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얘기, 도박 얘기, 그만 하시죠

입력 2016. 6. 24. 19:36 수정 2016. 6. 2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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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안인용의 ‘좋아요’가 싫어요

제이티비시 예능프로 <아는 형님>이나 엠넷의 <음악의 신 2>에서는 도박 관련 연예인들이 출연해 자신의 과거를 일종의 캐릭터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제이티비시·엠넷 제공

방송인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다가 범죄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아 활동을 중단한다. 스캔들은 유죄를 선고받아 전과가 된다. 범죄의 유형과 무게에 따라 일정 기간 자숙한 다음 다시 방송에 복귀한다. 방송 복귀는 웹 콘텐츠나 케이블티브이, 종편, 그리고 지상파 순서다. 여기까지는 늘 있어왔던 이른바 ‘사회적 물의를 빚은 연예인의 복귀 공식'이다. 그런데 최근 여기에 하나가 추가됐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나 자신의 과거사를 끊임없이 언급하며 분량을 뽑아낸다.'

지난 17일 방영된 제이티비시 <아는 형님>에서 김희철은 게스트로 출연한 걸그룹 ‘레드벨벳’ 아이린에게 “이수근과 이상민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아래 ‘형님들 과거사 체크 시간’이라는 자막이 뜨고 불법도박 유죄판결을 받은 이수근과 도박장 운영 및 사기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상민의 과거가 언급됐다. 이수근과 이상민의 과거는 이날뿐만 아니라 수시로 언급된다. 특히 이수근은 도박과 관련된 과거를 일종의 캐릭터로 활용한다. 출연진은 이수근에게 “따는 건 이수근을 못 이긴다” 등의 멘트를 던지고, 도박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이수근은 찬물을 들이킨다. 이수근이 스스로 “확실하지 않을 땐 걸지 마라” 같은 멘트를 할 때 자막에는 ‘원조 베팅남’이라는 자막이 뜬다. 이수근은 티브이엔 <신서유기>와 <신서유기 2>를 비롯해 복귀 이후 출연한 제이티비시 <냉장고를 부탁해> 등 대부분의 프로그램에서 도박과 관련한 농담을 서슴지 않는다.

물의 빚은 연예인들 방송 복귀해
범죄나 과거사를 끊임없이 언급하며
분량 뽑아내는 소재로 쓰고

셀프 디스 내세우며
자신 아닌 주변인을 희화화 한다

복귀 방송인이 보여줘야 할 것은
업데이트된 그들의 과거가 아니라
업데이트된 예능감이다

이상민은 자신의 과거와 개인사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1990년대에 누구보다도 잘나가는 가수이자 프로듀서였지만 굴곡이 많았다. 표절 시비로 인한 자살 기도, 도박장 운영 유죄판결, 이혼, 수십억원의 채무 등 방대한 양의 과거사를 갖고 있다. 2012년 방송된 엠넷 <음악의 신>은 이상민이라는 사람과 그가 겪은 수많은 사건을 거대한 농담으로 삼은 프로그램이었다. <음악의 신>은 4년 만에 시즌 2를 시작했다.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와 빚더미에 앉은 지금을 주된 토크의 소재로 삼는 이상민은 최근 공중파와 케이블티브이의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지난 23일 방영된 한국방송 <해피투게더 3>에서는 출연 정지가 풀린 이상민과 이수근이 ‘갱생 프로젝트’ 특집으로 함께 출연했다.

지난 5월 방송을 시작한 <음악의 신 2>에는 불법도박 유죄판결을 받고 이혼 소송까지 겪은 탁재훈이 합류했다. 이상민의 과거에 탁재훈의 과거까지 더해지면서 <음악의 신 2>는 거의 프로그램 내내 이들의 과거를 놓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탁재훈은 “뭐만 하면 도박 얘기, 이혼 얘기뿐”이라며 “이러다가 곧 다시 (도박을) 시작할 것 같다”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탁재훈은 티브이엔 <에스엔엘 코리아 7>에 호스트로 출연해 ‘예능 재활원’ 코너에서 화투 밑장빼기 기술을 알려줬고, 채널에이 <오늘부터 대학생>에서는 빙고게임 종이를 보고는 “나 이런 것 끊었다”고 대답했다. 문화방송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 호루라기를 불며 속죄 댄스를 추기도 했다.

방송인이 자신의 치부라고 할 수 있는 과거를 꺼내며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을 ‘셀프 디스’라고 한다. 셀프 디스는 성공하기 쉽지 않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그러나 쉽게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당사자가 직접 꺼내되 핵심을 찔러야 모두를 무장해제시킬 수 있고, 동시에 당사자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유지하며 자신을 희화화해야 농담으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셀프 디스는 방송에 복귀하는 연예인들이 대중으로부터 면죄부를 받는 가장 쉬운 농담이 됐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제작진도 쉽게 화제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셀프 디스를 자주 유도한다. 복귀 연예인이 쏟아지는 요즘, 셀프 디스는 흔하고 뻔한 기술이 됐다. 내용도 비슷하다. 같은 도박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수근과 탁재훈은 사소한 게임만 언급되어도 한숨을 쉬거나 자조적인 말을 내뱉는다. 2009년에 원정도박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던 김준호는 아직도 한국방송 <1박 2일>에서 이에 연루됐던 자신의 과거를 농담의 소재로 쓴다.

상대방을 당혹스럽게 만들기 위한 공격의 기술로 쓰이기도 한다. <아는 형님>이나 <음악의 신 2>에서 출연자에게, 특히 아이돌그룹 멤버 등 나이가 어린 출연자에게 자신들의 과거를 아느냐고 물어볼 때 이들의 불미스러운 과거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표식이며 동시에 “너는 어려서 모르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된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자신들의 과거 이야기는 술자리에서 듣고 또 들어야 하는 부장님의 인생사와 다르지 않다. 결국 그들의 과거는 나이와 서열을 확인시켜주는 하나의 도구로 사용되거나 자신들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하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범죄 사실이 아님에도 불미스러운 과거의 카테고리에 들어가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들과 같은 취급을 당하는 과거도 있다. 개인사에 불과한 이혼이다. <아는 형님>의 서장훈, <신서유기>의 은지원, <음악의 신>의 이상민과 탁재훈은 모두 이혼 경험이 있다. 이들의 이혼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의에 의해 또는 타의에 의해 끊임없이 ‘어두운 과거’로 언급된다. 서장훈의 경우 이수근에게 도박이 하나의 캐릭터가 된 것처럼 이혼이 그의 캐릭터가 됐다. 방송에서 이혼을 언급하는 것이 이혼을 개인사로 인식하게 하는 데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문제가 안 되겠지만, 이들은 이혼을 거꾸로 도박이나 사기, 기타 범죄와 같은 문제로 몰아간다. 이들의 이혼 문제가 언급될 때 꼭 따라오는 것은 함께 출연한 여성 연예인과 어떻게든 엮어보려는 저급한 농담이다. <음악의 신 2>에서 이상민과 탁재훈은 여성 출연자만 등장하면 서로의 옆구리를 밀면서 킥킥댄다. 이런 장면들은 자신들의 과거가 아닌 여성 출연자의 당황하는 모습을 웃음거리로 만든다. 심지어 이혼한 지 10년도 넘은 이상민의 전부인인 이혜영은 거의 매회 적어도 한 번은 어떤 방식으로든 소환된다. 이 농담이 겨냥하는 곳이 이상민인지 아니면 이혜영인지 헷갈릴 정도다. 시즌 1에서 보여준 스스로를 희화화하는 흥미로운 시선과 농담의 방식은 시즌 2로 넘어오면서 특유의 각을 잃었다.

개인사일 뿐인 이혼은 문제적 과거로 조명되고, 심각한 범죄는 그저 문제적인 사건으로 둔갑한다. 지난 5월5일 방영된 <음악의 신 2> 1화에는 ‘고영욱’이라는 이름과 함께 ‘널 좋아해 촤~하’라고 쓰인 화분이 화면에 잡혔다. 이상민이 “가릴까?”라고 묻자 탁재훈은 “뒤집어놓자. 지금 상황이 안 좋은 상황이니까”라고 말했다. 고영욱은 미성년자 성폭행 및 강제추행으로 실형을 받고 전자발찌를 차고 있다. 미성년자 성폭행 및 강제추행은 농담거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 악질적인 범죄다. 이러다가는 언젠가 고영욱이 스스로 카메라 앞에서 이런 식의 셀프 디스를 하며 웃는 모습을 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안인용 티브이 칼럼니스트

유죄판결을 받고 방송에 복귀하는 이들은 대부분 30대 후반에서 40대인 중년 남성 방송인이다. 경찰과 검찰, 변호사 사무실과 법원을 들락거린 이들의 굴곡 많은 인생사는 휴식 이후의 복귀라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옛날 사람의 이미지와 겹쳐지면서 자연스럽게 아재 개그로 방향을 잡아간다. 아재 개그의 핵심은 주변 사람들을 개의치 않고 자기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농담을 끈질기게 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 농담이 자기의 지난 인생 이야기다. 이들은 셀프 디스를 내세우며 자기 자신이 아닌 주변인을 희화화하는 데 사용하고, 그들의 범죄 사실은 언제든 분량을 뽑을 수 있는 소재가 되어버린다. 시청자의 눈높이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이런 방식의 복귀는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한다. 복귀하는 방송인이 보여줘야 하는 것은 업데이트된 그들의 과거가 아니라, 업데이트된 예능감이다.

안인용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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