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원집정부제보다 익숙한 4년 중임제
19대 국회의 헌법개정자문위원회는 2014년 헌법개정안을 마련했다. 학계 8인, 정치인 2인, 법조인 2인, 언론계 2인, 전직 관료 1인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가 선택한 권력구조는 분권형 대통령제였다. 행정부는 대통령과 국무총리(행정부)로 나뉘어 대통령은 외교·국방·통일·안보의 권한만을 가지며, 나머지 권한은 국무총리가 갖게 된다. 대통령은 6년 단임제로, 직선으로 선출하는 개헌안이었다. 특이한 것은 국회를 하원 격인 민의원과 상원 격인 참의원으로 구성하는 양원제였다.
개헌이 본격적으로 거론되면서 개헌안에 담을 통치권력구조가 개헌 관련 최대의 쟁점이 되고 있다. 개헌은 정세균 국회의장이 취임 일성으로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가시화됐다. 정 의장은 국회 사무총장에 우윤근 전 의원을 내정했다. 6월 21일 국회에서 승인안이 가결되면서 사무총장직에 오른 우 전 의원은 대표적인 개헌론자다. 19대 국회에서 개헌추진 의원모임에서 야당 간사를 맡았다. 우 신임 사무총장은 평소 독일식 의원내각제 개헌을 주장했다.
우 사무총장은 6월 15일 평화방송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식 모델, 소위 대통령은 국가 원수로서의 화합의 상징으로 두고, 총리를 국회에서 뽑아서 여야가 싸우지 않고 연정도 가능하고 상생할 수 있는 분권형 내각제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대표적인 개헌론자였던 이재오 전 의원은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를 개헌의 방향으로 제안했다. 이 전 의원은 개헌추진 의원모임의 고문으로 활동했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 당시 정무장관 또는 실세 의원으로서 개헌론을 주도해 이 의원의 이름 앞에는 늘 ‘개헌’이 붙어 있었다.
분권형 대통령제의 담론을 다시 터뜨린 이는 김무성 전 대표였다. 2014년 당 대표에 선출된 뒤 중국 상하이에서 개헌 관련 발언을 하면서 김 전 대표는 개헌 논의를 반대하는 청와대와 잠시 동안 맞섰다. 김 전 대표가 내세운 개헌론은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였다. 때문에 정가에서는 개헌론만 나오면 분권형 대통령제를 머리에 떠올리게 됐다.
<정치의 귀환>의 저자인 유창오씨는 “여론조사를 보면 분권형 대통령제라고 하면 선택률이 높은데, 같은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이원집정부제라고 물어보면 선택률이 낮다”고 말했다. 유씨의 분석에 따르면 같은 용어이긴 하지만 이원집정부제는 뭔가 두 권력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분권형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이라는 단어 때문에 단지 대통령의 권력을 조금 제한한다고 본다는 것이다.
이원집정부제는 일부 친박 의원이 선호함으로써 지금도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홍문종 의원은 아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염두에 두고 이원집정부제를 거론한 바 있다. 대표적인 헌법학자였다가 20대 국회에 ‘진박 초선의원’으로 진입한 정종섭 의원도 이원집정부제를 개헌의 방향으로 점찍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유력한 대권주자가 있는 쪽에서는 현재 헌법을 고수하거나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반면, 뚜렷한 대권주자가 없는 쪽에서는 이원집정부제를 내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친박 중에서도 많은 의원들이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원하고 있어, 개헌이나 개헌의 방향에 대해서도 일치된 견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친박의 한 재선의원은 “친박 의원들 사이에 개헌에 대해서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다”면서 “세간에서 이야기되는 친박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염두에 둔 이원집정부제를 추진한다는 이야기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어떤 방향을 전제로 한 개헌 논의가 없다는 것이다.
유창오씨는 “정치권에서는 다음 집권 가능성이 낮은 쪽에서 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를 내세우지만 이런 개헌방향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는 오히려 낮은 불일치 현상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유씨는 “유력한 대권주자가 있는 정당에서는 개헌에 대해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면서 개헌 반대 또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내세운다”고 주장했다. 유력한 주자가 있는 친노·친문이나 친안(친안철수) 쪽에서는 현행 권력구조나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 일부 관계자의 목소리가 확대돼 ‘청와대에서는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하고 있다’ ‘청와대에서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하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친박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이양수 의원은 “청와대 관계자들의 개인적인 의견을 확대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친박의 이원집정부제 선호 경향에 대해서도 “지금의 대권주자를 대입해서 개헌을 바라보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면서 “실제로 개헌은 지금의 대권주자들이 통치권력 구조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차기 선거가 아니라 차차기 선거에 적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곧 이뤄질 것 같던 개헌론은 군불만 때다가 연기 없이 사라지곤 했다. 유창오씨는 “개헌론이라는 것이 대통령 권력의 중반기 이후에 등장하기 때문에 이미 동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출발하고, 그 결과 현실성이 떨어지면서 매번 실현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연합뉴스>나 <중앙일보>에서 20대 국회의원을 상대로 한 전수조사를 보면 이름만 떠들썩한 이원집정부제보다는 대통령 중임제가 더 선호하는 통치권력구조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조사에서는 대통령 4년 중임제가 46.8%를 차지했고, 분권형 대통령제가 24.4%, 의원내각제가 14.0%를 차지했다. 똑같이 의원 전수조사를 한 <중앙일보> 조사에서는 대통령 중임제가 62.2%, 이원집정부제가 16.1%, 의원내각제가 11.1%를 차지했다. 이양수 의원은 “개헌론은 실제적으로 대통령의 권력이 너무 세다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4년 중임제로 개헌한다면 대통령의 권력이 5년 단임이 아니라 8년의 중임으로 늘어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회의원 전수조사 결과는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개헌 관련 여론조사 결과와 비슷하다. 처음헌법연구소 조유진 소장은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는 여전히 우리나라 국민에게 낯선 제도일 수밖에 없다”면서 “익숙한 대통령제 안에서 변화를 찾다보니 결국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 소장은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는 최고권력을 양적으로 분리하려는 방안”이라면서 “대통령제 아래에서도 질적으로 권력을 통제하는 방안도 있다”고 말했다.
개현론에서도 이상론과 현실론이 충돌하고 있다. 때문에 이원집정부제는 늘 이상론에 닿아 있고, 대통령 4년 중임제는 현실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홍영표 의원은 “가장 바람직한 모델은 독일식 분권형 내각제이지만 정당식 비례대표 명부제를 도입하지 않고서는 이 모델을 제대로 운용할 수 없다”면서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이 정당식 명부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므로 결국 대통령제 중임제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헌론에서 통치권력구조가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의 이해관계보다는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조유진 소장은 “권력구조는 국민의 기본권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데, 어떤 권력구조가 국민의 기본권 신장에 기여할 수 있느냐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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