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Bye' 이승준·이동준 "한국에서 농구할 수 있어 행복했어요"

곽현 2016. 6. 21.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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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곽현 기자] 훤칠한 키와 수려한 외모로 코트를 빛냈던 이승준(38, 205cm)·이동준(36, 200cm)형제가 함께 코트와 작별을 고했다.

지난 시즌 프로농구 서울 SK에서 뛴 형제는 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이번 시즌 동반 은퇴를 선언했다. 줄곧 다른 팀에서 뛰어온 형제는 지난 시즌 한 팀에서 만나게 되며 그토록 염원하던 꿈을 이루게 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시간이 길게 이어지지는 못 했다.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정든 농구공을 놓기로 결정했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형제는 2006년과 2007년 각각 한국무대에 데뷔했다. 한국에서 보낸 10년의 시간 동안 둘은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귀화시험을 거쳐 한국 국적을 얻었고, 국가대표에 선발돼 태극마크를 달고 뛰기도 했다.

형제는 좋은 신체조건과 깔끔한 매너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반면 미국과는 다른 한국의 문화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농구와 작별을 고한 이승준·이동준 형제를 만나 우여곡절 많았던 그 동안의 이야기, 앞으로의 꿈에 대해 들어보았다.


Q_안녕하세요! 챔프전 재밌게 봤나요?(형제를 만난 날은 NBA 결승 7차전이 열린 20일이었다. 이날 클리블랜드가 골든스테이트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승준_ 너무 재밌었어요. 저희는 커리를 좋아해서 워리어스 팬이에요. 근데 졌어요. 아쉬워요.
이동준_ 한동안 NBA를 잘 안 봤는데, 커리 때문에 NBA를 봤어요. 워리어스가 팀플레이가 잘 됐는데, 어떻게 보면 르브론이 워리어스를 이긴 것 같아요.
이승준_ 워리어스는 부상 때문에 진 것 같아요. 보거트가 부상 때문에 못 뛰었고, 이궈달라도 몸이 별로 안 좋았어요.


Q_ 올 해 둘이 같이 은퇴를 하게 됐는데요. 소감이 어떤가요?
이승준_ 같이 농구한 게 31년 됐어요. 농구를 시작할 때도 같이 했고, 마무리도 같이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이동준_ 저는 초등학교 1학년, 형은 3학년 때 시작했어요. 좋아하는 농구를 평생 하고 싶지만 그러긴 힘들어요. 이왕이면 같이 마무리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Q_ 은퇴 이유가 궁금한데요.
이승준_ 몸이 예전 몸이 아니에요. 제가 하고 싶은 농구를 아직도 할 수가 없죠.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면서요. 이제 좀 늙었어요(웃음).(이승준은 동부 소속이던 2014년 1월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다. 그 부상으로 인해 장점이던 운동능력을 상당 부분 잃었다)
이동준_ 그래도 지금까지 농구한 게…. 오래 한 것 같아요. 이번 시즌도 열심히 준비하려고 했는데, 허리를 다치면서 못 하게 됐어요.
이승준_ 매일매일 운동 준비하는 게 점점 어려워졌어요. 운동 끝나면 아이싱하고 사우나 가고 마사지 받아야 돼요. 안 받으면 힘들어요. 스무 살 땐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죠(웃음).
이동준_ 20대 때는 치료실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몸이 정말 좋았죠.

Q_ 두 선수 다 한국에서 오랜 시간을 뛰고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너무 조용히 지나가는 것 같아요. 코비는 미리 은퇴선언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잖아요. 아쉬움은 없나요?
이동준_ 정말 사랑하는 농구를 이제 평생 못 하는 거 알고 있지만…. 어느 정도 아쉬움은 있죠. 저희 둘 다 한국에 올 때 목표가 있었어요. 귀화까지 했죠. 그래도 처음에 가졌던 목표를 대부분 달성한 것 같아요.

이승준_ 한국에서 농구하면서 우승도 못 하고 국가대표로 금메달도 못 땄어요. 아쉬움은 있죠. 하지만 10년 동안 정말 재밌게 농구했어요. 괜찮아요.

이동준_ 지난 시즌에 우리가 같이 뛰면서 좋은 모습 보여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쉽죠. 하지만 오래 버티는 게 목적은 아니었어요. 떠날 때가 되면 떠나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SK에서 재도전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잘 안 됐어요. 선수는 경기에서 뛸 때 가장 빛나잖아요.

이승준_ 우리는 팀을 위해서 뛰었으니까요.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경기를 못 뛰면 팀에 도움을 줄 수 없어요. 예전에 비해 지금은 몸이 많이 안 돼요.

Q_ 부모님은 어떤 얘기를 해주셨나요?
이동준_ 지난 3~4년 동안 은퇴를 준비해어요. 부모님과 대화도 많이 나눴죠. 부모님들은 수고 많았다고 격려를 해주셨어요.

이승준_ 4년 전 FA일 때 이번 FA가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작년에 FA로 1년을 더 해서 감사했어요. 가족들도 다 수고했다고 말해줬어요 가족들은 좋아해요. 이제 자주 볼 수 있으니까요(웃음).

이동준_ 형은 2주 전에 미국에 갔다 왔어요. 전 이번 주 목요일에 가요. 저희 고향이 시애틀인데, 시애틀은 여름은 천국이에요. 날씨가 제일 좋아요. 미치죠. 12년 만에 여름에 고향에 가는 거예요. 그 동안은 계속 비시즌 훈련을 했잖아요. 가서 가족들이랑 소풍 가고 싶어요. 고기도 구워먹고요.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 가장 좋아요.

Q_ 은퇴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이동준_ 은퇴한다고 했을 때 팬들이 SNS로 사진을 올려줬어요. 형과 같이 있는 사진이요.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죠. 근데 사실 아직 은퇴했다는 실감이 안 나요.

▲“저희 한국에 계속 있을 거예요”
한국에 먼저 정착을 한 건 동생 이동준이다. 2006년 연세대학교 소속으로 전국체전에 참가하며 한국 팬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이후 이동준은 국내선수 자격으로 2007년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해 전체 2순위로 오리온에 지명됐다.

형 이승준은 특이하게도 외국선수로 먼저 한국무대에 데뷔했다. 외국선수 트라이아웃에 참가했던 이승준은 2007년 모비스의 대체외국선수로 KBL에 데뷔했다. 이후 2009년 귀화혼혈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삼성에 지명돼 국내선수로 뛰게 됐다.

이후 이들은 여러 팀에서 뛰며 역량을 발휘했다. 이승준은 삼성, 동부를 거쳐 SK로, 이동준은 오리온, 삼성을 거쳐 마찬가지로 SK에서 마지막 시즌을 뛰었다. 이승준이 운동능력을 이용한 고공플레이가 강점이었다면 이동준은 힘을 이용한 포스트업과 중거리슛이 정확했다. 플레이스타일에 있어서는 차이점이 있었다.

둘은 미국에서 오랜 시간을 살았지만, 한국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한국 친구들도 많고, 한국어를 공부해 귀화 시험을 거쳐 한국 국적까지 취득했다. 둘은 은퇴 후에도 한국에서의 삶을 계속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Q_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어요?
이승준_ 일단 좀 쉬고 싶어요. 어떤 일을 할지는 생각 중이에요. 아, 연세대학교 어학당에 다니기로 했어요. 한국말을 더 배우고 싶거든요. 저도 동생처럼 말을 잘 하고 싶은데, 많이 안 늘었어요. 어학당에서 배우면 더 빨리 늘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동안 숙소에서는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이동준_ 형이 어학당은 제 후배가 되는 거죠(웃음). 저도 다시 가야해요. 농구 하느라 반밖에 공부를 못 했어요.

Q_ 많은 사람들이 두 형제를 비롯해 혼혈선수들은 은퇴하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거라고들 해요. 한국말을 더 배운다는 일이 멋진 것 같아요!
이동준_ 저희는 이제 한국 국적밖에 없어요. 미국 국적은 없어요. 완전한 한국인이죠.
이승준_ 저희는 한국에 계속 있을 거예요. 한국에서 자리 잡아야죠(웃음).

Q_ 이동준 선수는 뭘 하고 싶나요?
이동준_ 그냥 쉬고 싶어요. 지금까지 31년 동안 쉴 틈 없이 농구를 해왔어요. 여행도 다니고 취미 생활도 하고 싶어요. 저희가 일반 회사원들에 비해 젊은 나이에 은퇴한 거잖아요. 나이 들어서 은퇴했으면 하고 싶은 걸 배우기 어려웠을 텐데, 우린 젊어서 할 수 있는 게 많아요. 우리 둘이 오토바이 타는 걸 좋아해서 얼마 전에 열흘 동안 전국을 돌아다녔어요.

이승준_ 군산도 가고 진도도 가고, 광주, 보성 녹차밭, 영덕 대게도 먹고, 안동 찜닭도 먹었어요. 진짜 맛있었어요!

이동준_ 그 동안 운동하느라 못 해봤던 걸 많이 해봤죠. 유명한 맛집 다 찾아다녔어요. 저희 ‘먹방 투어’ 되게 좋아해요. 찜질방에서도 자봤어요.(웃음) 재밌었죠.

Q_ 이승준 선수는 결혼이 미뤄졌다고 들었어요.
이승준_ 와이프 친언니가 미국에서 배우로 활동해요. 지금 언니 도와준다고 미국에 가 있어요. 촬영이 모두 끝나면 결혼날짜 다시 잡을 거예요.

Q_ 이동준 선수는 결혼 계획 없나요?
이동준_ 형 먼저 해야죠. 우린 한국인이니까 형 먼저 해야 해요(웃음).

Q_ 둘 다 훤칠하고 잘 생겨서 방송 일을 해도 좋을 것 같아요. 방송 쪽에 관심 없나요?
이동준_ TV를 잘 안 보는데, ‘정글의 법칙’은 봐요. 정말 재밌어요. 그런 거 해보는 건 재밌을 것 같아요. 아버지가 군인 출신이라 어릴 때부터 산 가서 야영 하고 헬기도 타봤어요. 고기도 직접 잡아서 먹어봤고요. 여행은 좋은 호텔 가서 자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남자라면 고생도 해봐야죠.

Q_ 형제가 늘 붙어있고, 같이 여행도 다니고 굉장히 돈독한 것 같아요.
이동준_ 복 받았다고 생각해요. 저희 둘 다 관심사가 같고 취향이 비슷해서 정말 좋아요.
이승준_ 저희 둘 다 배우는 거 좋아해요. 다른 언어 배우는 거 좋아하고 낚시, 사냥 등이요. 얼마 전에 동생이 생일 선물로 직접 지갑을 만들어서 줬어요. 정말 고마웠죠(이동준이 직접 만들었다는 지갑은 정말 근사했다).

▲한국에서 많이 배웠어요
줄곧 미국에서 생활해온 형제에게 한국농구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언어는 물론 한국농구 특유의 타이트한 훈련스케줄, 선후배 문화 모두 낯선 환경이었다. 이 때문에 어려움도 많았고, 오해도 샀지만, 그로 인해 배운 게 많다고 한다. 형제는 농구를 통해 인생에 있어 많은 것을 얻고 누렸다고 한다.

Q_ 10년간 한국에서 생활을 했는데, 그 동안의 시간은 어땠나요?
이동준_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가끔 한국에 왔는데, 그냥 신기했어요. 처음엔 한국말을 못 해서 사촌들이랑 대화를 못 했는데, 이제는 가장 좋은 게 한국 문화도 알고, 대화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어릴 땐 외할머니랑 대화를 못 했어요. 근데 지금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행복해요.
이승준_ 저도요. 2주 전에 외할머니, 외삼촌 만났는데, 대화 나눌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요.

이동준_ 한국에서 농구하면서 처음엔 되게 힘들었어요. 근데 성취감이 많아요. 너무 많이 배워가는 것 같고 얻은 게 많아요.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모든 게 다 쉽게 쉽게 됐으면 그런 마음이 안 들었을 것 같아요. 농구 때문에 우리 가족이 강해진 것 같아요. 형은 전 세계를 돌아다녔고, 농구로 인해 아름다운 생활을 할 수 있어서 기뻐요. 한국은 어머니의 나라잖아요. 어릴 때부터 궁금했던 세상에 와서 많은 걸 얻은 것 같아요.

이승준_ 힘든 일도 있었고, 고생도 많이 했는데, 감사하게 생각해요. 농구가 제게 많은 걸 줬어요. 다른 나라에도 생활해보면서 여러 경험을 해볼 수 있었어요.

Q_ 아무래도 한국 문화 적응이 가장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이동준_ 전 유럽에서 2년을 보냈는데, 어려운 게 없었어요. 근데 한국은 많이 달랐어요. 이렇게 운동하는 곳은 한국밖에 없는 것 같아요. “여긴 우주인가?”하는 생각도 들었죠(웃음). 힘들었어요. 운동량은 전 세계 1위인 것 같아요. 과학적으로 보면 아무리 좋은 차라도 24시간 갈 수 없잖아요. 어디에도 하루에 운동을 3~4번씩은 안 해요. 근데 한국은 해요. 그래도 “못 하겠다”하다가 하게 되더라고요. 정신력은 정말 강해져요. 미국 사람들 이렇게 운동시키면 못 해요. 한국 선수들 정신력 대단한 것 같아요.

이승준_ 처음에 “할 수 없다, 할 수 없다”하다가 “할 수 있다”가 돼요(웃음). 2010년 국가대표 때 라스베이거스로 훈련을 갔는데, 연습경기에서 너무 못 했어요. 감독님이 경기 끝나자마자 다시 훈련을 시키셨는데, 상대팀 선수들이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더라고요. 10년 전이었으면 “감독님 할 수 없어요”했을 거예요. 근데 한국에서 배웠기 때문에 “알겠습니다”하고 했죠(웃음).

Q_ 그 동안 경기 중 가장 기억나는 경기가 있다면요?
이승준_ 좋은 기억이 정말 많아요. 그 중에서도 한국에 와서 첫 번째 한 경기요. 전 모비스에서 외국선수로 뛰었을 때 동생이 있는 오리온이랑 만났어요. 웜업할 때 동생을 만나서 “우리가 한국에서 만났구나”하면서 기뻐했던 기억이 있어요. 힘이 생겼죠. 뒤에 이름에 동생은 ‘이동준’이라고 돼 있고, 전 ‘산드린’이라고 돼 있어서 신기했어요(웃음).

이동준_ 그 때 전 혼자였는데, 한국말이 안 돼서 정말 외로웠어요. 제가 밝은 성격인데 그 땐 무척 우울했죠. 그러다 형을 보니까 좋았어요. 제 경기보다 형 경기가 더 기억나요. KCC랑 할 때 3점슛 8개를 넣은 경기도 기억나고, 삼성에서 플레이오프 올라가서 아버지랑 같이 경기를 봤을 때도 기억나요. 형이 덩크 할 때마다 정말 신났죠.

 

Q_ 형제를 제외하고 가장 친했던 동료는 누가 있어요?
이동준_ 김승현 형이요. 잘 챙겨줬어요. 근데 형이 온 이후로는 거의 형만 만났죠.
이승준_ 전 모비스에 있을 때 우지원 형이 잘 챙겨줬어요.
이동준_ 전 한국에 오기 전부터 지원이형을 알았어요. 모비스가 전지훈련을 왔었는데, 지원이형이 제가 한국 간다고 하니까 포기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인상적이었어요.

Q_ 둘 다 국가대표로도 뛰었잖아요. 대표팀으로 뛴 기억은 어때요?(이승준은 2010, 2012, 2013년, 이동준은 2007년 국가대표로 선발된바 있다)
이승준_ 동생이 처음 국가대표에 뽑혔을 때 “형 한국 빨리 와. 대표팀 정말 재밌어”라고 했는데, 그 통화가 아직도 기억나요. 경기 전에 애국가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대표팀 분위기가 장난 아니라고 했어요. 2013년 아시아선수권에서 대만 이기고 세계선수권 티켓 땄을 때도 기억나고, 광저우 아시안게임 결승, 베네주엘라에서 한 런던올림픽 최종예선도 기억나요. 국가대표팀 유니폼 다시 한 번 입어봤으면 좋겠어요. 경기도 재밌었는데, 훈련도 정말 좋았어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하는 선수들이 모여서 같은 생각과 목표를 가지고 훈련을 했던 게 정말 좋았어요.

이동준_ 그 전에 뛰던 경기와는 차원이 달랐죠. 중국을 상대로 하기도 하고, 다른 나라를 상대로 하는 게 정말 어마어마한 느낌이에요.


Q_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인사 부탁드려요.
이동준_ 연세대학교 다닐 때 어려운 시절부터 절 지켜보고 사랑해주신 모든 팬 여러분께 정말 감사해요. 그 응원 때문에 힘을 많이 얻었던 것 같아요.

이승준_ 한국 농구 팬들은 정말 대단해요. 국가대표 경기 가면 늘 있어요. 베네주엘라에도, 중국, 필리핀에도 저희를 보러 와주셨어요. 한국 팬들이 정말 사랑해주셨던 것 같아요. 팬들 때문에 힘이 엄청 생겼어요. 너무 감사했어요. 그래서 마음이 좀 아파요. 다음에 좋은 모습으로 다시 만났으면 좋겠어요.

#사진 – 유용우, 문복주 기자, KBL, 본인 제공
#일러스트 - 광작가 제공 

  2016-06-20   곽현(rocker@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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