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첫 女시장 맞은 로마 르포> 시민 "낡은정치 희망없어 변화선택"
"기성 정치인과 달리 깨끗한 행정 기대"…"경험 부족 우려돼"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몇 년 동안 우파와 좌파가 번갈아 가며 로마를 통치했지만 망가질 대로 망가진 로마의 상태를 보세요. 그나마 조금이라도 변화하기 위해선 새로운 인물이 아니면 안 되겠다 싶었던 거죠."(식당 주인 마리오)
"정치에 너무 신물이 나서 이번에도 투표를 하지 않았어요. 다행히 새로운 시장은 그나마 조금은 정직해 보이니 부디 성공해 과거 아름다웠던 로마 모습을 조금이라도 되찾아 줬으면 합니다."(서점 주인 디아나)
"조금 더러울 때에는 청소하기가 쉽지만 때에 찌든 지경까지 가면 아무리 씻어내려해도 씻기지가 않아요. 로마는 청소 자체가 어려운 수준까지 이르러 (청소가)쉽지 않을 거라 봅니다."(택시 운전사 로베르토)
고대 로마 이래 2천500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을 수장으로 맞이한 이탈리아 로마 시민들은 20일 일하는 짬짬이 동네 바와 식당에 모여 이번 선거와 새로 탄생한 여성 시장, 로마의 미래를 놓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는 모습이었다.
로마 시민들은 전날 치러진 지방선거 결선투표에서 포퓰리스트 성향의 신생 정당 오성운동 진영의 여성 후보 비르지니아 라지(37)에게 총 투표의 3분의 2가 넘는 몰표를 안겼다.
변호사 출신의 라지는 5년 전 정계에 진출한 정치 신인으로 불과 4개월 전까지만 해도 무명에 불과했으나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로마 시민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앞으로 5년 간 로마 시정을 책임지게 됐다.
조직 범죄단이 시청 공무원과 결탁해 각종 공공입찰에 개입해왔다는 의혹이 2014년 말 드러나며 '마피아 수도'라는 오명을 쓴 로마의 시민들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환멸로 인해 기존 좌파와 우파 정당의 범주에 묶이지 않는 7년 역사의 오성운동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표를 준 것으로 풀이된다.
바에서 일하는 20대 후반 여성 프란체스카는 "로마 시민들은 지난 몇 년 간의 경험으로 좌파와 우파 모두 시민들의 생활에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기성 정치 체계에 대한 실망과 싫증이 새로운 정당에 대한 지지로 표출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어제 투표하러 갔더니 대부분 18∼35세의 젊은층으로 보였다"며 "대다수가 직업이 없거나 있더라도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젊은이들은 지금과 같은 상태에선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변화를 선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가 조성한 캄피돌리오 광장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40대 중반 남성 마리오는 "정치인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어떻게 하면 세금으로 자기 주머니를 채울까만 궁리하는 도둑놈들"이라며 "그나마 조금 덜 도둑스러운 사람을 뽑다보니 라지에게 몰표가 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정통 정당이라는 우파와 좌파가 번갈아가며 로마를 차지했지만 지금 로마 꼴을 한번 봐라. 도로는 언제 패였는지도 모를 정도로 방치돼 있고, 쓰레기는 길에 넘쳐난다. 버스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리며 "그나마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기성 정치에 물들지 않은 새로운 인물을 뽑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티칸 인근 동네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50대 여성 디아나는 "최근 몇 년 간 내 고향 로마가 과거의 아름다움을 빠르게 잃어 속상하다"며 "로마를 이렇게 만든 정치에 신물이 나 이번에도 투표를 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조금은 정직해 보이는 사람이 시장이 돼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신임 시장은 큰 것부터 해결하려 하지 말고 부디 가게 앞에 산더미처럼 쌓이는 쓰레기 더미를 제때 치우거나, 가게로 들어오는 손님이 길에 널려 있는 개똥을 밟은 채 들어오지 않도록 거리 청소를 깨끗이 하는 것과 같은 작은 일부터 손을 대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스페인 태생이지만 이탈리아인 아내와 결혼해 로마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30대 중반 남성 조르지오는 "내가 지지한 사람이 시장이 되지는 않았지만 내 또래인 신임 시장이 공약을 꼭 지켜 로마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주길 바란다"며 "태어난 지 1년이 채 안된 내 아들은 내가 때때로 로마에서 느끼는 자괴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생 정당 오성운동과 라지 신임 시장의 경험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조르지오는 "사실 오성운동도, 라지도 큰 조직을 운영해본 경험이 거의 없어 로마같은 큰 도시를 맡기는 게 솔직히 걱정된다"며 "잘 해내길 바라지만 6개월 정도 지나면 분명히 한계가 드러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투표함에 백지를 넣고 왔다는 60대 택시 운전사 로베르토는 "세차할 때 조금 더러우면 손쉽게 때를 닦아낼 수 있지만 로마는 오염 상태가 중증"이라며 "손을 쓸 수 없는 지경까지 왔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이 아무리 노력해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부패가 쉽게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30대 초반의 한 직장 여성은 "이번 로마 시장 선거에서는 중도 우파가 선거 전 분열하고, 집권 민주당은 개인적 매력이나 능력이 특출나지 않은 평범한 후보를 내세우며 오성운동이 반사이익을 얻었다"며 "그러나 오성운동이 과거에도 몇몇 도시에서 수장에 오른 적이 있으나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한 점으로 비춰볼 때 이번에도 크게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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