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강렬한 女전사로 다시 태어난 '아노니'

2016. 6. 2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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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2일 수요일 흐림. 마법의 성. #213 Anohni 'Drone Bomb Me'(2016년)
[동아일보]
내가 죽은 자리에선 향수 냄새가 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두 번째 생이 있다면 꼭 예쁜 여자로 태어나 보고 싶다.

적당히 예쁜 여자 말고. 긴 속눈썹을 가만히 내리까는 것만으로 10만 개의 심장을 찢어발기는 조용한 폭군. 날 소유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숱한 이들이 해안 절벽에 부서지는 수천억 물방울처럼 좌절과 비탄에 빠질, 그렇게 예쁜 여자. 그는 타고난 것만으로 찬미의 대상이 된 신과 같을 것이다.

얼마 전 휴가 가는 비행기 안에서 ‘대니시 걸’을 봤다. 예술가로서 명성을 얻기보다 차라리 평범한 여자이길 바랐던 덴마크 화가 릴리 엘베(1882∼1931)의 삶을 다룬 영화.

영화감독 워쇼스키 형제가 남매를 거쳐 워쇼스키 자매가 된 것과 같은 웃지 못할(울어야 할) 일은 대중음악계에도 있다. 미국 밴드 ‘앤터니 앤드 더 존슨스’의 리더이자 보컬인 앤터니 헤가티(45·사진)가 얼마 전 새로운 예명 ‘아노니’로 첫 앨범을 냈다.

그의 노래는 한 음절, 한 음절 탄식하고 흐느끼는 듯하다. 빠르고 깊게 떠는 특유의 창법과 중성적인 목소리가 전달하는 슬픔은 별다르다. 루 리드(벨벳 언더그라운드)는 “그가 노래하는 걸 처음 보고 내 앞에 천사가 실존함을 깨달았다”고 했다.

트랜스젠더인 헤가티는 작년 2월,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을 이제 아노니라 불러 달라고 주문했다. 해외 인터뷰에서 그를 가리키는 인칭대명사는 ‘he’에서 ‘she’로 변했다.

감성적인 현악과 피아노를 노래 배경으로 삼아온 헤가티는 이제 진한 전자음을 갑옷처럼 두르고 아노니란 이름의 전사로 재림했다. 앨범의 편곡은 가시 돋친 전자음악으로 유명한 허드슨 모호크,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가 도왔다. 음반 제목은 ‘Hopelessness(절망)’.

아름다운 작품이다. 우는 듯한 아노니의 가창이 신시사이저 팝의 발랄함과 이루는 대비는 짜릿하다. 메시지는 어느 때보다 날이 섰다. 국가정보기관의 무차별 사찰, 드론에 의한 민간인 폭격, 미국의 사형제 존속, 지구온난화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미국 대통령의 위선을 꼬집는 ‘Obama’란 곡도 있다. ‘Execution’에서 아노니는 ‘사형/그것은 아메리칸 드림/중국, 사우디, 북한, 나이지리아처럼’이라 노래한다.

어쩐지 이번 생에선 예쁜 여자가 되고 싶지 않다. 몸에 칼을 대는 것도 무섭다. 그 대신 강한 사람이 돼 보기로 한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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