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서]'학대死' 원영이..진정 친부·계모 용서할수 있을까

윤진희 기자 2016. 6. 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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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신원영군 락스 학대 사망사건 공판을 앞두고 한 시민이 릴레이 1인시위를 하고 있다© News1

(서울=뉴스1) 윤진희 기자 = 24일은 '락스 학대' 끝에 사망한 '원영이'의 친부와 계모에 대한 두 번째 공판이 열리는 날이다. 서울에서 80킬로. 빗길을 두 시간여 달려 도착한 평택지법 앞에서 하얀 우비를 입고 피켓을 든 정모씨(44·여)를 만났다.

고교생 자녀를 둔 정씨는 원영이 사건을 접하기 전에는 아동학대 사건에 관심이 없었다는 말을 고백하듯 속삭였다. 놀라고 아픈 마음에 아동학대에 관심을 갖자 주위에서 "네 아이나 잘 키우지 왜 그렇게 남의 일에 관심을 갖느냐"게 주변 반응이었다고 한다. 이런 반응들이 외려 아동학대에 대한 정씨의 관심을 돋우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이날 법정을 찾은 다른 시민들과 함께 법원 직원들의 출근 시간 30분 전부터 '릴레이'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었다.

지방법원 공판정 앞은 한산하기 마련이지만 원영이 사건 법정 앞은 사람들로 붐볐다. 이제 겨우 '엄마'라는 말만 할 줄 아는 아이를 품에 안은 30대 ‘엄마’, 지긋한 나이의 노부부가 재판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법정 앞을 서성인다. 사람들 속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취재를 하며 알게된 한 법조인이 '방청객' 자격으로 원영이 재판을 찾았다. 그는 기자에게 "부끄럽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법원과 검찰 그리고 변호사마저 믿지 못해 자신들이 직접 나서야 무언가 제대로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길을 나서게 만든 것이 정말 부끄럽다"고 거듭 얘기한다.

지은지 얼마 안돼 모든 게 새 것인 재판정은 단정하다. 미처 세월의 흔적을 입지 못한 '법대' 뒤 태극기가 쓸쓸하다. 오후 1시 30분으로 예정 된 재판 시작 2분 전에 재판부가 입장한다. 방청객과 맞절을 한 뒤 예정보다 2분 빠르게 공판이 시작됐다. 법정에 기자들이 내는 키보드 소리가 낮게 깔린다.

평택지법 형사1부(김동현 부장판사)가 담당하는 '원영이 사건'의 공판은 방청객에 대한 재판장의 7분여의 당부로 시작한다.

김 부장판사는 "방청도 많이 왔고 (공판을)방청하거나 재판부에 탄원서는 내는 것은 좋다"며 한 묶음의 탄원서를 들어보였다. 그는 "피고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변호인들도 위축이 많이 돼 있다"며 "범죄 내용과 상관없이 법정에서의 권리라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김 부장판사는 "여러분들이 바쁘신데 본인들과의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좋은 뜻으로 하는건 알겠는데 탄원서를 내거나 법정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스포츠 경기도 아닌데 야유를 하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권리를 넘어서는 것"이라며 방청객을 단속 또 단속한다.

공판이 시작되고 8분 뒤인 1시 36분 원영이 계모 김모씨와 친부 신모씨가 입정했다.

계모 김씨는 하늘색 수의를 입고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한쪽으로 곱게도 땋아 내렸다. 황토색 수의를 입은 원영이 친부 신씨와 각각의 변호인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았다. 김씨와 신씨의 몸은 방청석을 외면하고 있다. 자신들이 저지른 인면수심(人面獸心)의 행위를 비난하는 낯선 이들의 시선이 두려운지 재판부를 향한 채 몸을 틀어 앉았다. 김씨가 방청석 쪽으로 느슨하게 땋아 내린 머리는 세상이 김씨의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는 가림막 역할을 톡톡히 한다.

재판장은 오늘 공판이 원영이 계모 김씨와 친부 신씨의 양형(형량결정)을 위한 보호관찰소의 심리조사 결과를 심리하기 위해 열렸다고 설명한다. 원영이 계모와 원영이 친부의 형량결정에 고려할 만한 사항들이 공개됐다.

재판장이 친할머니와 함께 살고있는 원영이 누나의 말을 담은 변호인 의견서를 읽는다. 의견서 속 원영이 누나는 "아빠는 그래도 자기들을 보호해 주었고 김씨는 어렸을 때 자기처럼 계모한테 혼이 많이 나서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김씨도 계모에게 자라 불쌍하다"고 의젓하게 말한다. "원영이는 아빠랑 새엄마가 벌을 많이 받기를 원하지 않을까"라는 변호인의 질문에 "원영이는 착해서 벌을 조금만 받게 해달라고 했을 것"이라고 동생 죽음의 이유를 모른채 예쁘게 답한다. 법정에 낮은 탄식과 숨죽인 훌쩍거림이 퍼진다. 원영이 누나 변호인은 원영이 누나가 친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을 냈다.

법복을 입은 검사는 신씨가 학대의 심각성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며 방어적 회피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일갈한다. 검사는 살인죄를 부정하려는 나쁜 의도라며 신씨가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가 중대한 양형자료가 돼서는 안 된다며 재판부를 바라본다.

검사는 계모 김씨가 원영이와 원영이 누나에 대한 미안함보다 신씨가 지금 이 자리 법정에 앉아있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는 면담 결과를 밝혔다. 검사는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훔치고 있는 김씨를 바라보며 "법정에서 보이는 저런 모습은 신씨에 대한 미안함일뿐 원영이와 원영이 누나에 대한 미안함으로 비춰지지 않는다"고 단호히 말한다. 누군가 재판부에 들릴 듯 말 듯 '나쁜X'이라고 속삭인다. 속삭임은 법정 안에서 메아리가 되었다.

계모 김씨는 자신의 변호인이 자신의 성장과정을 불행했다고 평하며 불행하고 불운했을 법한 일화들을 줄줄이 읊자 서러움이 복받친다. 남이 얘기하는 자신의 불행에 격하게 복받치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듯 터져 나오는 울음을 간신히 삼킨다. 계모 김씨 변호인은 김씨가 "학대를 통해 원영이를 다른데로 보내려는 마음을 버리고 아이와 함께 살려면 버릇을 고쳐야 된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고 변호한다. 재판장이 "그 버릇이 뭐냐"고 묻자 계모 김씨의 변호인은 "오줌 싸는 것"이라고 답했다. 모두가 말을 잃는다.

검사는 계모 김씨와 신씨의 행동이 '살인죄'에 해당한다는 법리검토 내용을 힘주어 읽었다. 계모는 울고 친부는 변호인에게 건네진 검찰 측의 법리검토서를 두손모아 넘겨가며 꼼꼼히 읽는다. 검사는 그 순간 신씨가 머리가 좋고 치밀하다는 점을 방청석과 재판부에 알린다. 검사가 김씨와 신씨가 원영이가 사망한 당일 암매장 장소를 물색했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신씨는 한숨을 쉰다. 검사가 다시 아이 사망을 은폐하기 위해 아이의 옷을 샀다고 얘기하자 신씨는 두 눈을 꼬옥 감았다.

재판장이 "공소사실인 계속 된 학대에 있어 살인을 선택할 수 있고 아닐수도 있는 그 순간. 부작위에 의한 살인의 선택이라고 할만한 순간이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검사에게 묻자 방청석 전체가 '락스' '락스'라고 속삭이며 대신 답한다.

재판장은 계모 김씨와 신씨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했다.

원영이 친부에게 하나만 묻겠다는 재판장은 왜. 원영이를 친모나 할머니에게 보내지 않았는지를 묻는다. 신씨는 "원영이를 이사람(계모 김씨)이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았다. 예뻐하기도 하고…"라고 얘기하다 따가운 시선에 도로 말을 삼킨다.

원영이의 고통과 딱한 마음. 계모 김씨와 원영이 친부의 잘못을 따져보는 100분에서 1분 모자란 시간. 공판 시작 99분 후 오후 3시 7분. 오늘의 공판은 끝났다.

<법조전문기자·법학박사>

juris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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