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66주년.. 서울에 숨겨진 '제노사이드' 상처

장우성 기자 2016. 6. 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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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극으로 남은 서울대병원 살상· 홍제리 집단처형
1950년 6월28일 인민군의 서울대병원 습격 중 숨진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탑 '이름없는 자유전사들의 비' 2016.6.24© News1

(서울=뉴스1) 장우성 기자 = 6·25전쟁 66주기를 맞이한 서울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전쟁의 상흔이 많이 남아있다. 전쟁 당시 남쪽의 피해는 충청 이남 지방이 더 컸지만 남북 양쪽의 부역자 처형과 폭격의 집중 등으로 막대한 희생자를 낳았다.

지금은 많은 시민들이 생명을 지키기 위해 찾는 종로구 혜화동 서울대병원도 66년 전에는 참극의 현장이었다. 1950년 6월28일 서울에 진입한 인민군 4사단 5연대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병원이었다. 자신들도 부상병이 많아 치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을 경계 중이던 국군 1개 소대는 치열한 교전을 벌였으나 오래 버티지 못했다.

고 송효순 전 국회의원의 책 ‘붉은 대학살’에 따르면 당시 인민군은 병동에 들어와 일반환자와 국군환자 구별없이 소총을 난사했고 도망치거나 숨어있던 국군도 예외없이 사살했다.

서울대병원이 펴낸 ‘서울대병원사’에서도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다. 병원 측은 전시체제를 맞아 긴급회의를 열었지만 대책이 없었다. 비전투원에 대한 인도적 조치를 약속한 제네바조약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었다. 병원 내 모든 기를 적십자기로 바꾸고 옥상에는 거대한 적십자 마크를 그렸다. 헛된 기대였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성칠 서울대 사학과 교수의 6.25일기 ‘역사앞에서’에도 서울대병원 사건이 등장한다. 전쟁 발발 닷새 뒤인 6월30일 찾은 서울대병원에는 거적으로 덮인 시신들이 즐비했다. 김 교수는 “수군대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인민군이 들어와서 대학병원에 있던 국군 부상자들을 끌어내어 총살해버린 것이라고 한다. 나는 조선 사람의 명예를 위하여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고 썼다.

서울대병원 후문 쪽 장례식장 앞에는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희생자들을 기리는 위령탑이 서있다. 1963년 고 장기영 한국일보 회장이 세운 이 탑에는 ‘겨레여, 다시는 이땅에 그 슬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게하라’고 새겨져있다.

서울 홍제리(현 서대문구 홍제동) 사건은 이승만 정부가 서울 내 형무소의 좌익계열 재소자들을 처형하면서 벌어진 참극 가운데 하나지만 널리 알려져있지는 않다. 50년 넘게 묻혀있던 내막은 김기진 전 부산일보 기자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보관된 기밀문서를 직접 찾아내 2005년 펴낸 '한국전쟁과 집단학살'로 알려졌다.

'한국전쟁과 집단학살'에 따르면 1950년 12월15일 서대문형무소 경비병들이 민간인 재소자들 수십명을 집단사살하는 광경을 인근에 주둔하던 영국군이 목격했다. 이들은 그 사이에 여성은 물론 어린이도 다수 있었다고 보고했다. 다음날에도 처형이 이어지자 영국군은 경비병들을 무장해제시키기도 했다. 국제적십자가 진상조사에 나서고 서방언론들이 보도하면서 파장이 확산됐다. 진상조사단이 처형장소를 파들어가자 수백구의 시체가 발견됐다.

당시 이승만정부는 어린이는 처형한 적 없다고 해명했으나 집단처형은 며칠간 계속됐다. 유엔한국위원단의 항의로 서대문형무소에 갇혀있던 어린이 200명을 구출했다는 외신보도도 이어졌다. "많은 어린이가 사살되는 것은 '빨갱이 자식은 자라서 빨갱이 동조자가 될 게 뻔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당시 분석이었다.

홍제리 사건은 김기진 전 기자의 연구 이후 추가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못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회원회에서도 다루지못해 전모는 아직 베일에 가려져있다.

'대한민국통계연감' 집계로는 한국전쟁 당시 서울지역의 인명피해 규모는 12만9000명이다. 전국 시도 중 전남, 강원에 이어 3번째로 많았다. 실종자 3만6000명, 사망자 2만9000명에 학살당한 사람이 8800명이다.

never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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