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지적장애 13세, 또 '성매매' 둔갑 판결..불통 법원

CBS노컷뉴스 김광일 기자 입력 2016. 6. 22. 06: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 성토 쏟아져도 결국엔 안하무인
'하은(가명·당시 13세)이'가 실종 당시 신었던 신발과 매일밤 끌어안고 자던 곰인형 (사진='하은이' 어머니 제공)
13세 지적장애아 '하은이(가명)'에게 또다시 '성매매' 판결이 내려졌다.

상식과 동떨어진 판결이 CBS노컷뉴스의 단독보도로 알려진 이후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성토가 쏟아졌으나 법원은 여전히 '불통' 그 자체였다. (관련 기사 : 지적장애 13세 하은이, '성매매女' 낙인찍힌 사연)

◇ 숙박을 대가로 성매매? 이번에도 '자발적 매춘녀' 규정

서울동부지법 민사32단독 재판부는 하은이 측이 이모 씨를 상대로 정신적 피해보상을 요구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기각했다고 22일 밝혔다.

이 씨는 지난 2014년 6월 스마트폰 채팅을 통해 만난 하은이(당시 13세)에게 '숙박'을 대가로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형사재판에 넘겨져,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하은이 측은 "이 씨가 자신의 성적 욕구를 푸는 데 하은이를 이용해 치료비 등의 손해가 발생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최근 패소한 것.

앞서 하은이가 집을 나갔던 당시 만났던 7명의 남성 중 다른 2명에 대해 선고된 엇갈린 판결이 알려진 뒤, 법원행정처장까지 국회에서 문제를 인정하고 나섰으나 이번에도 법원은 아이를 그저 '자발적 매춘녀'로 규정했다.

지난달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만 13세 지적장애아가 어떻게 성매매를 했다고 판결할 수 있냐"는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지적에, "충분히 일리 있는 지적"이라며 "상고심에서 적정한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 계속 엇갈리는 판결…기각 사유는 달랑 한 문장

이번에 재판부가 판결문에 적시한 사유는 "앞서 서울서부지법 민사21단독부와 대전지법 천안지원 민사1합의부가 내린 판결을 참조했다"는 한 문장뿐이었다.

액수가 크지 않은 민사 사건의 경우 판결문에 선고 이유를 기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소액사건심판법에 따른 것.

판결 이유. (사진=판결문 캡처)
재판부가 판결에 참조했다는 서울서부지법 민사21단독 재판부는,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만나 성적으로 유린한 또다른 남성 양모(25) 씨를 상대로 하은이 측이 낸 소송을 기각했다.

그러면서 "하은이가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반면 같은 달 서울서부지법 민사7단독 재판부는 "하은이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능력이 부족하다"며 하은이 측이 또다른 남성 김모 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같은 법원에서 두 판결에 대한 상반된 입장을 내놨으나 이번 동부지법 재판부는 이 중 "하은이가 성적 자기결정 능력이 있다"는 판결만 취한 것.

대전지법 천안지원 판결은 지난 2013년 한 가출 청소년 A(당시 15세·여) 양이 자신의 성을 매수한 29명의 남성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을 냈다 기각된 건이었다.

하지만 A 양은 하은이처럼 지적장애를 갖고 있지도 않았고 알선자를 통해 성매매를 벌였다. 지능지수 7세 수준에 사회적 적응능력은 이보다도 떨어지는 하은이의 경우와는 완전히 다른 사건을 재판부가 슬쩍 끼워 넣은 것.

이에 대해 동부지법 측은 "해당 판사는 관련된 판결들을 모두 검토했으나 '기각'된 결론이 맞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 "이번엔 다를 거라 예상했는데…황당한 판결에 분노"

시민단체는 곧바로 반발하고 나섰다.

10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는 "CBS노컷뉴스와 이후 SBS 그것이알고싶다 등 보도 이후 수많은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판단이라고 지적해 이번엔 다를 거라 예상했다"며 "그랬는데 이번에 또 황당한 판결이 나와 너무나 화가 난다"고 밝혔다.

앞서 지적장애를 갖고 태어난 하은이는 지난 2014년 6월 집을 나간 뒤 스마트폰 채팅 애플리케이션에서 '재워주실 분 구한다'는 방을 만들었다.

방에 들어온 양모 씨는 하은이와 서울 송파구의 한 모텔에서 유사성교를 한 뒤 달아났다. 김 씨와 이 씨도 각각 아이와 성관계를 한 뒤 사라졌다.

아이는 결국 이들을 포함해 모두 7명의 남성에게 차례로 유린당하고서 인천의 한 공원에서 발견됐다.

이후 하은 모녀는 시민단체와 법률지원기관 등의 도움을 받아 신원이 확인된 남성들을 상대로 치료비와 정신적 피해보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은이 측은 이 씨를 상대로 제기했다 서울동부지법 1심에서 패소한 사건에 대해 곧바로 항소할 예정이다.

[CBS노컷뉴스 김광일 기자] ogeerap@cbs.co.kr

Copyright ©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