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이게 아닌데.." 편견이 낳은 '北 무수단 쇼크'

박수찬 2016. 6. 26. 10:0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5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사출시험 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노동신문
“북한을 서방 세계의 시각으로 분석하면 안된다. 북한은 북한의 시각으로 분석해야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한 예비역이 기자에게 남긴 말이다. 군 정보부대에서 10년 넘게 대북 정보 분석을 담당했지만 북한 노동당과 군부의 전략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미 중앙정보국(CIA)조차도 실패를 거듭한 북한이다. 관영매체를 통해 제한적으로 공개되는 정보와 탈북자들이 제공하는 단편적인 정보, 신호감청에 의존해 북한의 전략을 유추하다보니 잘못된 분석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극소수에 불과한 대북 정보에 정부와 군 수뇌부의 북한에 대한 고정관념과 무지에서 나온 편견이 합쳐지면 심각한 정보분석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대북 정보 중에서 가장 수집하기 어려운 군사정보분야는 분석 오류와 간과 등이 겹치면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무수단 중거리탄도미사일 발사를 전후로 군이 보인 태도는 이같은 오류와 간과가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난 22일 발사된 무수단 중거리탄도미사일. 400㎞를 비행했으며 고도는 1400㎞에 달했다. 사진=노동신문

◆ 5번째 발사 “실패 추정”, 6번째는 “…”

북한이 6번째로 무수단 미사일을 발사해 400㎞를 비행한 것으로 드러난 22일 오전, 국방부와 합참의 분위기는 여느 미사일 발사 당시와 달랐다.

합참은 이날 오전 9시37분, 합참은 “북한이 오전 8시5분경 추가 발사한 무수단 추정 미사일은 약 400㎞를 비행했으며 한미 당국이 추가 정밀 분석중에 있다”고 발표했다. 3시간 전에는 “오전 5시58분경 발사한 무수단 추정 미사일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 결과를 신속하게 알렸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합참은 지난달 31일 북한의 4번째 무수단 미사일 발사 시도 당시 “실패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어 뒷말을 낳기 충분한 태도였다.

북한이 무수단 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한 4월 이래 군이 무수단 미사일을 바라보는 시각은 계속 바뀌었다. 구소련 R-27 미사일을 복제했으므로 시험발사 없이도 충분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던 기존의 판단은 북한이 실시한 네 차례의 발사가 모두 실패로 돌아가면서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무기체계다” “북한 기술 수준의 실체가 드러났다”는 해석으로 바뀌었다.

군 안팎에서는 북한이 무수단 미사일의 기술적 결함을 찾아 개선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미사일이 발사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폭발한 경우도 있는 만큼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첫 발사 실패 이후 두 달만에 무수단 미사일의 최소 사거리인 400㎞를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북한이 “화성 10호(무수단)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며 노동신문에 수십여장의 사진을 공개한 23일, 군의 태도는 당혹감이 묻어있는 신중함 그 자체였다. 전하규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엔진 성능에선 기술적 진전이 있다고 평가한다”면서도 “실전 비행능력이 검증돼야 하며 최소 사거리 이상의 정상적인 비행궤적을 그리는 것이 중요해 성공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스커드 미사일. 북한의 주력 탄도미사일이다.

◆ 스커드, 노동미사일만 바라본 실수

무수단 미사일 발사를 둘러싼 군의 당혹스러움은 예견되어왔다. 스커드와 노동, KN 시리즈, 광명성호 등에 집중하면서 상대적으로 무수단 미사일을 등한시했던 결과다.

무수단 미사일에 대한 언급이 처음 등장한 2008년도 국방백서는 “사거리 3000㎞ 이상의 신형 중거리미사일 개발에 착수해 최근 작전배치했다”고 명시했다. 2010년도 국방백서는 “2007년 사거리 3000㎞ 이상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무수단’을 작전배치해 일본과 괌 등 주변국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후 발간된 국방백서는 2010년도판의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다.

반면 스커드와 노동, 대포동 등에 대한 표현은 그 비중이 날로 높아졌다. 미국 역시 무수단에 대해서는 최근 수년간 깊이 있는 분석 결과는 거의 없었다.

한미 군 당국이 무수단을 등한시했던 것은 북한의 주요 탄도미사일과 위성발사체 1단 추진체가 스커드에서 파생된 엔진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처음 접한 탄도미사일은 1970년대 중동에서 밀반입한 스커드였고, 이를 기반으로 노동, 대포동 미사일을 개발했다. 은하 3호와 광명성호 역시 추진체계는 스커드의 영향이 적지 않다.

신뢰성 높은 로켓 엔진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이 스커드 엔진을 ‘마르고 닳도록’ 쓰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고, 한미 군 당국은 스커드 계열만 분석하면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북한의 KN-02 미사일. 사진=노동신문

하지만 지난 4월 들어 이같은 고정관념은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4월9일 북한 노동신문은 대형 액체로켓 엔진 연소실험을 공개했다. 엔진 2개를 하나로 묶은 이 실험에 동원된 엔진은 R-27에 기반한 무수단 엔진이다. 이 엔진은 KN-14에도 쓰이고 있어 미 본토 공격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간과해서는 안되는 부분으로 해외에서는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국내에서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같은달 15일과 28일과 5월31일 북한은 무수단 미사일 4발을 발사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그전까지 무수단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던 군은 “기술 수준이 드러났다”며 북한의 성급한 발사 시도를 폄하했다. 지난 3월부터 북한이 핵탄두 모형과 재진입체 실험 등을 공개하자 “ICBM 개발에 필요한 기술 수준이 아니다”라고 평가한 것의 연장선상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속도전’ 대가답게 첫 발사 직후 두 달만에 최소 사거리를 달성해 군 당국을 당혹스럽게 했다.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핵군축 협상을 진행한다’는 대외 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1980년대부터 30여년을 달려온 북한의 의지와 기술력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군 관계자들이 무수단에 대해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안정성’이다. 우리나라에서 무기를 개발할 때 설계를 마치면 그 과정을 검증하고 시제품을 제작해 테스트를 통과하면 실전배치가 이루어진다. 이 기준으로 보면 무수단은 신뢰성이 낮은 셈이다.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시스템을 서방 세계의 시각만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구소련이 1930년대 개발했던 ‘토카레프 권총’은 대량생산을 위해 안전장치를 없애버린 것으로 유명하다. 서방 시각으로는 결함이 있는 무기지만 구소련은 2차 세계대전에서 토카레프 권총을 성공적으로 운용했다. 
판문점에서 우리측 경비병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북한군.

북한은 정보수집이 가장 힘든 나라로 꼽힌다. 쓸모 있는 대북 정보를 모으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정보가 부족하다보니 “북한은 악의 무리다” “북한의 기술과 경제력은 우리나라보다 낮다” 식의 고정관념과 편견에 기반한 추측이 개입하기 쉽다. 추측과 왜곡이 개입하면 정보의 실체가 가려지거나 간과되면서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가져올 수 있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으면 정보 실패는 계속될 것이다. 지금 군에 필요한 것은 북한을 들여다볼 정찰위성이 아니라 ‘편견 없는 세상’을 꿈꾸며 출연자들에게 가면을 씌우는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일지도 모른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