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꿈의 직장'의 두 얼굴..40대 간호사의 죽음

2016. 6. 2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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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0년 일한 진료과 이동배치에
괴로워하다 병가내고 극단 선택
전남대병원 간호사 절반 이상
수술실 안 의사 폭언 시달려


⑪ 6개 국립대병원

전남대학교병원 간호사 이아무개(47)씨가 지난 19일 광주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편과 두 딸을 남겨둔 채였다. 실습 평가 1등으로 입사해 그토록 힘들다는 수술실에서도 ‘책임감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24년 경력의 책임간호사였다. 최근 10년 넘게 근무해오던 구강악안면외과에서 다른 과로 배치된다는 통보를 받고 괴로워하다 수면장애와 우울증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동료들은 “직무 스트레스로 인한 명백한 재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병원 직원들이 아프다. “일생을 의롭게 살며 간호직에 최선을 다한다”는 선서로 시작했던 이씨의 간호사 생활은 왜 죽음으로 끝난 걸까. 이씨는 병원 쪽으로부터 부서 이동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를 듣고 매우 낙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동료 간호사는 “일을 잘한다는 이유로 3년 전 의료기관 평가 준비 업무에도 동원돼 격무에 시달리며 우울증까지 겪었는데 40대 후반의 그에게 부서를 바꾸라는 말은 다른 진료과목 업무를 새로 배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말과 같았을 것”이라고 했다. 4주간 병가를 냈던 이씨는 복귀 시점인 금요일에 출근하지 않고 일요일 오후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전남대병원은 2006년에도 직원 4명의 잇단 자살로 노동청의 특별근로감독을 받았다. 이 병원 노동조합은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10년이 지났지만 인권과 근무환경 문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며 병원 쪽에 업무상 재해 인정 등을 요구했다.

21일 광주 전남대병원 앞에서 19일 숨진 수술실 간호사의 업무상 재해 인정을 촉구하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전남대병원지부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제공

보건의료노조의 2006년과 2015년 전남대병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간호사 가운데 ‘지난 1년 동안 언어폭력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각각 60.8%, 58%에 이르렀다. 9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게 없었다는 얘기다.

이씨의 또다른 동료 간호사는 “수술실 안에서는 욕설이나 모욕적인 꾸짖음 문제가 심각하다”며 “폭언이 심한 의사와 수술을 할 때는 심장이 뛰고 긴장을 하게 돼 오히려 더 실수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수술 중 의사가 가위가 잘 안 든다면서 던지거나 “닥쳐라”, “멍청하다”, “싸가지 없다”, “돈만 축내는 것들” 등 모욕적 폭언도 많다고 했다. 2005년 11월에 자살한 전남대병원 수술실 간호사의 경우 의사의 심한 꾸중과 욕설, 선배 간호사의 야단 등에 시달리며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사실이 법원에서 인정됐다.

전남대병원 사례가 특별한 것도 아니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해 전국 83개 병원 직원 1만8629명을 상대로 벌인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를 보면, 54.2%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상담 치료를 받았거나 필요로 한다’고 답했다. 20~30대 기혼여성 간호사 10명 중 1명은 유산 또는 사산을 경험(10.1%)했다. 이씨처럼 수면장애에 시달린다고 응답한 이도 5명 중 1명꼴(22.5%)이었다.

환자를 보듬고 치유하는 간호사들에게 병원은 과연 안전한 직장인가? 이씨의 죽음은 아프게 묻고 있다.

수술실에 스며든 ‘폭력’…병원 노동자들이 병든다

2005년 11월부터 2006년 8월까지 9개월이란 짧은 기간 동안 전남대병원에서 4명의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보건의료노조와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당시 전남대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를 대상으로 벌인 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60.8%가 이전 1년 동안 언어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고, 13.1%가 신체적 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얼마 뒤 전남대는 광주지방노동청의 특별근로감독을 받았다.

10년이 흘렀다. 그리고 지난 19일 전남대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간호사 이아무개(47)씨가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보건의료노조의 ‘2015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전남대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의 58%가 이전 1년 동안 폭언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전체 병원을 대상으로 할 경우, 2006년 실태조사 보고서에 기록된 1년간 언어폭력을 경험한 간호사 비율은 44.8%였다. 그런데 2015년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폭언을 경험한 간호사의 비율은 59.6%(전체 직원 평균 49.9%)다. 10년 전보다 오히려 14.8%포인트 증가했다.

전국 83개 병원 직원(간호사, 보건직, 시설기사, 사무행정직 등 포함) 1만8629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54.2%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상담 치료를 받았거나 필요로 한다’고 응답했다. 20~30대 기혼여성 10명 중 1명이 유산 또는 사산(9.8%)을 경험했고, 20명 중 1명은 난임 또는 불임(5.5%)을 겪었으며, 전체 직원 5명 중 1명은 수면장애(22.5%)를 겪고 있다.

정부와 대기업이 앞장서 의료산업 선진화를 외치는 상황인데, 대체 병원에서 일하는 이들에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2016년 5월 현재 43개의 상급종합병원, 295개 종합병원을 포함해 전국에 6만7239개(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 기준·약국 제외)의 의료기관이 존재한다. <한겨레>는 이 중 보건의료노조의 실태조사와 서울대병원 노동자 13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체 설문조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공개된 공시자료 등을 토대로 서울대병원, 부산대병원, 전남대병원, 전북대병원, 충남대병원, 경상대병원 등 6개 국립대병원의 일자리 질을 분석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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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서 욕하고 집어던지고…96%가 언어폭력 경험

직원 절반이 폭언 경험 국립대병원은 ‘좋은 병원’의 상징이다. 국립대학교 부속기관으로서 교육과 연구의 거점인 동시에 지역을 대표하는 3차 의료기관 역할도 수행한다. 또한 국립대병원은 상대적 고임금에 높은 고용안정성을 갖춘 ‘좋은 일자리’로도 인식된다.

하지만 <한겨레> ‘좋은 일자리 프로젝트’의 정신과 신체의 안전 분야 전문가위원인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6개 국립대병원을 평가해달라는 요청에 “병원 간의 우열을 가릴 수는 있겠지만 모두 안 좋은 상황에서 어느 병원이 더 안 좋고 어느 병원이 덜 안 좋은지를 판단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라며 개별 평가를 하지 않았다.

특히 직장 내 폭력은 어느 병원이 좋고 나쁘고를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했다. 국내 최고 의료기관이라고 알려진 서울대병원은 설문조사에 응답한 노동자의 59.1%가 지난 한해 사이 직장에서 폭언을 경험했고, 10.6%가 폭행, 16.7%가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전북대병원은 응답자의 59.8%가 폭언을 겪었고, 충남대병원(53.5%), 부산대병원(51.2%), 경상대병원(48.1%)도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폭언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응답자 전체 기준으로 폭언의 주체는 환자(33.4%)와 보호자(29.4%)가 많았지만 의사(16%)와 상급자(14%)도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폭언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간호사 중 41.6%는 의사로부터 폭언을 들었다고 밝혔다. 조성현 서울대 간호대학 교수는 “간호사를 비롯한 보건의료노동자는 기본적으로 환자에 대한 헌신도가 높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환자에 의한 언어폭력보다 동료와 의사에 의한 폭력에 더 상처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좋은 일자리’라는데 직장폭력 심각
폭언 59%, 성희롱 17%, 폭행 11%

■ 수술실…일상화된 폭력 2006년 전남대병원에서 숨진 노동자 4명 중 2명은 수술실 간호사였다. 그리고 지난 1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씨도 수술실 간호사였다. 직접적 계기는 본인의 뜻에 반한 배치 전환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병원의 일상화된 폭력 문화와 만성적인 인력부족이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씨의 한 동료는 “수술실은 잠깐의 실수가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긴장된 곳이다.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교수님들이 그 스트레스를 간호사에게 표출한다. 간호사가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수술이 잘 안 풀릴 때도 간호사에게 욕을 하고 기구를 집어던진다”며 “수술 들어가기 전에 교수님 기분이 괜찮은지 눈치를 보게 되고, 뭔가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면 수술실 들어가기가 겁이 난다”고 말했다. 지난해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전남대병원 수술실 간호사 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96.6%가 1년 동안 언어폭력을 경험했고, 이 중 82.8%가 심리적 괴로움을 호소했으며, 96.5%는 의욕 저하와 우울 증상을 호소했다. 37.9%는 ‘폭력 상황을 경험한 뒤 죽고 싶었다’(매우 그렇다 10.3%, 약간 그렇다 27.6%)고 했다. 기구가 잘 들지 않는다며 집어던지거나 욕설을 하는 것은 물론, 간호사에게 “멍청하다”, “돈만 축낸다” 같은 인격모독성 발언을 한 사례가 다수 조사됐다.

이씨는 구강악안면외과 책임간호사로 10년 넘게 일하는 동안 다른 분야는 여러 수술실에 들어가는 신규 간호사보다 모르는 상태였다. 이씨의 동료는 “40대 후반의 나이에 전혀 모르는 다른 수술실로 들어가야 한다면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기술과 장비는 그사이에 엄청나게 발전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채 수술실에 들어가면 큰 실수나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또다른 간호사는 “만약 이씨가 배치 전환되기 전에 충분히 준비하고 교육받는 시간을 보장받았으면 그렇게 극단적인 압박감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는 항상 인력이 부족하고 신규 간호사조차 제대로 일을 배울 시간을 주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남대병원 노조 관계자는 “필요한 인원에 비해 인력이 부족한 채 운영되다 보니 교육을 받으러 나오는 실습간호사까지 교육은 뒷전이고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실습간호사가 없으면 현장이 돌아가지도 못할 정도로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고 전했다.

“수술실 스트레스 간호사에 표출
‘돈만 축낸다’ 모독발언도 다수”

■ 부족한 인력, 늘어나는 노동 2015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80.5%가 “현재 근무인력은 부족한 수준”이라고 응답했다. 이는 국립대병원 역시 마찬가지다. 충남대병원은 응답자의 88.1%가, 전북대병원은 81.1%, 서울대병원은 80.5%가 인력부족을 호소했고, 전남대병원(78.1%), 부산대병원(72.5%), 경상대병원(72.0%)도 대다수의 직원들이 인력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공공기관 방만경영 정상화계획’을 추진하면서 국립대병원에 인건비 절감을 요구했다. 건강과대안 연구위원인 이상윤 녹색병원 직업환경의학과장은 “대학병원에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은 직원들이 얼마나 정신없이 힘들게 일하는지 안다. 일반적인 공기업과 같은 잣대로 국립대병원을 방만경영이라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며 “국립대병원의 적자 구조는 정부가 의료를 시장에 내맡겨 버린 결과 국립대병원조차 다른 민간병원과 설비 경쟁을 벌여야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2013년 기준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 수는 2.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3명의 60%대 수준이고, 인구 1000명당 간호사 수는 5.2명으로 오이시디 평균 9.1명의 50%대 수준이다.

반면 시장에 내맡겨진 의료기관은 규모의 경쟁을 벌이면서 덩치만 키워왔다.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8.8개로 오이시디 평균인 5.1개를 훌쩍 넘어 일본에 이어 두번째로 많다. 인구 100만명당 시티(CT·컴퓨터단층촬영) 수는 37.7대(오이시디 평균 24.6대), 엠아르아이(MRI·자기공명영상) 수는 24.5대(오이시디 평균 14.3대)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병원들은 인력보다는 시설에 투자하고 있다. 부산대병원 관계자는 “지난해 외상센터와 호흡기센터를 짓는다고 1000억원을 차입했다. 그러고는 빚 갚느라 돈 없다고 올해부터 초과근무를 해도 수당을 신청하지 말라고 하고, 연차, 휴가는 다 쓰라고 한다. 그러면 주간에 6명이 근무해야 할 걸 5명이 하고, 야간에 5명 근무할 걸 4명이 해야 한다. 원래도 숨도 못 쉬게 힘든데, 인력을 줄여서 하니 견디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대도 외래암센터(사업비 413억원), 의학연구혁신센터(사업비 623억원)를 건립한 데 이어 총사업비 942억원이 투입되는 첨단외래센터 건립을 추진하는 등 병원마다 신규시설과 첨단설비 투자에 힘쓰고 있다.

부족한 인력은 비정규직으로 채우고 있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올해 정원은 6334명이지만 5485명만 채워져 있다. 그리고 정규직의 30.0%인 1260명의 비정규직(직접고용·간접고용 비정규직 합)이 일하고 있다. 부산대병원의 비정규직 규모는 정규직 대비 37.7%고, 경상대병원은 무려 53.7%다.

인력보다 시설 투자 경쟁
72∼88%가 “인력 부족하다”

■ 인력 부족→의료질 저하 병원의 인력부족 문제는 두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노동자의 건강 악화, 하나는 환자에게 미치는 의료서비스 질 저하다. ‘인력부족으로 인한 노동강도 심화로 지난해보다 건강상태가 악화됐느냐’는 질문에 충남대병원은 76.4%가 ‘그렇다’고 응답했고, 서울대병원은 72.9%가, 그나마 비율이 낮은 부산대병원조차 절반이 넘는 53.7%가 건강이 악화됐다고 답했다.

이럴수록 병원은 점점 폭력적인 공간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다. 간호사 특유의 괴롭힘 문화인 ‘태움 문화’ 역시 이런 상황과 맞물려 있다. 서울대병원의 한 간호사는 “서울대병원 같은 대형 병원은 중증도가 높은 환자들이 오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노동강도가 세다. 엄청 힘든데 신규 간호사가 들어오면 기존 간호사들이 신규 간호사의 실수를 용납 못하는 거다. 경력이 10년 넘은 간호사도 자기 코가 석자라 이 간호사의 실수를 해결해줄 수가 없다. 결국 책임 추궁으로 가게 되고 괴롭힘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응답자의 무려 91%는 ‘인력문제로 인해 환자에게 제공할 의료서비스의 질이 저하됐다’고 답했고, 경상대병원은 87.4%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충남대병원(87.3%), 전남대병원(86.6%), 전북대병원(83.4%), 부산대병원(76.8%)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의료서비스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수행하는 것인데 의료인력의 노동환경이 열악할수록 환자 역시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김윤미 을지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등이 쓴 논문 ‘의료기관 간호사 확보 수준이 수술환자의 사망, 폐렴, 패혈증, 요로감염에 미치는 영향’(2012년)을 보면, 간호사 1명이 돌보는 병상 수가 2개 미만인 경우(간호등급 1등급 이상)에 비해 간호사 1인당 병상 수가 3~4개(4·5등급)로 늘어나면 사망률이 78% 높아진다.

“너무 힘들어서”…55∼77%가 “병원 떠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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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서비스 질 저하 부르고
53∼76% “작년보다 건강 악화”

■ 여기가 국립대병원 맞나? 간호사를 비롯해 병원에서 보건의료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환자의 생명을 위해 헌신한다는 직업자긍심이 높고, 특히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은 영리병원이 아닌 의료공공성을 추구하는 공공병원에 다닌다는 자부심도 높다. 실태조사 결과 6개 국립대병원 응답자의 56%가 높은 직업자긍심을 보였다. 취업정보 사이트 ‘잡플래닛’에 서울대병원 직원들이 남긴 리뷰 중 장점 관련 키워드 3위는 ‘자부심’이었다. 부산대병원에 다니는 한 직원은 잡플래닛에 “공공병원에서 일한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이 있어야 견딜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최근 국립대병원들조차 앞다퉈 수익성을 내세우고 영리를 추구하면서, 이로 인해 직원들이 받게 되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서울대병원의 한 직원은 “한국 최고의 공공병원에 다닌다는 자부심이 남달랐는데 요즘에는 우리들끼리 ‘여기가 아산병원이나 삼성병원이냐? 우리 병원이 왜 이런 검사까지 해야 되느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를 많이 낸다. 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저하됐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중인 서울대병원의 경우 응답자의 78.2%는 “우리 병원은 영리 추구 경영 전략을 취한다”고 답했다.(매우 그렇다 39.8%, 그렇다 38.4%) 서울대병원 직원들은 성과급제가 도입되면 돈 잘 버는 부서를 중심으로 영리적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 전남대병원 역시 응답자의 과반인 51%가 병원이 영리 추구 경영전략을 추구한다고 응답(보통 40.8%, 아니다 7.2%)했다. 충남대병원(41.8%), 경상대병원(40%), 부산대병원(38.3%) 역시 상당한 수의 직원들이 병원의 영리화를 우려하고 있었다. 이는 83개 병원 전체 평균(39.6%)보다 오히려 높은 수치다.

“공공병원 다녀” 자부심 높았는데
“영리추구 경영으로 사기 저하”

■ 병원을 떠나고 싶은 병원 노동자 서울대학교병원에서는 종종 ‘백일잔치’가 열린다. 이 병원에서 태어난 신생아를 위한 잔치가 아니다. 입사하고 100일을 버틴 신입 간호사를 위한 잔치다. 첫 업무를 시작하고 100일이 지난 뒤에도 병원을 그만두지 않고 버텨낸 간호사에게는 동료들의 축하와 함께 양말 따위의 소소한 선물이 증정된다. 혹독한 업무로 인해 신규 간호사들이 몇달을 못 버티고 병원을 그만두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의 한 간호사는 “여기는 대부분의 간호사들이 오고 싶어하는 우리나라 최고 병원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정말 웬만하면 다니려고 한다. 그런데 오죽하면 나가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고강도 노동에 위협받는 것은 간호사만이 아니다. 서울대병원에서는 2014년 환자급식 조리업무를 담당하던 40대 노동자가 과로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고, 지난해에는 진단검사의학과에 소속된 30대 보건직 노동자가 야간 근무 중 급성심장마비로 쓰러져 숨지기도 했다.

서울대병원은 응답자의 57.9%가 ‘최근 3개월 사이에 이직을 고민했다’고 응답했다. 부산대병원은 응답자의 54.7%가, 전남대병원은 59.9%, 전북대병원은 59.8%, 충남대병원은 63.3%가 이직을 생각했고, 경상대병원은 무려 77.3%가 이직을 고민했다고 답했다. 이직을 고려하는 1순위 이유로는 병원마다 수치는 다르지만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전부 “일이 너무 힘들어서”(전체 평균 38.6%, 전체 간호사 평균 44.1%)다.

임지선 허승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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