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조선] 아모레, 중국 변두리 선양서 상하이로..프리미엄 전략 먹혔다

박용선 기자 2016. 6. 2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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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은 2002년 라네즈를 중국시장에 선보인 이후 이니스프리(2012년), 에뛰드(2013년), 아이오페(2015년) 등을 출시하며 브랜드를 다양화했다. 사진은 중국 베이징 이니스프리 매장. /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제2연구동 ‘미지움’

20대 후반 중국인 여성 관광객이 화장품 매장에 들어선다. 그는 곧 2층으로 올라가 색소침착 정도, 유분과 수분량, 탄력, 눈가 주름, 모공 등 피부 상태를 측정받았다. “유분이 극도로 부족한 건성 피부입니다.” 평소 수분이 부족하다고 여겨, 수분 공급 위주로 피부를 관리한 그였다.

하지만 진단 결과는 달랐다. 그는 1층으로 내려가 측정 결과에 맞는 화장품 샘플을 받았다. 평소 사용하지 않던 로션, 도시형 노화를 방지해주는 에센스, 부족한 유분기를 보충해주는 탄력크림 등이다. 그의 피부 데이터는 아모레퍼시픽의 제품 연구개발(R&D)에 활용된다.

5월 30일 아모레퍼시픽의 기능성 브랜드 ‘아이오페’ 명동점 모습이다. ‘철저한 소비자, 시장 조사→제품 R&D→판매’로 이어지는 아모레퍼시픽의 비즈니스 전략은 한국이나 중국시장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2015년 6월 베이징 한광백화점에 입점한 ‘중국 아이오페’ 역시 중국 여성의 피부 연구를 위한 기반을 강화하고 피부 고민별 정확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중국시장 진출 전략에 대해 “중국 현지시장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경쟁사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진 서 회장의 설명이다.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과 중국 아모레퍼시픽 상하이연구소의 소비자연구팀이 공동 협력해 중국 고객들의 피부는 물론 고객 특성, 고객 선호도 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중국 내 신제품이나 인기제품, 일반적인 소비자 트렌드 조사와 정보 수집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이 고속성장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2015년 글로벌 사업 부문 매출 1조2573억원을 달성했다. 전년대비 51% 성장했다. 중국시장 공략이 주효했다. 아모레퍼시픽은 2014년 중국시장에서만 467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 대비 약 37.9% 증가한 수치다. 2015년은 이보다 높은 45~50%대 성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 성공비결 1 철저한 中시장 조사… ‘라네즈’ 준비만 3년

아모레퍼시픽의 중국시장 진출은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시장 개방이 가속화되기 이전인 1993년 베이징, 상하이 같은 대도시가 아닌 변두리인 선양(瀋陽)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대도시 진출 이전에 중국시장을 이해하고 철저한 시장 조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선양뿐만 아니라 장춘(長春), 하얼빈(哈爾濱) 등 동북지방을 중심으로 ‘아모레퍼시픽’ 브랜드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200만명에 달하는 동북지방 조선족의 ‘한국 브랜드 인지도’를 활용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조선족은 상대적으로 한국에 대한 거리감이 적고 한국산 화장품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선양은 지리적·도시적 특성상 장기적인 발전이 어려운 지역이다. 때문에 아모레퍼시픽은 물류·유통의 중심지로, 중국 전 지역을 통합하고 지휘할 수 있는 상하이 진출 계획을 세웠다. 선양에서 성장 기반을 닦은 후 본격적으로 중국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은 1999년 12월 상하이 진출을 위한 조직을 만들고 3500명에 달하는 현지 소비자 조사 등 3년간 철저한 시장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 브랜드 중 ‘라네즈’를 중국시장에 선보이기로 결정했다. 중국시장의 화장품 주요 수요층이 20대 젊은 여성이란 점이 라네즈의 고객층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고가 전략을 펼쳤고 이에 맞는 백화점을 유통경로로 선택했다.

하지만 당시 컨설팅업체들은 ‘고가, 백화점 판매’ 전략이 성공하기 힘들다고 우려했다. 로레알(프랑스), P&G(미국) 등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는 중국시장에서 경쟁해 승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모레퍼시픽 경영진의 생각은 달랐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고가 브랜드로 자리 잡아야 이후 중저가 시장으로 사업을 확대할 수 있고, 중국 소비자 특성상 브랜드 충성도가 낮기 때문에 처음 시장에 진입할 때 확실한 브랜드 충성도를 심어줘야 한다. 현재 사업이 어렵더라도 미래 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중국은 한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로, 유사한 피부 특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한국 화장품 브랜드가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보다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 성공비결 2 중국진출 앞서 홍콩서 사전 테스트

아모레퍼시픽의 중국시장 ‘사전 조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라네즈 중국시장 진출에 앞서 2002년 5월, 아모레퍼시픽은 글로벌 브랜드의 각축장이자 ‘중국시장의 창’이라 불리는 홍콩시장에 전략적으로 진출했다. 홍콩을 테스트 마켓으로 활용한 것이다. 이후 아모레퍼시픽은 2002년 7월 상하이 공장을 준공하며 중국시장에서 라네즈 판매에 나섰다.

현재 라네즈는 상하이의 1급 백화점 등 주요 백화점 360여개에서 매장을 운영 중이고 ‘워터 슬리핑 마스크(수면 마스크팩)’ 등이 인기를 끌며 중국시장 내 글로벌 브랜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라네즈는 2013년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넘어섰고 해외 매출 중 절반 이상이 중국시장에서 나왔다.

아모레퍼시픽의 한방화장품 ‘설화수’ 역시 중국에 앞서 홍콩시장에 출시하는 전략을 펼쳤다. 설화수는 2011년 3월 베이징 백화점 입점에 앞서 2004년 9월 홍콩 센트럴빌딩에 부티크 형태의 독립매장을 열었다. 설화수는 베이징 1호점 오픈 이후 현재까지 베이징, 상하이 등 주요 도시 최고급 백화점에 73개 매장을 입점시켰다.

설화수는 2014년 10월 중국 언론사 인민망(人民網)의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한국 명품’ 조사에서 화장품 부문 1위에 선정됐고 2015년 9월에는 ‘중국인 관광객 만족도 조사’에서 한방화장품 부문 1위를 수상했다.

이후 아모레퍼시픽은 중저가 브랜드인 이니스프리(2012년), 에뛰드(2013년)와 기능성 브랜드인 아이오페(2015년) 등을 중국시장에 출시하며 브랜드를 다양화해 나갔다. 2014년에는 급속하게 성장하는 중국시장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중국 생산·연구·물류의 통합 허브인 상하이 ‘뷰티사업장’을 준공했다.

◆ 성공비결 3 한류 스타 활용…에뛰드 오픈 첫날 1000명 방문

아모레퍼시픽은 한류(韓流)도 적극 활용했다. 전통적으로 광고 모델을 쓰지 않는 설화수를 제외하고 라네즈는 송혜교를, 이니스프리는 이민호와 소녀시대 윤아를, 에뛰드는 샤이니와 F(X)를 내세우며 제품을 홍보했다. 이들 한류 스타는 중국 현지매장 팬사인회 등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아모레퍼시픽 중국시장 안착을 견인했다.

2013년 11월 중국 상하이에 1호점을 낸 에뛰드는 오픈 첫날 1000명 이상의 고객이 방문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에뛰드 광고 모델 샤이니의 민호와 키가 오픈 기념행사에 참석하면서 중국 고객들이 몰려든 것이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에뛰드 중국 1호점 오픈 전날부터 고객들이 입장을 위해 줄을 섰는데, 그 줄이 3일간 끊어지지 않는 진풍경을 연출했다”며 “TV, 온라인 미디어 등 중국 현지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고 말했다.

◆ 성공비결 4 연구원 해외파견해 선진기술 습득

‘에어쿠션’은 아모레퍼시픽의 연구개발(R&D)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제품이다. 에어쿠션은 선크림, 메이크업베이스, 파운데이션 등 기초 메이크업 제품을 특수 스펀지 재질에 복합적으로 흡수시켜 팩트형 용기에 담아낸 제품이다. 여러 단계가 필요한 화장을 한 번에 할 수 있게 해 세계 메이크업 트렌드를 바꿨다는 평을 받는다. 아이오페 에어쿠션은 2008년 출시 이후 전 세계에서 1초당 한 개씩 팔리며 아모레퍼시픽 대표 상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아모레퍼시픽이 성장할 수 있었던 또 다른 비결은 R&D다. 이는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주부터 내려온 경영철학이기도 하다. 아모레퍼시픽은 ‘철저히 기술과 품질로 고객에게 인정받겠다’는 신념 아래 1954년 화장품업계 최초로 연구실을 개설했다. 1957년부터는 매년 연구원들을 유럽과 일본 등지로 보내 선진 기술을 습득하도록 했다. 1992년에는 경기도 용인에 제1연구동인 성지관(成鋕館)을 완공했다.

아모레퍼시픽은 1990년대 중반부터 피부과학연구소에 집중적으로 투자했고 1994년에는 의약연구소를 설립해 신약개발과 함께 새로운 건강식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 노력했다. 2001년에는 헬스연구동을 신축, 화장품의 효능과 안전성 연구에 집중했다. 동시에 미용과 건강 분야 기능성 식품을 개발하며 미(美)와 건강을 고려한 ‘토털 뷰티 사업’을 추진했다. 2006년에는 식품연구소를 신설해 녹차, 건강식품 등 헬스케어 분야 R&D 강화에 나섰다.

이후 아모레퍼시픽은 2010년 제2연구동 ‘미지움(美智um)’을 준공했다. 이로써 현재의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성지관, 미지움)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은 화장품, 식품, 피부연구를 통한 신소재 개발(material), 고객의 니즈와 가치를 발굴하는 고객 감성 공학(consumer science), 노화, 미백, 탈모방지 효능을 연구하는 생명과학(biology), 안정성, 효능 등을 연구하는 포뮬레이션(formulation) 분야로 구분된다”고 설명했다.

◆ 성공비결 5 창업주부터 이어진 R&D 경영

미지움은 2006년 아모레퍼시픽 대표이사에 오른 서경배 회장의 ‘R&D경영’ 첫 작품이기도 하다. 서 회장은 선대회장의 R&D경영 철학을 이어받아 R&D 투자를 늘려나갔다. 아모레퍼시픽의 R&D 투자금액은 2007년 468억원에서 2010년 662억원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서 회장은 그 답을 새로운 연구 공간 확보에서 찾았다. 그는 “공간이 생각을 지배한다는 모티브 아래 아모레퍼시픽 연구원들이 창의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을 짓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하 2층, 지상 3층 총 2만6000㎡ 규모의 미지움은 전면이 탁 트인 공간으로 구성했고 자연광 유입을 극대화해 빛과 공기순환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설계됐다. 쾌적한 환경 속에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최첨단 연구시설은 기본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등 아시아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2015년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내에 ‘아시안 뷰티 연구소(asian beauty laboratory)’를 신설했다. 아시안 뷰티 연구소는 전 세계 고객의 아름다움을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아시안 뷰티를 구현하는 핵심기술·제품을 개발하는 연구 조직이다. 이 연구소는 인삼, 콩, 녹차 등 아시안 뷰티 특화 소재를 통한 R&D를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아시아지역 소비자 연구의 경우, 아시아 주요 15개 도시의 연교차와 연강수량 등을 바탕으로 한 기후 환경 연구에 따라 4개의 그룹으로 카테고리를 나누고 그룹별 맞춤 제형 개발과 지역 맞춤형 인체적용 시험·미용법 연구를 하고 있다. ‘아이오페 에어쿠션’을 예로 들면, 한국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해외에 똑같이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싱가포르·인도네시아·베트남 등 각 국가 여성의 피부색을 연구해 그 특징을 반영한 각기 다른 아이오페 에어쿠션을 출시하는 것이다.

◆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색조 화장품 발라보며 제품 개발·테스트

서경배(54·사진)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제품 개발에 대한 열정은 남다르다. 집을 ‘제품 실험실’이라고 부를 정도다. 서 회장을 비롯해 부인과 딸들 가족 모두가 고객의 입장에서 모든 제품을 다 써본 후 솔직한 후기를 내놓는다. 서 회장 본인도 예외가 아니다. 서 회장은 “실력이 없어서 마스카라는 못 써보고 있지만 립스틱, 매니큐어 등 색조 화장품까지 다 발라보며 직접 테스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제품 개발·테스트는 서 회장뿐만 아니라 아모레퍼시픽 대부분 직원이 하고 있다. 서 회장은 “고객에게 최고의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선 회장뿐만 아니라 직원들이 제품을 직접 써보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며 “제품을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조언과 문제점은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경배 회장의 ‘애장품 1호’는 서성환 선대회장의 여권이다. 그는 힘든 순간이 닥칠 때마다 ‘선대 회장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며 자문한다. “선친께서 30대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고생하셨을 모습을 종종 떠올리는데, 그러면 마음 속 고민에 대한 해답이 나오곤 합니다. 한창 피가 끓던 시절 선친의 창업 기운이 느껴지거든요.” 여권에는 1960년대에 프랑스로 가기 위해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6개 국가를 거친 흔적이 남아있다.

서경배 회장은 1987년 태평양화학(현 아모레퍼시픽)에 입사, 2006년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2013년 회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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