾸준한 시쓰기 여정을 시작했다. 그의 시는 서정성을 바탕에 깔고 있으면서도 발견과 자기부정을 통해 시 속 인식의 틀을 차곡차곡 심화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절창 시들의 모음인 시집 '황색예수전'(1984)에서는 '새벽은/흰옷을 입고 어둠을 양손으로 밀어내는/수줍은 뭄짓으로 오지는 않을 것이다/이제 새벽의 옷깃에는/핏덩이가 엉겨 있을 것이다'('끝노래, 이제' 중에서)라며 피냄새 선연한 역사의 새벽이 올 것임을 예견했다.

신작시집 '내 몸에 내려앉은 지명(地名)'에서는 '의식의 흐름'이라고도 부를만한 자신의 의식 들여다보기를 행하고 있다. 그 속에는 시인은 현실세계의 고통과 혼란, 육신의 늙음을 다음과 같은 '연민'의 시선으로 파헤치고 있다.

'여보, 우리가 당분간 유지할 것은 연민의 각도다./산 자들의 번화가 아니면/비린내 질펀한 어촌 근해 집어등 야경이 우리 앞에/다시 출현할 때까지. 울음이 울음의 흔들림을/선이 선의 흩어짐을, 수습할 때까지.'('각도' 중에서)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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